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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 Nov 13. 2019

선물을 받았고, 조금은 슬펐다.

♪GIFT - 우린 달랐고, 달랐어

많은 사람들과 부딪히며 버텨왔고
문득 뒤돌아봤을 때 한번 더 물어봐줘
니가 바란 모습이 맞는지
내가 바란 모습이 맞는지



♪GIFT - 우린 달랐고, 달랐어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할 즈음에 들었던 우스운 말 중에 선배를 '사수'라고 부른다는 것이었다. 보통 사수라는 말은 군대에서 쓰는 말 아닌가. 우리는 총대가 아닌 펜대나 키보드를 쥐고 있는데, 왜 사수라고 부르는 거야. 라며. 우스우면서도 관용어인 듯해서 지금은 심심치 않게 나를 그런 이름으로 칭하기도 한다. 사실 여기까지 살아오면서 감히 건방지게 사수라 부를만한 선배들이 없었던 터에, 막상 타인을 그렇게 부른 적은 없지만. 






왜 이런 이야기로 글을 시작했을까 모르겠지만 여하튼 오늘은 휴가 중인 팀원이 회사에 왔다 갔다. 잠깐 맡은 일이 있어 처리 차 왔던 건데 외근을 나가려는 나에게 잠깐 기다리라며 후다닥 오더니 손에 브라우니 하나와 쪽지 하나를 손에 쥐어주었다. 엇, 엇 뭐야. 하니 늦었지만 입사 기념일 선물이라며 초는 셀프로 사서 자축하라더니 또 휑하니 가버렸다. 


목적지로 가는 택시에서 그 쪽지, 아니지 편지를 꺼내 읽어보았다. 얼마 만에 타인에게 받아보는 손편지였더라. 축하하고, 고맙다는 이야기였다. 진심으로 읽었고 나도 고마웠다. 이 팀원과는 내 직장생활의 6할을 선후배로 지냈고 7할을 알고 지냈으니 정말 중요한 '동료'다. 






돌아오는 길에 기분 좋게 다시 한번 편지를 곱씹어 입는 중에 '전우 같다'는 문장을 읽었다. 우리가 이렇게 서로 함께, 길게 걸어온 길이 흡사 전쟁터 같았나. 함께 힘냈던 순간순간이 떠올랐고, 뭐, 전쟁터 같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었던 것 같아 조금 미안해졌다. 사실 전쟁 세대가 아닌 우리가 전쟁의 감정을 논하는 것도 우습지만, 적어도 군대에 있었던 시절과 비교하자면 지금이 더 전쟁이라는 단어와 어울리니. 슬펐다. 






자리에 돌아와 앉아 함께 받았던 브라우니를 먹었다. 무려 직접 만든 브라우니란다. 우와 맛있네. 선배가 되어서 전쟁도 아닌데 후배에게 전쟁 같은 시간들을 겪게 해서 미안한데, 빵까지 맛있다니 반칙이네. 어릴 적에는 이런 전쟁을 담은 단어에 웃음을 지었는데, 지금은 이 단어들에 공감이 가다니.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전우'가 다시 돌아올 때는, 선배라고 불리어야겠다 마음먹었다. 적어도 그 후배가 지금까지 안고 있던 고민들보다는 조금 더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게 힘을 내어보아야겠다고, 그러고 나서 다시 물어보겠다고. 지금도 그런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냐며, 지금은 조금이나마 괜찮아졌냐며 물어볼 수 있는 '선배'가 되어야겠다는 그런 긍정적인 생각을 오랜만에 떠올렸던, 슬픈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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