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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 Nov 23. 2019

비 오는 날 여행의 의미

♪Back number - 瞬き

행복이라는 것은
별이 내리는 밤과 눈부신 아침이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사람에게 쏟아지는 비에
우산을 씌워주는 거야


♪Back number - 瞬き ( 깜박임 ) - cover.


정말 어김없는 이벤트 중에 하나로, 일본에 방문할 때마다 꼭 하루 이상은 비가 내린다. 제일 처음 일본에 방문한 날에도 비가 내렸고, 처음 혼자 방문한 날에도 비가 내렸더랬다. 단 한 번도 일정 전체가 화창했던 때는 없었다. 스무 번을 넘게 다니는데 매 번 이렇다면, 과학에 가까운 것 아닐까. 이제는 일기 예보와 관계없이 항상 짐에 우산을 챙긴다.




처음에는 저렇게 내리는 비가 야속하고, 미웠더랬다. 아무래도 보고 싶은 곳들도 많았을 때일 테다. 비가 오면 보기에도 좋지 않고, 기록으로 남기기에도 여간 불편하니 무언가 손해 본 여행인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기왕 시간과 돈을 들여서 왔는데, 좀 도와주면 안 되니 날씨야. 뭐 이런 기분이었다. 


그 때로부터 시간이 지나 보아야 할 것(?)은 다 본  지금에는  하도 자주 본 나머지 갑자기 내리는 비도 반갑다는 착각마저 들 정도다. 오늘도 아침에 눈을 뜨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분명 여행 전 본 일기예보의 오늘 날씨는 '흐림'이었던 주제에. 당황하지 않고, 일어나서 어젯밤 가려고 생각했던 교외 대신 다른 쪽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그 정도로 마음이 여유롭기도 한 도시다. 도쿄는. 대체로 슬프지만. 





1.

도쿄의 지유가오카, 다이칸야마 같은 곳은 그곳에 위치한 많은 샵과 디저트의 성격상 여성 여행자들에게 유명한 곳이고, 그만큼 현지인들도 많은 방문을 하는 곳이다. 오늘만 해도 랜드마크인 츠타야 서점의 라운지와 스타벅스는 이런 날씨에도 꽉꽉 차있었으니. 하지만, 보통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엔 어떤 가게던지 어지간하면 줄을 서면서까지 찾아 먹진 않는다. 덕분에 즉흥적으로 계획했던 맛집들과 디저트 가게를 줄도 안 서고 잘 먹었다. 불과 몇 달 전 방문했을 때는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렸던 곳도 있었는데. 





2.

방을 나서던 중, 카메라를 챙길까 말까 하다 관두기로 했다.  우산을 든 채 무엇을 찍으려 해도 우스꽝한 사태가 벌어질 것 같았고, 번거로웠던 경험들이 그만큼 많았더랬다. 어차피 내가 인스타를 하는 것도 아니고. 사진을 찍어야겠다 하면 묘하게 강박관념 같은 것이 생겨 여행지를 눈이 아닌 액정으로 보게 되는 부작용이 생긴다.  


그래도 기념 삼아한 장은 남겼다. 건물을 먹구름이 집어삼킬 정도의 날씨였다. 


그래서, 덕분에 비가 오는 오늘은 온전하게 눈으로 비 오는 도쿄와 요코하마의 거리를 즐겼다. 지하철이 아니라면 오늘은 가급적 이어폰도 귀에서 뺀 채 돌아다녔다. 기분 탓이겠지만, 정말 자주 왔던 거리들인데도 묘하게 오늘은 조금 다르게 보였다. 평소엔 이 거리를 액정으로 보고 듣지 않으려 했다는 사실이기도 했다. 






억지로 행복 회로를 돌리면서 돌아다닌 건 아니었는데, 그냥 하루의 기분이 그랬다. 비가 와도 괜찮은 날도 있구나. 굳이, 비가 와서 아쉬웠던 점 하나를 꼽자면 정말 맛보기 위해서 벼르고 있던 케이크 전문점은 테라스 자리만 있어, 결국 맛보지 못했다는 것 정도겠다. 살아감도, 이런 기분이었으면 좋겠다 싶다. 매번 화창하지 않아도, 좋을 그런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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