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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도그린 Jan 25. 2020

설날에 들은 립서비스에 그만 고개를 들 수 밖에 없었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아침에 남기는 글


날씨가 추워서, 챙겨서 나가기 귀찮아서, 밖에 나가봤자 딱히 할 것도 없는데 라는 이유를 들며

꽤 오랫동안 방구석에만 있다 보니

쓸데없는 잡념에 잠식당해 허우적거리기나 하고

이대로 가다가는 내 존재가 아무도 모르게 먼지가 되어 사라질것만 같았다.


역시 사람이건 동물이건 갇혀서는 살 수 없는 동물인가보다. 일부러 이렇게 있으려 해도 일정시간 이상이 넘어가니 이러다가 아플 수도 있겠다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살기 위해서는 신선한 공기가 필요했다. 여전히 챙겨입고 나가는 건 번거로운 일이었지만 결국 아침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20분정도 가벼운 걷기를 마치고 집 앞 편의점에 들렸다. 어제부터 먹고 싶었으나 귀찮아서 결국 못먹은 과자와 커피를 사들고 계산대에 섰다.


띡띡, 편의점에는 바코드 소리만 들리고,

카드리더기에 꽂인 카드가 결제를 다 하길 기다리는 순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당황해서 소리나는 쪽을 쳐다보니 편의점 아주머니께서 나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새해 인사를 건네시는게 아닌가.

머리는 모자로 푹 눌러쓰고 미세먼지 있다고 하얀 마스크를 눈 밑까지 잔뜩 올려 쓴채 앞에서 보면 얼굴은 커녕 눈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의 차림새였는데(사실 이런 차림새면 말 걸기 쉽지 않다. 그게 아니면 나한테 말걸지 마세요 라는 분위기를 풍기기 위해 일부러 이렇게 입었을수도 있고) 너무나도밝은 말투에 일부러 고개를 들어 아주머니 얼굴을 빼곰히 다시 쳐다보았다.


순간, 나는 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새해 인사를 건넨 후에도 아주머니의 얼굴에는 여전히 밝은 미소가 남아있는게 아닌가. 그것도 진심으로.

설사 편의점 주인이시더라도 새해 첫 날인데 남들 쉴때 쉬지 못하고 일을 해야한다는 사실에 나라면 내가 처한 상황을 토로하며 그 불만이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을텐데.


기대치 않은 곳에서 갑작스레 받은 새해 인사에 당황하기도 하였고 사실, 누군가의 친절을 받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내가 그 자리에서 할 수 있었던 말는 얼어붙은 입을 떼고 간신히 내뱉은 “감사합니다” 가 전부였다.


집에 오는 길 내내 싱숭생숭했다. 나는 왜 상대방의 친절을 그렇게밖에 받을 수가 없었을까. 무엇이 나를 타인을 경계하게 만들었을까.

세상을 살아오면서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제껏 가족의 보호막아래 따뜻하게 지내오다보니 어쩌다 간혹 나쁜 사람들을 만나면 그로 인해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나 싶을 정도로 충격과 배신감이 주는 타격이 남들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그로 인한 결론은 결국 타인을 멀리하자. 웃는 낯짝도 보이는 그대로 믿지 말자로 귀결되었다.




오늘 아침의 일로 생각이 하나 더 늘었다. 내가 먼저 새해 인사를 건넬 수도 있었을텐데. 내가 먼저 친절에 적극성을 담으면 어떤일이 생길까 하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 거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사람들을 주의깊게 관찰하기도 하고, 저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나 궁금해도 해보면서. 정말 혹시라도 나중에 어쩔 수 없이 나쁜 사람을 만나게 되더라도 적어도 그것 그대로 나를 상처입히게 가만두지 않을 것 같다. 친절하게 하는 것도, 혼내주는 것도 그저 그렇게 수동적으로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손 놓고 내버려두지 않겠지.


사람에게 상처 받기 싫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일정부분 차단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렇게 하는게 나를 보호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제와 생각해보니, 나를 고립시키면 시킬수록 나는 더 약해지고 있었다. 공격에 취약해졌고 속절없이 무너져 내려버렸다. 강해지는게 아니라 오히려 나를 나약한 존재로 만들고 있었다. 세상 속에서 내가 주인이 되어 돌리는 판 하나쯤은 있어야 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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