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을 저녁 아이의 이야기
대박이는 이모와 사촌동생인 복동이를 참 좋아한다.
매일 이야기를 꺼낼 정도로.
깜깜해진 하늘을 보며 둘이서 손잡고 하원하는 길에 아이는 이모와 복동이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스마트폰으로 이모에게 전화 걸어주세요."
"왜?"
"이모네 집에 야시장이 열리면 알려달라고 하게요."
"그래, 알겠어. 집에 도착하면 이모에게 전화 걸어줄게."
대박이는 야시장에 가는 것을 참 좋아한다.
야시장이 열리면 평소에는 먹을 수 없던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간식인 회오리 감자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야시장에 가는 날 = 회오리 감자를 사 먹는 날이라는 공식이 성립될 정도니 말이다.
최근 다녀왔던 야시장은 모두 이모네에서 열렸던 야시장인지라, 이모를 떠올렸나 보다.
게다가 이모는 엄마가 허락해 주지 않는 풍선다트, 물고기 잡기 등 여러 가지 놀이를 해볼 수 있도록 해주는 데다 본인이 좋아하는 동생인 복동이랑 손잡고 놀았던 것이 너무 좋았나 보다.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걷다 보니 집에 도착.
오늘 대박이의 저녁은 김치볶음밥과 조미김, 나의 저녁은 멕시코 감자인 히카마와 샤인머스캣 그리고 조미김.
김치볶음밥을 만들 때 김치를 씻어서 만들지 않았던지라 아이가 조금 맵다고 했다.
괜찮냐고 물으니 조미김과 물을 먹으며 "뭐, 먹을만해요."라며 씩씩하게 먹는 대박이.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서 대박이에게 "엄마가 다음번엔 안 매운 김치볶음밥 해줄게."라고 이야기했다.
늘 저녁을 준비해 주는 아빠가 없어서일까, 아니면 엄마가 해줄 수 있는 메뉴가 많지 않다는 걸 알아서일까.
오늘은 별다른 투정 없이 저녁 식사를 마쳤다.
저녁식사 후 대박이가 원하던 전화시간.
"여보세요?"
"이모, 뭐해요? 이모집에 야시장 하면 꼭 불러주세요."
"야시장? 지금은 안 하는데 하면 대박이 꼭 부를게."
"네 알겠어요."
본인의 의사를 전달 후 할 이야기가 없는지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 시작하는 대박이.
동생과 이야기를 마친 후 아이와 이야기를 했다.
"복동이 왜 병원에 갔어요?"
"복동이가 지금 아프데. 열감기에 걸려서 병원에 갔다고 하네."
"복동이 많이 아파요?"
"아직 잘 모르겠어. 많이 안 아파야 할 텐데 걱정이네. 병원에 다녀와봐야 알 것 같아."
"나중에 이모에게 물어봐요."
"이모 배 속에 아기가 있는데 복동이 돌보려면 이모가 힘들겠다."
내 말을 듣고서 곰곰이 생각하던 대박이가 나에게 한 말.
“엄마, 저는 결혼하면 아이를 두 명 낳을 거예요.”
응? 갑자기? 왠 두 명? 먼 미래의 자녀계획이 나오지? 무슨 일이야 이게.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대박이에게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그래, 두 명 좋지. 대박이는 자라서 결혼하면 아이를 두 명 낳으면 되겠다. 근데 왜 두 명이야?”
“왜냐면요 나는 혼자인데, 혼자는 외로우니까요.”
엌. 이 이야기를 듣는데 머리가 뎅 하고 울렸다.
동생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 알았지만 동생이 없어서 외롭다니.
그래서 본인은 두 명의 아이를 가질 거라는 이 구체적인 계획.
"그렇구나. 대박이는 아이를 두 명 낳고 살자."
더 좋은 대답을 해주었다면 좋겠지만 순간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아서 현명하게 대답해주진 못한 것 같다.
분명 이런 질문은 반복될 것이고, 나는 그 순간 어떻게 아이에게 잘 말해줄 수 있을지를 고민해 봐야겠다.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이의 요구로 동생을 만들어 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동생이 없어서 오는 외로움은 잘 이겨낼 수 있도록 옆에서 도울 수밖에.
둘이라서 다 좋을 수도 없고, 혼자라서 다 나쁘지만도 않은 게 삶이니 말이다.
사랑하는 대박아.
엄마는 동생이 있어서 둘이라서 다 좋다고는 생각 안 해.
동생이 있어서 의지가 되고 든든한 점도 있지만 그만큼 힘든 점도 있거든.
그러니 너는 혼자라서 외로울 수 있지만 또 혼자라서 더 좋은 점을 찾아보자.
그리고 너에겐 예쁜 사촌동생들이 있잖니.
오빠를 엄청 좋아하는 예쁜 복동이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