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많은 일들이 일어났던 그 시간에 대하여
긴 고민 끝에 결혼하고 떠나자고 마음을 먹었지만, 지금에 와서 그 시점을 딱 짚어낼 수는 없다. 천천히 마음을 '굳혀간' 시간이었다.
정확히 '가자!'라고 한 것은 프러포즈를 받았을 때였다. 3월, 천일 기념 여행을 가서 프러포즈를 받았다. 그때 남편은 펜실베니아의 대학에 합격했다고, 같이 가자고 했다. 그 후로도 여러 대학원 박사 과정에 합격했고 그중 샌디에고를 골랐다.
좋다고, 결혼하자고는 했는데 이 이후에는 뭘 해야 하지? 부모님께 말씀드리는 게 먼저일 거 같았다.
마침 며칠 후 기회가 왔다. 친척 결혼식에 가는 날 아빠가 물었다. '남자친구는 유학 간다더니, 어떻게 되었니?' 마침 잘 됐다! '펜실베니아에 붙었대. 곧 갈 거래.'
아마 아빠는 이때부터 결혼할 거라는 걸 알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결혼식에 다녀온 후 남자친구가 집에 인사 오고 싶어 한다는 말에 엄마는 약간 당황했지만 아빠는 뭘 또 인사를 오냐고, 결혼하겠다는 말 아니냐고. 상견례 날짜를 잡으라고 했으니까 말이다.
상견례와 결혼식 당일에 있을 모든 것들 -드레스, 메이크업, 한복 등등-을 준비하는 데 백 일을 썼다. 직장인인 나에 비해 시간이 좀 더 있었던 남편이 많은 일들을 결정했고 우리는 이런 면에서 합이 참 잘 맞는다.
신혼집이 미국이니 가전, 가구를 마련할 필요도 없고 집을 알아볼 일도 없었다. 그냥 '결혼식' 그 자체만 잘 치르면 되었기에 오히려 더 쉬웠다. 양가 어른 모두 '너희가 알아서 잘하겠지'의 성향이신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바쁜 세 달이 지났다. 프러포즈를 받고 딱 100일 후, 6월 10일에 우리는 결혼했다!
결혼 준비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출국 준비였다.
남편은 UCSD에 '합격을 받아들이겠다'는 의사를 전했고 학교에서 신분 서류를 받았다.
I-20라고 부르는, 체류 신분을 증명해 주는 서류로 미국 생활에서 무엇보다도 귀중한 서류다. F-1은 남편 것, F-2는 내 것이다. 이때부터 내 삶은 조금 '의존적으로' 바뀌게 된 것 같다. 그동안은 나와 관련된 모든 서류 처리는 내가 했는데, 이제 남편이 하는 대로 따라가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썩 기분 좋은 느낌은 아니었지만, 가정 내 업무 분담(?)의 시작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출국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고 그에 따라 심리적으로 부담되는 일은 미국 대사관 인터뷰다.
대사관 인터뷰를 위해서는 미리 예약부터 하고, 필요한 서류를 차근차근 준비해야 한다.
우리 같은 경우에는
- 여권
- I-20
- SEVIS (Student and Exchange visitor program) Fee 납부 영수증
- 비자용 사진
- 소득증명서 (세금납부기록, 은행 잔고)
- 대학원 합격 서류 및 Fellowship 서류
- 대학 성적증명서 및 졸업증명서
- 영어성적증명서
- 가족관계증명서 및 혼인관계증명서, 청첩장
- 예방접종기록
등을 준비해 갔다.
여권은 미리 10년짜리로 재발급을 받았다. 여권 사진을 찍으며 비자에 필요한 사진도 같이 찍었다. 단정해 보이겠다고 가지런하게 머리를 넘긴 우리가 좀 재미있었다.
소득증명서는 재정 상황이 유학을 문제없이 끝마칠 만큼 튼튼하고, 한국에 기반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된다. 남편의 부모님과 나의 세금납부 기록뿐 아니라 은행 잔고를 영문으로 발급받아 가져갔다.
또, 결혼했음을 증명하기 위해 혼인관계증명서도 가져가야 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우선 당연히 혼인신고를 해야 한다. 그래서 결혼 후 혼인신고를 늦게 하기도 하는 요즘의 트렌드(?)와는 달리, 우리는 결혼식 한 달 전인 5월에 구청에 가서 혼인신고를 했다.
그리고 무척 더운 여름, 대사관에 갔다.
대사관에는 줄이 꽤 있었다. 벌써 몇 년 전 일이라서 기억이 어렴풋하지만, 확실했던 건 사람이 많았다는 것이다. 긴장된 마음으로 우리 차례를 기다리는데 앞사람이 안쓰러웠던 기억도 난다.
그분은 목발을 짚고 계셨는데, 언뜻 들리는 말로는 같은 날 일찍 오셨다가 한 번 퇴짜를 맞고 (..) 다시 오신 것 같았다. 가족들과 함께 왔는데 주 신청자인 아버지가 목발을 짚고 진땀을 흘리고 있으니 보는 사람으로서 안타까울 수밖에. 사진관에서 분명 맞는 사이즈라고 했는데 비자 규격 사진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접수받는 분이 사진관을 믿으면 안 되고 다시 찍으러 가라고 돌려보내자, 축 처진 상태로 줄을 떠나셨다.
다음은 우리 차례였는데 꼼꼼한 남편이 포스트잇으로 나눠놓은 서류를 보자 접수받는 분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던 것 같다. 순서만 필요한 대로 약간 바꿔주고 쉽게 통과되었다.
그리고 대망의 진짜 인터뷰 시간. 또 우리 앞 분은 재심사를 요구하는 종이를 받고 떠나셨다.. 인터뷰하는 공간이 하나로 뻥 뚫려있어서 어쩔 수 없이 사정을 들었는데, 영어 교사인 분이 영어 공부를 목적으로 미국에 간다고 하니 인터뷰어가 이해를 못 한 모양이었다. 설득을 시도했으나 그대로.. 주황색 종이를 받아가셨다.
우리 차례는 점심시간 바로 후였다. 나름의 계산으로 그 시간을 골랐다. 점심을 먹고 돌아와서 기분이 좋아지면 인터뷰가 더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친절한 여자분이었다. UCSD 합격 서류를 보여주자 '샌디에고! 좋은 곳으로 가네!'라고 해 주셨다. 나에게는 결혼한 지 얼마나 되었냐고 물었다. 그때가 혼인신고로부터 약 세 달 후였어서, 삼 개월 되었다고 하니 또 싱긋 웃으셨다. 인터뷰는 이렇게 쉽게 통과되었다.
일주일 후, 비자가 붙은 여권이 집으로 배송되었다.
6월에 결혼을 하고, 7월에 비자를 발급받고, 8월에 한국을 떠났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쉬웠던 건 너무 시간이 촉박해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 못하고 떠나온 것이다. 특히 청첩장을 전해줄 때 그랬다. 친구들 중에 첫 번째로 결혼했기 때문에 청첩장에 익숙하지가 않았다. 친했지만 최근 연락을 안 한 친구에게 청첩장을 주는 게 맞는 일인지, 동아리 후배들과 선배들에게 새삼스레 연락해서 밥 먹자고 하는 게 부담스럽지는 않은지.
또 축가를 해준 친구들에게 보답한 것이 고작 신혼여행지 -하와이-에서 사 온 기념품이 끝인 게 미안하고, 미국에 있는 동안 친구들의 결혼식에 가지 못한 게 아쉽다. 축의를 해 준 사람들, 특히 직장 동료들에게 갚을 새도 없이 퇴사를 한 게 죄송하기도 하다. 나름대로 당시 미혼이었던 분이 결혼하는 소식을 알음알음 접하면 민망함을 참고 연락해 계좌를 물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기혼이었던 분들에게는 되갚을 길이 요원하다. 이 모든 걸 알고도 축하해 준 전 회사 분들에게 고마울 뿐이다.
인생에서 가장 바빴던 이 기간이 지나고,
8월 29일, 우리는 출국했다. 각자 두 개의 캐리어와 배낭 하나를 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