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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작꼬작 Nov 15. 2023

필터와 생수와 냉온수기

마음 놓고 물을 마시기까지의 여정

먹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게 마시는 물이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몇 개월 전에야 마음에 드는 조합을 찾아 지금은 걱정 없이 물을 마시고 있다.



0. 집에 마실 물이 없다.

물과 관련된 기억 하나. 샌디에이고에 처음 온 날, 공항에 내려 텅 빈 방에 올 때까지만 해도 물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다. 정말 그 어떤 생각도 없었는데, 목이 마르다고 느끼자마자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게 정말 외국인게 딱 느껴졌다. 냉장고는 물론 텅 비어있었고, 물을 사러 나가자니 근처에 편의점 하나 아는 곳이 없었다. 망망대해에 남편과 나, 두 명이 둥둥 떠 있었다.


한국과 일본이 전 세계에서 손에 꼽힐 만큼 수질이 좋다는 걸 이때 알았다. 수돗물을 먹어도 되는지 찾아봤더니, 답은 '꿈도 꾸지 말라'였던 것이다. 한국이었다면 수돗물을 끓여서라도 마셨을 텐데, 샌디에이고의 물은 그럴 수 없었다. 이런저런 정수를 거치긴 하지만 여전히 샌디에이고의 물에는 미네랄과 석회를 비롯해 이것저것이 섞여있어서, 몸에 안 좋다는 증거는 없을지라도 우선 맛부터 먹을 것이 못 된다고 했다.


목이 바짝 마르던 그때 간신히 생각해 낸 것은 공항에서 오는 길에 봤던 작은 쇼핑센터까지 걸어가 보자! 였다. 배도 고팠기에 거기에 있는 유명한 피자집 -Regent Pizzeria-에서 저녁도 먹고, 물을 살 곳도 찾기로 했다.


불타오르는 것 같은 캘리포니아의 태양을 뒤로 한채 슬리퍼를 신고 바작거리는 나무조각을 밟으며 쇼핑센터로 가던 길이 생각난다.


피자집에서 목을 축인 우리는 옆 약국에서 물을 샀다. 아쉽게도 생수가 없어서  코코넛워터, 알로에워터, 과자를 샀다. 약 하나 집지 않고 구색 맞추기로 들여놓은 음료수와 간식만 사는 우리에게 점원은 의아한 시선을 보냈다.


집에 와서 먹어본 그 물의 맛이 꿀 같았다면 좋았겠지만, 정말이지 입에 맞지 않았다. 그 음료들은 모두 온라인에서 흔히 ‘호불호 강한 음료’라고 불리는 음료수의 대표작들이었다. 결국, 갈증을 없애는 데에 두 모금 사용되고 나머지는 냉장고에 두 달 동안 방치되다 버려졌다.


1. 필터형 정수기, 브리타를 사다.

수돗물도 먹지 못하고 집 가까운 데서 구한 물도 못 마실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정답은 '택시를 타고 월마트에 간다'이다.


다음날, 로밍해 온 핸드폰으로 리프트 (Lyft)를 불러 월마트에 갔다. 미국에서 (그리고 유럽에서) 보편적으로 쓰인다는 브리타 (Brita) 정수기를 샀다.


브리타 정수기는 교체할 수 있는 필터가 들어있는 물통같이 생겼다. 위쪽에  물을 받으면 필터를 통해 아래쪽 통으로 물이 내려가고, 정수된 물을 마실 수 있는 것이다. 수질이 좋지 않은 많은 지역에서 이렇게 정수를 해서 쓰는데, 사실 꽤 번거로운 방법이다.


필터가 오랫동안 말라있으면 좋지 않아서 브리타에 항상 물을 채워둬야 한다. 지금은 버릇이 되어 조금만 비어있으면 반사적으로 물을 채우고 적당히 용도를 나눠 쓰지만, 마시는 것까지 브리타 물을 썼을 때는 꽉 채워놔도 금방 비어버리는 통에 귀찮음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게다가 정수가 되었더라도 브리타로 거른 물은 특유의 맛이 남아있어서 맹물로 마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밥을 할 때, 국을 끓일 때, 얼음 얼릴 때, 그리고 생수가 없을 때 보리차를 끓여 먹는 용도로 썼다.


2. 생수를 사다 나르다.

브리타의 물맛을 참지 못하고 생수를 사다 먹기 시작했다. 생수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Purified, Distilled, Spring water 등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스프링워터의 물맛을 가장 선호한다.


얼마나 큰 생수를 사느냐에도 나름이 변천사가 있다. 처음에는 코스트코에서 1갤런짜리 페트병 여섯 개 묶음을 사곤 했다. 하지만 2층 집으로 이사 가면서 6갤런의 물을 한 번에 옮기는 게 힘들어졌다. (1갤런은 약 3.8리터로, 6갤런은 22킬로그램이 넘는다.) 적절한 손잡이도 없는 비닐 재질의 생수를 매장에서 카트로, 카트에서 다시 차의 트렁크로, 트렁크에서 2층 집으로 옮기는 건 아주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2.5갤런짜리 수도꼭지형 생수로 바꿨다. 이 생수통에는 손잡이가 있지만 양손에 하나씩 들면 2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무게다. 들고 가면 걸음이 매우 매우 느려졌다. 남편과 나는 그럴 때마다 같이 했던 게임의 캐릭터 대사를 따라 'It's too heavy to carry!'라거나 'It will slow me down.'이라고 하면서 웃곤 했다.


3. 냉온수기와 물배달

신혼 생활의 버프(?)를 받아 무거운 물을 들고도 깔깔 웃을 수 있었지만, 물 나르기만 4년을 하자 이제는 그만하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물이 있나 없나 ‘를 확인하고 ‘또 물 사러 가야 해.’라며 신경 쓰는 것이 싫었다.


지금 집으로 이사 오고 나서는 아예 냉온수기를 사 버렸다. 정수기가 아니라 냉온수기다. 정수기는 수도관에 연결해 설치해야 하는데, 아파트에 사는 처지라 벽에 구멍을 뚫는 등의 공사를 하고 싶지 않았다.


냉온수기 렌탈이라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우리 것을 갖고 싶은 마음에 일시불로 구매를 해 버렸다. 아래쪽에 3갤런짜리 물통을 꽂아두면 차가운 물과 뜨거운 물이 모두 나오는 모델이다.


3갤런짜리 물은 한 달에 세 통씩 배달이 온다. 배달팁까지 약 40달러; 직접 가서 물을 사는 것보다는 돈이 많이 들지만 장점이 많다.


물의 유무를 확인하는 심리적 스트레스를 없애주고,

무거운 물을 나를 필요도 없으며,

물을 더 많이 마신다, 실온의 뜨뜻한 물보다 차가운 물이 훨씬 쉽게 넘어가기 때문이다.

뜨거운 물도 나오니 차를 만들 때도 편하다.

공간도 절약된다. 식탁 위에서 갈 곳 없이 헤매던 페트병과 안녕이다.

쓰레기도 덜 나온다. 빈 물통은 물 배달을 올 때 내놓으면 수거한 후 소독해 재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많은 장점들 덕분에 냉온수기와 물배달 조합은 아직까지 최상의 만족도를 주고 있다. 사실 브리타도 버리지 않고 요리할 때는 브리타를 쓰는데, 혹시 배달온 물이 부족할까 봐서다. 아직 이 조합이 된 지 몇 달 되지 않아서 정확한 물 사용량은 더 써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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