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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작꼬작 Dec 12. 2023

스물다섯의 김치 만들기

배추와 무를 안고 버스에 탔다

미국 마트와 한국 마트의 조합으로 먹을 것을 해결하고, 물 마실 방법도 찾았다. 그 후에 절실해진 것은, 김치였다.


한국을 떠나올 때 김치를 아마도 한두 통 정도 가지고 왔을 것이다. 그 김치는 다른 마른 밑반찬들과 함께 한동안 우리 식탁을 나름 풍성하게 꾸며줬지만 금세 바닥을 보였다.


남편의 요리 실력으로 김치를 만드는 것쯤 뚝딱이었지만 문제는 재료 구하기였다. 그나마 집에서 가까웠던 미국 마트에는 배추나 무가 없었다. 아마 있었다고 하더라도 마트의 모든 것이 낯설었던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김치 없이 며칠을 지내고 대신 오이무침이나 상추 겉절이 같은 대용품을 만들어 먹었다. 하지만 김치에 대한 갈망(?)은 점점 심해져서, 기회만 되면 김치를 만들어 먹겠다고 벼르고 있던 때였다.


마침 운전면허를 신청하러 다른 동네에 갈 일이 생겼는데, 찾아보니 그곳에는 Sprouts라는 못 보던 마트가 있었다. 정식 명칭이 Sprouts Farmers Market인 이곳은 각 지역의 식재료를 신선하게 가져오는 것에 특화된 마켓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갔던 그곳에서 우리는 익히 보아오던 배추를 찾았고 그 옆에서 무도 발견했다! 배추는 Napa Cabbage, 무는 Dacon이라는 이름이었다.


배추 두 통과 무 하나를 사서 나오는 길, 익숙하지 않은 식재료에 점원이 데이컨이 맞냐고 물어보기까지 했었다. 아직 영어 할 때면 긴장하던 그 시절의 나는 베이컨 안 샀는데?라고 생각했다. 정착 초기의 이불킥하는 일화에 하나가 추가되었다.


그리고 차가 없던 우리는 그 거대한 배추와 무를 품에 안은 채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길, 이 상황이 뭔가 웃겨서 웃음이 피식피식 나왔다.


한국에서는 장 보고 버스를 타고 집에 간 적이 없었다. 항상 부모님 차를 타고 마트에 갔다가 트렁크에 짐을 실어왔으니. 그 일상이 사실은 당연하지 않았음을, 캘리포니아에서 알게 되었다.


마침내 김치를 만들 시간. 남편의 진두지휘 아래 배추를 절이고 풀을 만들고 고춧가루와 새우젓, 설탕, 조금의 과일, 썰어둔 야채 등등을 섞었다.


부엌까지 모두 카펫이 깔려있던 우리의 첫 스튜디오에서, 혹시나 얼룩이 생기거나 냄새가 남을까 노심초사하며 조심스럽게 만들었던 우리의 첫 김치는 끝내주게 맛있었다. 때깔도 아주 고운 빨간색이었다. 그 김치로 우리는 보쌈도 해 먹고, 반찬으로 먹고, 김치찌개도 끓여 먹고, 마지막으로 볶음밥까지 야무지게 해 먹었다.


그 후로는 김치 만드는 것이 무섭지 않아 졌다. 차가 생기고 한인마트에 갈 수 있게 되자 김치용 큰 통도 샀다.


여러 통을 담아 친한 친구들에게 나눔 하기도 했다. 집에서 직접 만든 김치에 목말라하던 친구들은 김치 선물을 너무나 고마워했다.


친구들 중 나는 가장 어린 편에 속했다. 그래봐야 몇 살 많은 언니들은, 한국에 있었다면 결혼했을지 아닐지도 모를 나이였고 모두 신혼이었다. 다 같이 요리에 익숙하지 않아 매일 무엇을 해 먹어야 할지 고민하던 우리들. 그중 특출 나게 요리를 잘하고 기꺼이 김치를 만드는 남편을 가진 덕에, 나는 스물다섯에도 김치를 만드는 훌륭한 동생이 될 수 있었다.


그 후에도 김치 만들기는 계속되었다. 백김치가 먹고 싶으면 남편은 고추를 삭혀서(!) 만들어줬고, 깍두기나 파김치도 뚝딱이었다.


나중에는 요령이 늘어 배추를 통으로 절이기보다 썰어서 일명 막김치를 만들기도 했는데, 그런 막김치는 나 혼자서도 잘 만들곤 해서 남편은 잘 가르쳤다며 뿌듯해했다.


지금은 다시 사 먹는 김치로 연명 중인데, 배추가 너무 비싼 까닭이다. 배추 한 통에 10달러씩 하니 차라리 사 먹는 것이 저렴하다. 한인 마트가 없는 곳에 살다 보니 배추와 무 수요도, 공급도 많지 않은 탓에 가격이 저 모양이다.


그래도 가끔은 김치를 만들어 먹는다. 이제 겨울이 왔으니 다시 김장 매트와 김치통을 꺼낼 때가 된 것 같다.

처음 만들었던 김치와 두 번째 만든 김치. 마늘 보쌈까지 야무지게 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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