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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mprendo May 04. 2024

도피성 이야기

민수기 35장 28절, 히브리서 4장 14절

어두운 하늘에 별들이 하나씩 모여들자 게데스, 골란, 길르앗 라못, 세겜, 헤브론, 베셀의 도피성들에 하나둘씩 불빛이 켜졌다. 이것은 각 도피성들이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함께 나눌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였다. 하지만 도피성들은 이야기하는 중에도 계속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그들은 ‘받아들이는 성읍’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낮뿐만 아니라 밤에도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우리처럼 좋은 일을 하는 곳이 또 있을까?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도 우리한테만 오면 살 수 있잖아. 죽음을 면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지.” 

한 도피성이 어깨를 으쓱하며 자랑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그나저나 오늘 낮에 너희 쪽에 열 명이나 들어왔다며?” 

또 다른 도피성이 물었다.

“응, 그래서 긴장을 좀 했지. 동네 사람들에게 쫓겨 들어온 사람도 있었거든. 보기만 해도 온몸에 진땀이 나더라고. 내가 달려가서 빨리 데리고 오고 싶을 정도였다니까.”

“근데 레위인이 사는 성읍 중에 우리 여섯만 너무 바쁜 거 아냐? 마흔 개의 성읍은 저렇게 태평한데….” 

누군가 입을 삐쭉거리며 말했다.

“근데 전부 실수로 살인한 건 맞아? 전에 고의로 살인했던 사람이 거짓말로 들어왔다가 결국 들켜서 공개 처형됐잖아.”

“그때 아주 끔찍했지. 이번엔 다 실수였다는데, 사실이었으면 좋겠어.” 

“이스라엘 사람뿐만 아니라 타국인도 있었는데 실수로 살인을 했다나 봐. 사연을 들어보니 다들 딱하더라고. 그중 한 사람은 이웃이랑 숲에 나무를 하러 갔는데 나무를 찍다가 도끼가 자루에서 빠진 모양이야. 근데 그게 하필이면 그 이웃이 그것을 맞을 게 뭐야. 일부러 죽이려고 한 게 아니었던 거지. 우리가 없었으면 그 사람은 그 자리에서 바로 복수를 당해 죽었을 거야.”

“그런 사람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우리가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니.”

“맞아, 어디에서 와도 하룻길이면 올 수 있는 거리에다가, 들어오는 길도 넓고 좋으니 아무나 편하게 올 수 있지.”

“맞아, 맘만 먹으면 누구나 올 수 있는 차별이 없는 곳이야.”     


“참, 그나저나 너한테 있던 그 사람 오늘 드디어 나갔다며? 도대체 얼마나 오래 있었던 거야?” 

한 도피성이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삼십 년이었던가?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암튼 오래됐어. 나랑 정이 정말 많이 들었지.”

“와, 정말 오래 있었구나. 그래도 고향 마을로 돌아가게 돼서 정말 다행이야. 절대 못 돌아갈 줄 알았는데.”

“그러게. 그래도 마냥 기쁘지만은 않더라고. 대제사장이 죽어서 성읍 사람들이 너무 슬퍼했거든. 그래도 대제사장이 죽어야만 그 사람이 나갈 수 있으니….
 늘 좋은 일과 안 좋은 일은 함께 오는 것 같아.
 그의 죽음이 아니면 이곳에서 살인자가 나가서 자유롭게 살 방법은 없잖아.”


“순서는 다르긴 하지만 어떻게 보면 대제사장이 그 사람을 위해 죽은 거나 마찬가지네, 안 그래?”

“듣고 보니 그 말도 맞는 것 같네. 우리 대제사장의 죽음으로 죄인들이 여기에서 나가서 자유롭게 된 거니까….”

[민수기 35장 28절] 이는 살인자가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도피성에 머물러야 할 것임이라 대제사장이 죽은 후에는 그 살인자가 자기 소유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느니라     
[히브리서 4장 14절]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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