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7장 8절
열두 개의 지팡이가 모세에 손에 들려 장막 안으로 들어왔다. 모세는 지팡이들을 바라보며 “내가 택한 자의 지팡이에는 싹이 나리니 이것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너희에게 대하여 원망하는 말을 내 앞에서 그치게 하리라”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한참을 조용히 성막 속에 머물던 그는 단호한 표정으로 장막을 나섰고, 그렇게 지팡이들은 여호와의 법궤 앞에 모두 모이게 됐다. 지팡이에는 각각 지파 지도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그중에는 아론의 지팡이도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몸에 적힌 이름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여기 다들 열두 지파를 대신해서 모인 거지?”
지팡이 하나가 나머지 지팡이들을 쭈욱 돌아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응, 맞아.”
지팡이들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이상하네. 넌 열두 지파에도 안 들어가는데 어떻게 들어온 거야?”
눈썰미가 좋은 지팡이가 아론의 이름이 적힌 레위 지파의 지팡이를 보고 물었다.
“나도 잘 모르겠어. 하나님이 특별히 여기에 아론의 이름을 쓰라고 하셨다는 것밖에는.”
“나, 그래서 우리가 요셉 지파 하나로 묶여서 왔나 보네.”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를 대표하는 지팡이가 끼어들며 말했다.
그렇게 이름이 아니면 구분도 할 수 없는 마른 막대기들은 장막 안에 들어온 이유도 모른 채 하룻밤을 보내게 됐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장막 안은 어제의 침착한 분위기와는 달리 매우 소란스러웠다. 여기저기 감탄과 놀람, 의심, 수군거리는 소리로 가득했다. 그리고 모든 지팡이의 시선에 한 곳으로 향해있었다.
“너 밤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한 지팡이가 너무 놀라서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는 아론의 지팡이에게 물었다.
“밤새 무슨 치장을 그렇게 한 거야? 왜 이렇게 튀는 건데? 분명 어제는 우리처럼 마른 막대기였는데…. 아, 혹시 처음부터 우리랑 달랐던 건가? 내가 못 봤던 건가?”
판단하길 좋아하는 지팡이가 당황해서인지 혼잣말 같은 질문들을 폭포같이 쏟아냈다.
“그건 아닐 거야. 어제 우리랑 같이 왔던 걔 맞아. 내가 똑똑히 기억하거든. 더군다나 이곳에 들어온 후에 나가거나 들어온 지팡이는 하나도 없었어. 너희도 알다시피 내가 아주 작은 소리도 잘 듣잖아. 그건 날 믿어도 좋아.”
귀가 좋은 지팡이가 그들의 말에 조곤조곤 설명해주었다.
“나 맞아, 레위 지파 대표로 온 아론의 지팡이. 나도 이렇게 당황스러운데 너희들은 오죽하겠니. 나도 갑자기 몸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이 살구 열매 때문에 몸이 무거워서 좀 불편하기도 하고.”
“그래도 이건 너무 이상한 거 아니야? 네가 뭐가 그렇게 대단하길래 꽃을 피우고 열매까지 맺은 거야? 우리랑 똑같은 막대기 주제에!”
또 다른 지팡이가 사나운 눈빛으로 불평을 쏟아내며 끼어들었다.
“그래 맞아, 도대체 누가 시킨 거야? 아니면 누가 몰래 그렇게 만들어준 거야?”
그 옆에 있던 다른 지팡이가 눈에 쌍심지를 켜며 다그쳐 물었다.
“사실은…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거야. 내게 생명과 힘을 주셨어. 너희도 알다시피 이건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잖아. 이 꽃과 열매 다 진짜라고. 하나님이 뭔가 계획이 있으셔서 우릴 여기에 다 부르신 것 같아.”
“아, 그럼 우리가 여기 들어온 이유가... 혹시... 그건가? 난 여기에 들어온 순간부터 계속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계속 생각하고 있었거든.”
생각이 많아 보이는 막대기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게 뭔데?”
가장 작은 막대기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얼마 전에 고라 자손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다가 땅속으로 꺼져버렸잖아. 그리고 그 일로 사람들이 또 그들에게 대들어서 염병으로 죽었고. 그렇게 죽은 사람이 만 사천칠백 명이나 된다지?”
“맞아, 엄청나게 죽었어. 사람들이 모세와 아론을 크게 원망하면서 지도자라는 걸 인정하지 않았거든. 그래서 하나님이 누가 지도자인지 알려주시려고 우리를 뽑으신 거야.”
이미 모든 이유를 알고 있었다는 듯 평온한 얼굴의 지팡이가 말을 받았다.
“그럼 이것이 하나님의 확실한 증거라면, 우리도 조심해야 할 것 같은데? 아론의 지팡이를 원망하면 우리도 고라 자손 꼴이 날지도 몰라. 이러다 불 속에라도 던져지면 어쩌려고들 그래. 그나마 지팡이로 있는 게 좋지, 불쏘시개가 되면 큰일이잖아.”
살짝 겁을 먹은 지팡이가 원망하는 지팡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순간 아론의 지팡이를 비난하던 지팡이들의 얼굴이 얼음처럼 굳어지면서, 입에서 나오던 원망들이 쑥 들어갔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모세와 아론을 백성들의 지도자로 세웠다는 걸 확실히 보여 주시려고 우리를 부르신 거구나. 그래야 사람들이 믿을 테니까.
이런 기적을 보고도 믿지 않는 사람이 있겠어?”
가장 목소리를 높였던 지팡이가 모든 것이 이해가 간다는 듯 아론의 지팡이를 부드럽게 바라보았다.
“정말, 내가 한 건 아무것도 없어. 난 그냥 너희들과 똑같은 마른 막대기일 뿐인데, 하나님이 날 선택하셔서 이렇게 바꾸신 거야. 어쨌든 사람들이 날 보고 더는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우리 주인들이 정말 힘들어했거든.”
“그럼 넌 앞으로 이 안에서 지내는 게 어때? 그러면 사람들이 널 볼 때마다 하나님이 모세와 아론을 지도자로 세우셨다는 걸 기억하고, 원망하지 않을 거 아니야. 사람들에겐 늘 눈에 보이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잖아.”
“그거 좋은 생각인데? 사람들은 잘 잊으니까. 적어도 날 보면 이 기적을 떠올릴 거고, 그러면 분명 모세와 아론을 지도자로 여기며 계속 순종할 수 있을 거야!”
[민수기 17장 8절]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