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롭게 1] 당신 대체 누구예요?
그 순간 모든 진실을 말할 뻔했다.
하지만 그 대신 감성적인 방법을 택했다.
때로는 감성적인 것이 더 실제적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한 세계는 마음을 주고, 이에 죄책감은 느낀 한 세계는 고백 대신 생일 선물로 받은 네 잎 클로버가 달린 작은 목걸이를 평생 목에 걸고 다닐 거라고 다짐한다. 그래서 두 세계는 더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영화는 줄리엣 비노쉬가 원작인 플로랑스 오브나가 쓴 『위스트르앙 부두(우리 시대 '투명인간'에 대한 180일간의 르포르타주)』를 읽고 감동해 프랑스 작가이자 감독인 엠마뉘엘 카레르를 영입하며 나온 작품이다. 참고로, 프랑스에 이 작품이 있다면 미국에는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노동의 배신』이 있다. 두 세계가 어떤 모습으로 소개되는지 비교하며 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다.
영화에서는 최하위 노동 계층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그런 현실이 와닿지 않은 르포르타주 작가인 마리안(줄리엣 비노쉬)이 사는 세계가 대조된다. 특히 아이 셋의 싱글맘으로 300유로짜리 구두와 150유로짜리 문신을 맘껏 하는 게 소원인 삶에 쪼들린 여자 크리스텔에서 특별히 누구에게 아쉬운 소리 해보지 않고 살아온 저명한 작가 마리안의 관계가 이 두 세계를 대변한다.
한 마디로 이 작품은 글로 배운 노동 현실을 몸으로 배우려고 했던 한 여자가 고된 일의 마지 노선인 위스트르앙 부두에 1시간 반 정박하는 여객선에서 최저임금에 죽 고생하며 르포르타주 작성 과정을 담은 이야기다. 언더커버 보스처럼 사람들을 속이며 글을 쓰고자 한 자신의 임무에 충실했던 마리안은 그 안에서 만난 사람들과 특별한 교류를 나누게 되면서 그사이가 허물어졌다가 벌어졌다가를 반복한다. 영화에서는 두 세계 사이의 거리가 계속 변한다. 물리적, 심리적 거리가 먼 두 세계가 마치 하나처럼 보일 정도로 좁혀지다가, 결국은 본래 자리로 돌아가며 멀어지며 끝나는 것이 냉혹하리만큼 현실적이다.
그녀가 6개월간 찾은 건 그저 글감뿐이었을까, 동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마지막 장면이 한동안 꽤 씁쓸했다. 내가 바란 그 결말로 끝이 났다면 너무 비현실적이라며 불평을 했을 수도..
당신 비난 안 해요. 당신 할 일 한 거죠. 우리랑 같이 갈래요?
딱 한 시간만 하고 다시 데려다 줄게요. 아직도 변기 잘 닦는지 보고 싶어요.
안 해요.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맞아요. 각자 위치가 있는 거죠.
[Zoom in]
- 두 세계의 괴리감을 보여주는 두 공간을 가르는 수평선 구도의 풍경들
- 어쩌다 맺어진 우정과 유대감 속에서 진실을 말하지 못해 흘리는 눈물
- 유리창 너머로 출판 기념식을 쳐다보는 마릴루의 무표정한 얼굴
[음악]
https://www.youtube.com/watch?v=4tZcrFMqSdw
마티외 람볼레(Mathieu Lamboley)의 클래식컬한 음악이 극의 긴장감과 몰입도를 높인다. 음악이 맘에 들었다면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그의 유튜브 채널을 들어보길 바란다. 분명 자주 듣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