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본
스페인의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Pedro Almodóvar)의 영화는 오감을 자극한다. 특히 그가 자주 사용하는 빨간색은 열정과 삶, 죽음을 내포하고 초록과 분홍 등과의 현란한 매칭도 영화의 중요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간 그 원색의 미장센에 늘 감탄했지만, <페인 앤 글로리>에서 안토니오 반데라스의 옷을 보고 다시 감탄했다. 최근작 <더 휴먼 보이스>에서 틸다 스윈턴의 빨강이 그 감탄의 한계를 한 번 더 깰 것 같긴 하지만. 하지만 이보다 나를 감탄케 하는 게 있으니 바로 영화 음악이다. 그의 음악 선택은 왕가위만큼이나 내 마음을 뛰게 한다.
그의 영화를 보다 건진 보석 같은 음악,
세네갈 국민가수 이스마엘 로의
<타자본(Tajabone)>
그의 영화 마니아라면 모를 수 없는
이스마엘 로(Ismael Lo)는 니제르(아프리카 중서부의 공화국)의 도시, 도곤두치에서 태어났다. 세네갈 출신인 아버지와 나이지리아 출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세네갈 서부에 있는 항만도시 뤼피스크에서 자랐다. 수도의 예술 학교에서 공부하고 음악 활동을 시작했는데, 그의 음악이 페드로 알모도바르 영화에 쓰이면서 세계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그의 노래들 속에는 인종 차별이나 강제 결혼, 가난, 기아, 에이즈, 평화 등의 사회 문제가 짙게 녹아 있고, 사회 캠페인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타자본(Tajabone)은 무슬림의 중요한 행사인 라마단(한 달간의 금식 기간) 이후에 벌어지는 축제라고 한다. 이날 아이들은 기뻐하며 이웃집에 가서 노래와 춤을 추고 대가로 사탕이나 과자를 얻는 데, 반대 성별의 옷을 입고 가는 전통이 있다. 감독이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는 가사의 뜻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노래는 감독이 담고자 하는 이야기를 정확히 관통하고 있다. 거장의 감이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이 노래는 주인공 마누엘라가 바르셀로나로 돌아오는 터닝 포인트 씬에서 절묘하게 흘러나온다. 재결합과 회복을 뜻하는 바르셀로나로 돌아오는 그때, 감독은 기차를 탄 그녀 곁에 이 노래를 넣어서 기차 터널과 도시의 공중 촬영을 연결했다. 이 노래는 바르셀로나라는 도시가 아르헨티나 이민자, 남편과의 관계, 아들을 잃은 상처 입은 한 여성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이 곡 속의 월로프어(세네갈 언어)와 하모니카, 기타 소리가 한 데 섞여서 완벽한 미적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가사가 살짝 당황스럽긴 하지만, 음악은 언어로 납득되는 게 아니니까.. 다른 언어로 번역된 내용을 본 거라서 원어와 차이가 있을 수도 있지만, 일부 이런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는 정도만 알고 지나가면 좋을 것 같다. 모르는 게 더 좋을 수도 있고....
타자본에 갑시다. 타자본에 갑시다.
압둘 자바는 천사
하늘에서 너의 영혼으로 내려온 천사는
당신에게 기도했는지 물어볼 거예요.
당신에게 금식했는지 물어볼 거예요.
보석 같은 노래를 찾으면 그 주변에 이어져있는 다른 노래들이 궁금하기 마련이다. 지금 이 글을 보는 누군가도 유튜브에 그의 이름을 치고 있을 지도..지금은 관심이 있다면 모든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시대이니 꼭 들어보길 바란다.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다양한 리듬에 빠져있다 보면, 그도 다정한 나의 이웃이 된다.
이 곡 외에 몇 곡을 소개하자면, <Jammu Africa>는 2002년 월드컵 전야제에 초대되어 부른 노래라고 하는데, ‘아프리카를 위한 평화’라는 뜻이다. 그야말로 평화의 메아리가 퍼진다. <Dibi dibi rek> 전주 부분을 차고 올라오는 디비디비렉은 살짝 느린 마이너 곡이지만, 중독적인 후크가 있다. <Without blame>은 세련된 스트링과 하모니카가 따뜻하게 다가온다. <Rero>는 우리나라 7080 포크송 느낌, <Sofia>는 스쿠스 스타일의 업템포 팝, 전자 리듬이 통통 튀는 곡이다.
하지만, 아프리카 리듬이 소란스럽게 느껴지고 타자본과 비슷한 느낌이 좋다면, <Ale Lo>, <Khar>, <Badara>, <Mbindane>, <Baykat>를 추천!
[보너스 1] 세자리아 에보라와 함께 한 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