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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mprendo Feb 11. 2023

돌베개 이야기

창세기 28장 15절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지친 기색이 역력한 한 사내가 루스 땅에 들어섰다. 그는 한눈에 봐도 다른 여행자들과는 달랐다. 그는 계속 뒤를 돌아보며 누군가가 쫓아올까 봐 걱정하는 눈치였다. 해가 지자 그는 나를 집더니 베개로 삼고 누웠다. 그리고 피곤했는지 바로 두 눈을 감았다. 그런데 내 몸이 축축해지는 게 느껴졌고, 그의 두 눈에는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그와 머리를 맞대고 함께 잠이 들었고, 함께 꿈을 꾸었다. 아침 일찍 잠에서 깬 그는 누운 채로 내게 천천히 꿈 얘기를 들려주었다. 나도 함께 꾼 꿈이지만, 모른 척 그냥 들어주기로 했다.      


“어젯밤에 신기한 꿈을 꾸었어.”

“그나저나 마음은 괜찮아? 어제 네가 여기 나타났을 때 정말 힘들어 보였거든. 말도 붙이지 힘들 정도로.”

“솔직히 지금 난 쌍둥이 형인 에서의 장자권을 가로채서 하란에 계신 외삼촌 집으로 도망가는 중이야. 마음의 준비도 못 하고 갑자기 고향을 떠나게 됐는데, 더는 부모님과 가족들을 못 본다고 생각하니 너무 힘들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너무 막막하고.” 

“그랬구나. 그런데 꿈을 꾸고 나니까 앞이 좀 보이는 것 같아?”

“응. 하나님이 어마어마한 축복을 해주셨거든.”

“정말? 무슨 축복인데? 빨리 말해줘 봐.”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그에게 보채듯 물었다. 그러자 그는 한결 편안한 얼굴로 말했다.     


“내 앞에 사닥다리가 섰는데,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아있었어. 그런데 거기에 하나님의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거야. 조용히 한참을 쳐다봤지.”

“천사들은 아무 말도 없었어?”

“대신 하나님이 그 위에 서서 말씀을 해주셨어.”

“와, 하나님이 직접? 뭐라고 하셨는데?”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하나님이 지금 여기 이 땅을 나와 자손들에게 주시겠다고.”

“그럼 너의 자손들이 동서남북으로 퍼져가겠네. 모든 사람이 너와 자손들 때문에 복도 받겠고.”

“어떻게 알았어?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거든.”

“척하면 척이지!” 

나는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을 재빨리 수습하고는 다시 입을 꽉 다물었다.

“그리고 내가 어디로 가든지 지켜주신다고 약속하셨어. 그리고 내가 가장 바라는 것도 이루어주신다고 하셨고.”

“네가 가장 원하는 게 뭔데?”

“꼭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는 거.”


“하나님의 약속은 변함이 없잖아. 계획하신 걸 다 이루실 때까지 너와 함께 하실 테니까 걱정하지 마. 넌 꼭 돌아오게 될 거야.”      


어느새 그의 눈에는 희망이 가득 차올랐다. 지친 얼굴과 눈물을 흘리던 그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딴사람이 되어 있었다.

“정말 하나님이 여기 함께 계시나 봐. 이곳은 정말 대단한 곳 같아. 하나님의 집이야. 하늘로 들어가는 문! 사실 지금도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어. 깜깜한 어둠 속에 있는 것 같아.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로 했어. 지금 분명한 건 하나님이 해주신 말씀뿐이니까. 근데 참 이상하지? 앞길이 전혀 보이지 않으니까, 하나님이 더 분명하게 보이는 것 같아.”

“그래, 하나님은 약속을 꼭 지키시는 분이잖아. 너와 함께 하시니까 지켜주시고 먹을 것도, 입을 옷도 다 주실 거야. 그리고 우리는 꼭 이곳에서 다시 만나게 될 거야.”

“응, 그때는 나도 그분이 나의 하나님임을 진심으로 고백하게 되겠지. 그리고 그렇게 되면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 분의 일을 꼭 하나님께 드릴 거야.”     


그는 나를 기둥으로 세우더니 갑자기 내 위에 기름을 부었다. 아끼던 기름을 부어 제단을 쌓은 것이다. 그러면서 계속 이곳으로 꼭 다시 돌아오고 싶다며, 꼭 그렇게 될 거라고 여러 번 다짐하듯 되뇌었다. 다시 돌아올 때 내가 있는 이곳이 하나님의 집이 될 거라며, 원래 이름인 루스 대신 벧엘이라는 새 이름도 붙여주었다. 그러고는 힘차게 일어서서 다시 길을 떠났다. 나는 밧단아람으로 떠나는 그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었다. 어느새 그의 바람은 나의 간절한 바람이 되어 있었다. 그를 꼭 다시 만나고 싶어졌다. 하나님의 약속이 얼마나 신실한지 함께 이야기하며 웃는 날이 꼭 왔으면 좋겠다. 


창세기 28장 15절-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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