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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mprendo Feb 25. 2023

불 이야기

누가복음 22장 61-62절

나는 대제사장의 집 뜰에 있는 모닥불이다. 사람들은 내가 따뜻하다고만 생각하지만, 사실 나는 사람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죄를 지은 사람들은 나를 피할 때가 많다. 아무리 꼭꼭 숨겨놓은 죄도 내 앞에서는 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참, 며칠 전부터 예루살렘 거리에 베드로가 스승을 배신했다는 소문이 쫙 퍼졌다. 스승에게 욕을 했다는 둥, 심하게 때렸다는 둥 별의별 소문이 다 돌았다. 하지만 그날 일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증인은 바로 나다. 나는 뭐든 환하게 밝히는 일에는 자신이 있어서, 이 일 또한 소상히 밝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 예수라는 자가 이곳에 잡혀 들어왔다. 바로 그의 마음을 들여다봤는데 신기하게도 죄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착한 사람도 죄가 있기 마련인데, 아무리 들여다봐도 보이지 않았다. 오자마자 사람들이 그를 둘러쌌고,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았다. 그런데 그들과 달리 멀리서 한 남자가 그 예수를 지켜보고 있었다. 바위처럼 얼어있던 그는 어딘가 모르게 많이 긴장하고 불안해 보였다. 뭔가 감춘 게 있는지 처음에는 나를 피하는 듯했지만, 너무 추운 날이라 결국은 내 곁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고개는 푹 숙이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죄 없는 예수가 계속 심문을 받고 있었다. 사람들은 없는 죄를 만들어내느라 애썼는데, 안타깝게도 그의 편을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뭔가 재판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결국 그들은 그가 신성 모독을 했다며, 침을 뱉고 주먹으로 얼굴을 치고, 심지어 하인들까지도 그를 때렸다. 그러자 그를 계속 힐끗거리던 그 남자의 얼굴이 점점 더 일그러졌다. 둘은 아는 사이가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아는 척하지 않기로 했다.      


시간이 흐르자 내 앞에 앉은 그 남자의 얼굴이 조금씩 드러났다. 그러자 그를 빤히 쳐다보던 여종 하나가 그에게 예수와 같은 편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모르는 사람이라며 바로 잡아뗐다. 물론 사람이 너무 놀라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조금 후에 또 다른 사람이 그를 가리키며 예수와 같은 편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또 부인했다. 그리고 한 시간쯤 흘렀을까. 또 한 사람이 그가 갈릴리 사람이고 예수와 함께 동산에 있는 걸 봤다며 자세히 말했다. 그리고 자기 친척이 그에게 귀가 잘렸다며 흥분해서 소리까지 질렀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는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다며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세 번이나 아니라고 소리치는 그의 얼굴에는 불빛으로도 밝힐 수 없는 어둠이 가득했다.     


그 순간 새벽을 알리는 닭이 울기 시작했다. 


그 소리 때문이었을까, 예수와 그의 눈이 서로 마주쳤다.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눈 맞춤이었다. 심문을 받던 예수가 그를 쳐다보았고, 이번에는 그도 예수를 똑바로 보았다. 그 순간 그는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참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 짧은 순간 둘 사이엔 무슨 무언의 대화가 오간 것일까….     


그런데 갑자기 밖에서 엄청난 통곡 소리가 들려왔다. 울음소리가 얼마나 큰지 밝은 빛을 내는 게 미안할 정도였다. 그순간 나는 내 예감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그 둘은 아는 사이가 틀림없었다. 그것도 아주 잘 아는 사이였다. 분명 예수의 눈빛은 그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나보다 더 훤히 그리고 깊게. 이곳에 있다 보면 다양한 울음소리를 듣는데, 그의 울음처럼 마음을 들킨 듯한, 온갖 감정이 뒤섞인 형용할 수 없는 울음은 처음이었다. 과연 그 남자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었던 걸까….     


후에야 나는 그 사람이 베드로라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은 그가 예수의 열두 제자 중 수제자라고 했다. 솔직히 내가 불빛만 비추지 않았어도 그가 그렇게 곤란하지는 않았을 텐데 싶어서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쨌든 이런저런 소문이 많지만, 내가 본 바로 베드로는 두려움 때문에 스승인 예수를 외면했다. 하지만 곧바로 후회했다. 그리고 그 순간 사람들의 모욕을 받던 예수의 마음은 분명 밖에서 통곡하던 베드로를 향하고 있었다. 그 연약한 모습도 그대로 받아주겠다는 사랑의 마음으로 말이다.


[누가복음 22장 61-62절]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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