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당신의 인생에 관심 없다.

이력서를 검토하며 나는 이렇게 느꼈다.

by jems

다소 차가운 제목일지 모른다. 따뜻한 위로가 오가는 브런치스토리의 결과는 조금 다른 글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여러분이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을, 어느 작은 IT 회사의 채용 담당자로서 이 글을 쓴다.

비록 작은 회사지만, 나는 하루에도 100장이 넘는 이력서를 검토하곤 한다. 2026년 새해를 맞아, 수많은 지원자를 마주하며 느꼈던 날것의 감정을 기록해보려 한다.




1. 우리는 당신의 인생에 관심이 없다.

이력서를 검토하다 보면, 생각보다 '이력서'의 본질을 놓치는 지원자가 많다는 것을 느낀다.

이력-서(履歷書) 「명사」 이력을 적은 문서. (표준국어대사전)


말 그대로 이력서는 여러분의 '이력'을 적는 문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력서가 아닌 '자서전'을 써 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OO전자에 지원한 홍길동입니다. 저는 어렸을 적부터 매사에 성실했습니다. 중학생 때는 반장을 도맡아 학급 전체를 이끌었고..."


보통 이런 '자서전' 형태의 글은 신입 지원자에게서 자주 보인다. 이유는 간단하다. 적을 만한 이력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이력이라는 것은 거창한 타이틀이 아니다. '내가 어떠한 성과를 이루었느냐'가 핵심이다.


학급 반장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다. 반장으로서 내세웠던 공약을 실제로 이행해 낸 성과, 혹은 당선되기 위해 갈등을 해결했던 구체적인 노력과 과정이 바로 이력이다. 비단 반장 경험뿐만이 아니다. 스스로 공부법을 터득하기 위해 학습량을 효율적으로 조절해 본 경험, 불편했던 무언가를 주도적으로 개선해 긍정적인 결과를 낸 경험. 이 모든 것이 당신의 훌륭한 이력이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이력서는 내 인생의 서사를 나열하는 자서전이 아니라, 나의 작은 성공 경험들을 증명하는 공간이다.


2. 대한민국 성인, 1년에 책 한 권도 안 읽는 사람이 태반이다.

2025년 국가데이터처의 사회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성인의 연간 평균 독서량은 약 7권에 불과하다고 한다. 갑자기 채용 이야기에서 왜 뜬금없이 독서율 통계를 들먹이는지 의아할 것이다.

이 통계를 가져온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글'을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평균이 7권이지,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1년에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그런데 이 '활자 기피'의 시대에, 채용 담당자라고 해서 다를까?


나 같은 작은 IT 회사의 실무자도 채용 시즌이 되면 하루에 100장이 넘는 이력서를 마주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상당수의 이력서가 빽빽한 '줄글'로 채워져 있다. 1년에 책 한 권도 제대로 읽지 않는 시대에, 생면부지의 지원자가 써 내려간 장문의 줄글을 꼼꼼히 정독해 줄 인내심 깊은 평가자는 드물다.

이력서를 검토하는 주체는 AI가 아니라, 피로를 느끼는 '사람'이다.

하루 100개의 서류를 검토하다 보면, 평가자의 뇌는 본능적으로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핵심 키워드만 빠르게 훑어본다. 이때 줄글로 꽉 찬 이력서는 평가자에게 정보가 아닌 텍스트 덩어리로 인식되어, 무의식적인 거부감과 지루함만 줄 뿐이다.


많은 지원자가 줄글을 쓰는 심리는 이해한다. 자신의 인생 스토리를 풀어서 설명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저는 비록 넉넉지 않은 환경에서 자랐지만, 온갖 고난과 역경을 딛고..."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보자. 생각보다 사람의 인생 서사는 비슷비슷하다. 아무런 고생 없이 비옥한 환경에서만 자란 사람은 드물다. 누구나 저마다의 고난이 있었고, 각자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노력해 지금 이 자리에 섰다. 당신의 노력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과정의 서사는 이력서라는 문서가 담아내기에 적절한 그릇이 아니라는 뜻이다.


채용은 '누가 더 힘들게 살았는가'를 겨루는 불행 배틀이나, 감동적인 휴먼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평가자는 당신의 눈물겨운 성장 배경보다, 그래서 "지금 당장 우리 회사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객관적 데이터를 원한다.

그러니 제발, 당신의 소중한 이력서를 줄글로 채우지 마라. 가독성이 떨어지는 줄글은 평가자에게 누군지 모를 사람의 자서전 읽기 숙제가 될 뿐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서사가 아니라 팩트다. 문장이 아니라 '개조식'으로, 감정이 아니라 '숫자'로 승부하라. 평가자가 숨을 쉬고 읽을 수 있게 공간을 제공하라. 그것이 당신의 이력서가 면접관의 책상 위에 남는 첫 번째 전략이다.


3. '복사+붙여 넣기'의 냄새는 생각보다 지독하다.

하루 100장의 이력서를 보다 보면, 신기하게도 '냄새'가 나는 이력서들이 있다. 바로 'Ctrl+C, Ctrl+V(복사, 붙여 넣기)'의 냄새다.

지원자 입장에서는 효율적인 전략이라 생각할지 모른다. 하나의 자소서를 만들어 수십 군데의 기업에 뿌리는 이른바 '난사' 전략. 확률 게임으로 접근하면 하나는 걸리겠지 하는 그 마음,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채용 담당자의 눈은 생각보다 예리하다. 아니, 예리할 필요도 없다. 너무 티가 나기 때문이다.


가장 최악의 경우는 회사 이름을 바꿔 적지 않은 경우다. 분명 우리 회사는 A사인데, 지원 동기에는 "B사의 비전에 깊이 공감하여..."라고 적혀 있다. 심지어 B사는 우리의 경쟁사이거나, 전혀 다른 업종인 경우도 있다. 이런 이력서를 마주하면 담당자는 어떤 생각이 들까? 그 순간 당신의 이력서는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 기본적인 성의조차 없는 종이가 되어 휴지통으로 직행한다.


비단 회사 이름을 틀리는 치명적인 실수만이 문제는 아니다. 내용 자체가 어디에 갖다 붙여도 말이 되는 만능형 문장들로 가득 찬 경우도 마찬가지다. "귀사의 혁신적인 행보에 감명받아..." "어떤 일이든 주어지면 스펀지처럼 흡수하여..."

주어(회사명)만 바꾸면 삼성전자에도, 동네 편의점에도 낼 수 있는 이런 영혼 없는 문장들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 이 사람은 우리 회사에 관심이 없구나. 그냥 월급 줄 곳이 필요한 거구나"라는 확신을 심어준다.


특히 나처럼 작은 IT 회사의 담당자들은 이 부분에 더 민감하다. 대기업은 '스펙'으로 1차 필터링을 하지만, 작은 기업은 '우리 회사의 서비스를 이해하고 있는지', '이 좁은 조직에 와서 진짜로 함께 일할 마음이 있는지'를 본다.


당신이 100군데에 지원서를 뿌리는 동안, 담당자는 단 한 명의 '진짜'를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켠다. 로또를 긁는 심정으로 이력서를 뿌리지 마라. 그 100장의 복제된 이력서보다, 단 10분이라도 우리 회사의 서비스를 분석하고 "이 회사의 A 서비스에 있는 B 기능을 개선해보고 싶습니다"라고 적은 한 줄이 훨씬 강력하다.

우리는 당신이 '아무 데나' 가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우리 회사'에 오고 싶은 사람이길 원한다. 그것을 증명하는 것은 거창한 포트폴리오가 아니라, 이력서 구석에 적힌 '우리 회사만을 위한 한 문장'이다.



지금까지 다소 차가운 제목으로 시작해, 꽤나 아픈 말들만 골라 쏟아낸 것 같다.

사실 나 역시 알고 있다. 하루 100장의 이력서를 검토하며 "줄글은 읽기 싫다", "복사 붙여 넣기 하지 마라"라며 불평하는 나조차도, 한때는 이력서 한 줄을 채우기 위해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불합격 통보 메일 하나에 세상이 무너진 듯 울었던 취업 준비생이었다.


이력서라는 종이 한 장에 내 모든 인생을 담아내야 한다는 압박감,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평가받고 거절당해야 하는 그 막막한 외로움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렇기에 나는 당신이 이 서류 전형이라는 차가운 관문을 넘어, 기어코 면접장에서 나와 마주 앉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우리는 당신을 떨어뜨리기 위해 혈안이 된 심판자가 아니다. 그저 수많은 서류 더미 속에서, 우리와 함께 웃으며 일할 '단 한 사람'을 간절히 찾고 있는 누군가의 동료일 뿐이다.


그러니 부디 지치지 마라. 당신의 그 치열했던 밤들과 흘렸던 땀방울이, 형편없는 가독성이나 작은 실수 때문에 가려지지 않기를 바란다. 당신은 이 종이 몇 장으로 단정 짓기엔 훨씬 더 근사하고 괜찮은 사람이다.


2026년, 긴 겨울을 지나 당신의 간절함이 담긴 이력서가 합격이라는 따뜻한 봄으로 피어나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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