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아홉 ㅣ 2017년 9월 12일
진작부터 뭐든 쓰고 싶었다.
에버노트를 켰다 끄기를 수 차례, 일기장을 펼치고 펜을 집어들었다 놓기를 수 차례.
어떤 이유에서인지 쓸 수가 없었다.
너무 답답해서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뭐라도 좋으니, 말이 아니라도 좋으니,
하나씩 끄집어 내어놓고 싶었는데 그게 안 되더라.
그렇게 하루 이틀, 몇 달이 지났다.
희안하게도 퇴사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때보다 여유로웠다.
촌각을 다투느라 전철 안에서, 고속버스 안에서,
멀미가 오려는 것을 막아가며 노트북을 켜고 스마트폰을 두드리는 일이 없었다.
밑도 끝도 없이 답 안 나오는 회의를 위해 빈 속에 커피만 들이키는 일도 없었다.
별 것 아닌 일에 날 세우고 으르렁 거리는 일도 없었다.
아, 가장 큰 것 중 하나는 밥이었다.
아침도 잘 안 먹고, 점심도 저녁도 애매하게 떼운 채 커피나 들이키던 내가
이때부터 삼시세끼를 챙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 속에서 여러가지가 일어났다.
피곤에 절어 살 때는 제대로 된 생각이라는 것을 할 틈도 에너지도 없었는데,
업무가 단순해지고 하루 일과가 루틴해지자 내 뇌에서도 공간이 생겨났다.
밥을 먹으니까 평소에는 기력이 달려서 근처에도 못 갔던 여러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우연한 순간 회사의 높은 누군가에게 했더니,
“귀신이 들러붙었다”며 “일을 빡세게 해야 딴 생각을 안 한다”고 했다.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되는데, 정적을 참지 못한 내 입이 방정이었다.
아무튼, 이때부터 나는 생각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다.
일 말고, 나에 대한 생각말이다.
나는 정말 일이 좋았고, 열심히였고, 그 안에서 행복했다.
잠을 자지 않아도 신바람이 났었고,
겨우 숨만 쉬고 살 수 있는 월급이었어도 나는 당당했다.
그런데 내가 옳다고, 좋다고 생각해서 시작한 이 일의 한 가운데에서
나는 어느새 닳고 닳아버린 ‘누군가’가 되어있었다.
내가 그토록 옳다고 좋다고 여겼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모호한 상태가 되었다.
나는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어떤 노력도, 자극도, 성장도 만들어내지 않는 나를 보았다.
하지만 스물 다섯의 내가 선택한 그 길 위에서
서른 셋이 된 나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결과적으로 퇴사 통보를 받았다.
인수인계를 할 것은 딱히 없었다.
내 안에서 일어난 변화를 향한 열망이 퇴사를 하게 한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대충 살고 싶지 않다.
내 인생, 나라는 사람의 이 인생, 잘 살고 싶다.
우선은 믿기로 했다. 나는 잘 할 수 있다고.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내에게 온전히 진심으로 믿는다-고 말해주면 그게 제일이다.
만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