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득하진 않아도 어찌저찌 이어지는 우리 사이
언제 한번 보자고 말하면, 과연 우리는 언제 만날 수 있을까?
"밥 한번 먹자", "언제 한번 보자"류의 말에는 생각보다 길고도 암묵적인 전제가 깔려있다.
이 말의 진정한 의미는 "(너랑 나랑 안본지가 꽤 되긴 했는데, 당장 언제 시간이 될지 혹은 너와 만나기 위해 시간을 낼지는 모르겠다만 그래도 언젠가는)밥 한번 먹자"이다.
먹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는 밥과 술을 매개로 수많은 만남을 담보하지만 모두 실제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실제로 이어지리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저 안부인사처럼 주고받을 뿐.
그래서인지 "언제 한번 보자"는 말에 진짜 만남으로 이어지는 사이가 점점 소중해졌다.
내게도 몇 달에 한번씩 뜨문뜨문 만나는 친구가 있다. 정기적인 만남은 아니다.
H와는 카카오톡 프로필이나 서로의 인스타그램 상단에 올라오는 스토리로 느슨하게 근황을 확인하고 종종 서로에게 하트를 보낸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닿아 날짜를 정하고 별다른 준비없이 만난다. 만나서 하는 대화라고는 시덥잖다. 편의점에 새로 출시된 과자 중 무엇이 최강자인지에 대해 몇십분을 떠들고, 사골처럼 우려먹는 고등학생 시절의 이야기를 한다. 쉬는 시간 10분 만에 매점까지 질주해 사먹었던 빵, 유난히 트집을 많이 잡던 선생님, 당시에 유행했던 아이돌의 흥망성쇠까지. 종종 어디선가 건너 들은 또 다른 친구의 근황을 전하기도 하고 직장에서 유난히 각자를 분노케 하는 순간들에 대해 떠들기도 한다. 서로의 말을 집중해서 듣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격하게 고개를 끄덕거리고,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많이 친다.
S와는 1년에 두 번정도 만난다. 가장 더울 때와 가장 추울 때이다. 1년 간 그 2번의 만남으로 서로에 대한 꾸준한 호기심과 관심을 풀어낸다. 사소한 모든 일상을 풀어낼 수는 없지만 서로의 굵직한 시간을 팔로우업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E와는 거의 숨쉬듯이 연락하는 사이였다. 잠든 시간은 계산에서 빼야겠지만, 서로가 잠들어있을 때도 아무렇게나 메세지를 남겨놓으니 거의 24시간을 연락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일상의 모든 것을 공유하고 사소한 취향과 버릇, 식성에 대해 빠짐없이 알던 친구이다. 제발 한 번만 들어보라며 서로의 노래 취향을 강요하고, 함께 좋아하는 메뉴를 수백번 먹었다. 웃거나 화내는 포인트가 비슷했으며 누군가에게 말하기엔 유치한 생각들도 그 친구 앞에서는 기꺼이 개그소재 삼아 이야기했다. 부산하게 대화가 이어질 때가 있는가하면 거꾸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침묵조차도 평안한 사이였지만 대화를 더 좋아했기에, 함께 걸었던 산책길이 유난히 많았던 친구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십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만나는 사람은 몇 달에 한번씩 뜨문뜨문 만나던 친구이다. 자주 보고 매일같이 연락하던 이가 나의 소울메이트인줄 알았으나 착각이었다.
친구사이라면 모든 걸 공유하고 서로의 시시콜콜한 사정과 비밀 조차도 기꺼이 품어주어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드라마에 등장할법한, 찐득한 친구를 갖고 싶다 생각한 날도 많았다. 그런 면에서 E는 나의 확실한 절친이었다.
관계에 있어서 빈도보다는 밀도가 중요함을, 안전한 거리와 적당한 예의가 필요함을 깨우친 건 E와의 관계가 멀어지고 난 후이다.
E와 나는 각자 할말을 하기에 바빴다. 대화라기보다는 배설에 가까운 연락들이 많아 어떤 날은 메세지를 읽고 그대로 지나치는 날도 많았다. 자주 만나고 늘 연락했기에 서로를 아무런 의심없이 매일 쥐는 수저같은 것 쯤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매일 같은 자리에 대충 벗어놓는 잠옷 쯤으로 여겼는지도 모른다. 흔한 말로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은' 것이다. 모든 것을 공유하고 시시콜콜한 것을 얘기하던 사이는 시간이 흐르며 더 중요한 것들이 생기자 그 우선순위에서 차츰 밀려갔다. 숨쉬듯 자연스럽게 늘 곁에 있을 줄로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기꺼이 시간을 내어 돌보지는 않았다. 관계에 무례했던 셈이다.
지금까지도 유지되는 관계들은 기꺼이 시간을 내어 돌본 결과이다. 그저 종종 들여다보고 느슨하게나마 서로의 시간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관계가 녹슬지 않았다. 매일같이 붙잡고 끈질지게 이어가는 것이 정답은 아니었다.
서로에게 조금의 틈과 거리를 두고, 만나는 순간 만큼은 충실한 것. 그게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방법이었다.
관계에 있어서 빈도보다는 밀도가 중요함을, 안전한 거리와 적당한 예의가 필요함을 깨우친 건 E와의 관계가 멀어지고 난 후이다.
찐득하진 않아도 근근히 어찌저찌 이어지는 느슨한 사이가 오래가는 사이라는 걸, 소중한 사람을 잃은 뒤에야 알았다. 닭발을 먹을 때나 할리우드의 B급 액션 영화를 볼 때, 2000년대 초중반의 랩음악을 들을 때 종종 E가 생각난다. 지금까지 관계가 이어졌더라면 서로에게 어떤 친구가 되었을까 궁금할 때도 많다. 과연 드라마를 보며 품었던 어린 시절의 판타지처럼 소울메이트가 되었을지, 아니면 어떠한 계기로 싸워서 멀어졌을지, 아무것도 확신할 수는 없지만 종종 그와의 별일없었을 관계를 상상하곤 한다.
어디에서든, 어떻게든 나의 한 시절인연이 행복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