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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모 May 10. 2024

나를 달래줄 딸기맛 사탕

일상에서 나를 위한 즉각적인 위로들을 마련할 것



어린 시절의 나는 칭찬스티커와 보상의 노예였다. 


최초의 칭찬스티커는 피아노 학원의 포도알맹이였다. 매일 해야 할 분량을 다 마치면 피아노 학원 원장님이 포도알 스티커를 붙여주셨다. 한판을 다 모으면 상품을 받았다. 나는 포도알스티커와 동그라미 앞에서만큼은 하기 싫은 일도 척척 해내는 어린이가 되곤 했다. 그 이후로도 스티커와 보상의 노예 연대기는 계속 되었다. 

집안일을 도우면 받을 수 있는 용돈, 받아쓰기나 쪽지시험을 잘보면 받을 수 있는 상품, 소아과에서 씩씩하게 진료를 마치면 받는 딸기맛 사탕까지. 

손에 쥘 수 있는 그 달콤한 것들은 나에게 늘 강력한 위안이자 보상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웠던 것은 소아과에서 받던 딸기우유맛 사탕이다. 


어렸을 때 소아과에서 주사를 맞고 나면 딸기우유맛 사탕을 한 개씩 받았다. 주사맞기에 성공하면 한 개, 울지 않고 주사를 맞으면 두 개를 받았다. 사탕을 받기 위해서 울음을 참은 적이 여러 번이었다. 

엄마와 베테랑 간호사 이모들의 "무서운거 아니야", "아픈거 아니야" 사기콜라보에 당해, 배신감과 따끔거림에 우는 어린 아이에게 딸기우유맛 사탕은 즉각적인 위로이자 강력한 보상이었다. 무섭고도 아픈 주사를 이겨낸 씩씩한 어린이만이 받을 수 있는 칭찬스티커이기도 했다. 간혹 딸기우유맛 사탕이 다 떨어져 원치 않는 맛의 사탕을 받는 날이면 실망감과 배신감에 서러워 더 크게 울었다. 그때부터였나보다. 썩 달갑지 않은 일을 하고 난 뒤에야 맛볼 수 있는 달콤함이 얼마나 자극적인지를 깨우친 것이다.



다 커버린 내게도 종종 딸기우유맛 사탕이 필요하다. 이제는 따끔거린다고 아이처럼 울어버릴 수는 없는 탓에 꽤 의젓한 모양새의 딸기우유맛 사탕이 필요해졌다. 


일을 하다 힘에 부칠 때에는 틈틈이 달달한 초콜렛과 커피를 주유한다. 굳이 수고롭게 예쁜 카페를 찾아가기도 한다. 마음이 버겁고 심란할 때는 데스노트같은 일기일 망정 한 페이지를 빼곡히 쓴다거나 핸드폰 갤러리를 뒤적이며 사진을 정리한다. 혼자 산책을 하고 숨이 찰 만큼 운동을 하며 때로는 좋아하는 이들에게 안기기도 한다. 

따끔거리고 쓰라린 순간은 많아졌지만 아이처럼 솔직해질 수 있는 순간은 적어졌기에 제법 어른스러운 딸기우유맛 사탕을 자주 찾아먹게 된다. 일상에서 이토록 나를 위한 즉각적인 위로들을 가까이에, 자잘하게, 많이 마련해두는 것이 나를 달래는 방법이다. 이제는 스티커를 붙여주는 피아노 학원 원장님도, 씩씩하다며 사탕을 쥐어주던 간호사 이모도 없어졌다. 그러니 내가 나를 친절하게 달래주는 수밖에. 


포도알맹이 스티커와 딸기우유맛 사탕에 연연하던 아이는 자라서 소주와 맥주를 섞어마시는 어른이 되어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딸기우유맛 사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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