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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혁진 Jul 25. 2018

표범

 


 작가 브레흐트 에번스는 자신의 작품 <표범>에서 흥미로운 반응 하나를 소개했다.  한 여성이 <표범>을 반납하면서 페도필리아적인 작품이라 맹비난했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다만 다양한 해석의 여지만을 남기려 한다.

  그럼 <표범>은 정말 페도필리아적인 작품일까? 이에 대한 평가는 유보하더라도, <표범>은 확실히 어린 여자 아이의 성적 학대를 암시하는 작품이기는 하다. 상상의 친구라 할 수 있는 표범은 점점 사악한 본성을 드러내고 이 과정에서 성적 학대를 암시하는 육체적 접촉이 빈번히 발생한다. 미성년자 아이돌이 트위터스터 게임을 하는 상황을 연상케하는 장면에서는 소아성애에 대한 의혹이 짙어진다. 우리는 이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 어떠한 평가가 내려지든 <표범>을 이야기하는데 있어 성적학대는 비평의 중심에 놓여져야 한다.  



미지의 세계를 안내는하는 트릭스터



  브레흐트 에번스는 2009년, 2011년 앙굴렘 국제 만화 페스티발에서 수상한 벨기에 아니  유럽을 대표하는 그래픽노블 작가다. 그의 작품은 누가 봐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개성이 뚜렷하다. 투명한 수채화, 경계 없는 칸, 형태 없는 말풍선 등은 브레흐트 에번스의 고유한 미적 양식이다.

 특히 투명한 수채화 레이어로 구성된 인물과 배경은 서로 경계 없이 자유로이 뒤섞이는데, 이 같은 ‘겹쳐 칠하기’ 기법은 세계를 ‘확장된 현실(expanded reality)’ 다시 말해 모호한 환상의 세계로 변모시킨다.

  그리고 그 세계의 중심엔 어릿광대와 같은 존재이자 다른 세계의 매개자인 ‘트릭스터’가 존재한다. 그들은 몽환적인 꿈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하며 또한 이 과정에서 초자아의 금령에도 억제할 수 없는 욕망을 표출한다. <표범>의 ‘표범’  역시 이러한 트릭스터다. 그는 <디스코 하렘>의‘ 로비’와 <예술 애호가들>의 ‘페테르손’과 같이 우리를 꿈의 세계로 안내한다. 다만 이전과 큰 차이라면  욕망의 대상이 이번엔 어린 아이라는 점에서 윤리적 비판에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다.



삼켜지는 이야기

 <표범>은 동화책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이다. 옆으로 긴 책 판형은 동화책을 연상시키며, 무엇보다 미지의 세계를 안내하는 동물 또는 괴물 캐릭터는 동화의 전형적인 이야기 구조다. 하지만 여기서 작가는 기존의 동화 서사를 비튼다. 주인공에게 우호적이어야 할 괴물 캐릭터가 위협적인 존재가 되며 결국 이야기의 결말을 잔혹하게 마무리 한다.


 이 같은 <표범>의 어두운 결말은  다른 동화와 비교하면 차이점은 더욱 두드러진다. 가령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서 주인공은 비일상의 공간인 괴물들의 나라에 갔다 일상의 공간으로 다시 돌아와 ‘저녁밥은 아직도 따뜻했어’라며 가정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그러나 <표범>의 경우 이와는 달리 주인공 아이는 성장하지 못하며 오히려 거대한 어둠에 집어 삼켜져 버린다. 아이의 방은 불길한 색조의 정글로 뒤엉켜져 있으며,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그로테스크한 어둠의 나선으로 빨려 들어간다.



 

 물론 동화의 삼켜짐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피노키오>에서 피노키오는 고래에게 먹힌 후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고, 존재의 위협이라는 동일한 모티브를 가진 <빨간 모자>의 주인공은 늑대의 배를 가르고 나와 인생의 교훈을 얻는다.  즉 삼켜짐이란 단순히 죽음을 뜻하지 않으며, 결정적인 인생 경험의 상징적 표현으로서 더 높은 단계의 성장을 의미한다.       

  하지만 <표범>의 삼킴은 이 같은 성장 경로에서 이탈한다. 그 심연에는 앞선 예들과 달리 뭔가 짖눌린 절망이 자리 잡고 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작품의 급작스러운 결말은 탈출 기회를 원천 차단하며 주인공을 폐쇄된 어둠의 정글에 가둔다. 그래서 이 연약한 어린 아이는 더 높은 의식을, 자기 세계에 빛을 주는 의식을 박탈당하며 어쩌면 이곳을 결코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표범의 정체는?

 아이를 집어삼키는 어둠 다시 말해 표범의 정체는 무엇일까? 우선 아이의 방과 표범의 고향 팬더랜드를 이어주는 ‘서랍장’을 주목해 보자. 아이가 서랍장을 열 때 그 안에는 표범의 형태를 구성하는 검은 기호가 어지러이 엉켜 있다.

  또한 검은 기호는 위협적인 표범의 친구들에게도 동일하게 반복된다. 그들이 아이를 어둠으로 삼키려 할 때 그들의 형태는 점점 추상화되며 무수한 검은 점의 군집으로 확장된다. 이 같은 검은 기호의 결합과 분리는  꿈의 언어 체계를 닮아 있다. 게다가 표범과 그의 친구들은 상상의 친구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은 그 자체로 꿈 또는 무의식을 의미한다.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져 보겠다. 그렇다면 표범은 어떤 무의식의 발현일까? <표범>은 무의식과 관련된 두 개의 단서를 명시적으로 제시한다. 고양이의 죽음과 엄마의 죽음. 아이는 고양이 죽음으로 인해 어머니의 죽음을 떠올리고 또한 이 같이 감당할 수 없는 상처를 견뎌내기 위해 상상 속에서 표범을 창조한다. 이것은 자아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속이거나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여 감정적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심리적 방어 기제이다1).





 방어기제의 개념은 무엇보다 어머니를 분노케 했던 표범의 성적학대에 대한 하나의 해석을 제공한다. 표범의 소아성애적 행동은 어쩌면 아이가 미처 말하지 못한 아니면 마음 속 깊이 억눌려 있던 진실과 관련된 건 아닐까?

  표범은 엄마와 고양이의 죽음인 만든 상상의 친구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성적 학대의 억압이 만들어낸 가면 쓴 괴물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의 방은 숨 막힌 정글이 되며 그곳의 강박적으로 뒤엉킨 선과 면들은 성적 학대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감춘다. 특히 불 끄고 문 밖으로 나서는 아이 아빠의 뒷모습과 이어지는 기괴한 집의 형태는 성적 학대자가 어쩌면 아이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인물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그것은 근친상간을 다룬 <차이나 타운>의 주인공이 마지막에 느꼈을 바로 그 무력감이다. 대사를 조금 바꿔 본다면, 여기는 바로 ‘정글’인 것이다. 아이는 환상의 세계, 현실의 세계 어디서도 빠져나갈 수 없는 폐쇄 회로에 갇힌다.




1)두산백과, 방어기제,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70016&cid=40942&categoryId=3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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