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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혁진 Sep 10. 2018

납치사 고요





 두 사람을 어떻게 해야 가장 아름답게 담아낼 수 있을까? 얼굴 표정부터 위치, 구도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쉽지 않은 선택이다. 하지만 작가 ‘오노 나츠메’에게는 이 같은 결정에 어떤 확신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설사 모두를 매혹시키지 못할 지라도 자신만은 사로잡을 그 순간. 이 결정적인 순간은 오노 나츠메의 전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변주된다.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깊은 눈과 세계를 분할하는 수직의 공간으로.



눈이라는 소우주

  오노 나츠메의 작품에는 두 인물이 작품 중심에 위치해 있다. 보통은 애정에 기반하지만  반드시 이 같은 한정된 관점으로 규정할 필요는 없다. 두 사람에게는 그들만의 특별한 감정을 안고 있다.

 다만 시각적으로 확실히 눈에 띄는 점은 인물 중 하나는 길고 가냘픈 체형을 가졌으며 무엇보다 흑백만화를 기준으로 창백한 하얀 눈과 머릿결을 가졌다는 점이다. 쓸쓸하고 텅 빈 눈을 가진 그는 상대를 내려 보며 상대 역시 커다란 눈망울로 그를 올려 본다.




  두 사람의 얼굴은 숨 막힐 정도로 장면을 가득 채운다. 분명 클로즈업은 배경을 밀어내고 오로지 얼굴에 집중한다. 하지만 이 같은 시도가 인물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포착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사실 오노 나츠메의 작화는 극화보다는 카툰에 가깝다. 오노 나츠메 작품의 인물들은 감정을 극대화하기 위한 섬세한 표정선을 갖고 있지 않으며 그래서 클로즈업은 단순히 얼굴 면적을 확대시킬 뿐이다.


 그렇다면 클로즈업을 애써 사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선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작가가 깊게 들여다보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바로 ‘눈’이다. 클로즈업을 통해 궁극적으로 보여주고자 한 것은 얼굴이 아닌 눈이다. 오노 나츠메의 작품의 인물들은 언제나 맑지만 한편으로 쓸쓸한 커다란 눈망울을 갖고 있다. 이 커다란 눈이 클로즈업이 될 때 시간은 정지하고 그 부동의 공간엔 정적인 고요만이 가득하다. 이 순간 우린, 인물의 깊은 내면으로 한 없이 침착해 들어간다.



수직으로 분절된 세계

 눈과 눈은 서로를 이어준다. 정면에서 상대를 직접 포착할 수도 있고 아니면 옆에서 상대를 스치듯이 담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 오노 나츠메의 경우 후자 즉 서로의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나란히 걷는두 인물에 매혹되어 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옆모습을 흘깃 스쳐보다 이내 돌아와 아무도 모르게 엷은 미소를 짓는다.

 이때 두 사람은 한 장면에 같이 있지 않다. 대신 그들은 수직으로 분할된 두 개의 칸에 각각 머물러 있다. 수직으로 길게 늘어진 칸은 그 자체로 마르고 긴 체형의 아름다운 옆모습을 부각시킨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칸과 구도는 오노 나츠메 특유의 인물 감정 선을 섬세히 전달한다. 두 사람은 말이 없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서로의 감정을 충분히 알고 있다. 두 사람을 가르는 긴 여백 사이엔 섬세한 감정의 결이 일렁인다.



 

  이러한  오노 나츠메의 수직분할은  특히 <납치사 고요>에 이르면 감정 전달을 넘어 공간과 서사를 구현하는 기능으로까지 확장된다.<납치사 고요>는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일본 시대물로 사무라이 ‘마사노스케’가 도적 무리 고요에 얽히면서 발생하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전작과 같이 두 인물이 작품의 중심 구도를 이룬다. 고요의 우두머리이자 어두운 과거를 가진 ‘야이치’와 유약하지만 한편으로 강인한 ‘마사노스케’. 두 사람은 성격만큼이나 외모도 대조적이다. 흩날리는 머리와 텅 빈 눈을 가진 야이치가 흰색으로 화면을 하얗게 비운다면, 단정하게 올린 머리와 단단한 눈을 가진 마사노스케는 검은색으로 화면을 빈틈없이 메운다.




 그렇다면 <납치사 고요>는 어떻게 수직분할을 사용할까? 이 작품은 주인공이 범죄를 수행하는 동안 긴장감을 발생 시키지만 보다 본질적인 갈등은 인물들의 감춰진 과거에서 추동된다. 각 인물들은 자신만의 과거를 가지고 있고 이 과거는 서사가 진행되면서 하나씩 밝혀진다.

 <납치사 고요>의 등장인물들은, 그래서, 미스테리 장르의 인물처럼 같은 공간에 머물면서도 자신의 동료를 정면으로 응시하지 않는다. 대신 다른 방향을 시선을 돌린 채 나직이  동료에게 말을 건넬 뿐이다. 설사 서로를 바라보는 순간 일지라도 그들의 고립된 시선에는 달라지는 건 없다. 작가는 기어코 수직 칸을 나누어 인물들을 밀실과 같은 좁은 공간으로 고립시켜 버린다.  



 게다가 일본 전통 가옥은 단순한 재현을 넘어 수직 분할 효과를 극대화하며 미학적 세계를 창출한다. <납치사 고요>의 일본 가옥의 공간은 문을 통해 끊임없이 분할된다. 교차된 문 창살은 그 자체로 평면을 수직과 수평의 세계로 구성하며 더 나아가 직사각형 문은 직사각형 칸과 함께 인물들을 에워싼 공간을 입방체로 연쇄된 세계로 변형시킨다. 인물들은 수직의 칸에 고립되며 이 공간은 전체를 조망할 수 없는 분절의 공간이다.      



 <납치사 고요>의 인물들에게 수직으로 분절된 세계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들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수직의 칸에 몸을 숨긴다. 범죄는 은밀히 진행되고 납치는 성공적이다. 하지만 좁은 통로와 같은 이 막다른 공간은 고요의 인물보다 우월하며 이 폐쇄적 세계는 진실이 감춰지고 전망이 불투명한 세계다. 그들은 언젠 닥칠지 모를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혀 있다. 과거는 여전히 그들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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