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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혁진 Jun 26. 2019

리틀 포레스트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무한의 자연

 



 <리틀 포레스트>는 한일 양국에서 영화화된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만화다. 소박한 삶과 아름다운 자연 풍광은 많은 이에게 깊은 여운을 준다. 인지도 측면에서 <리틀 포레스트>는 분명 아가라시 다이스케의 대표작이라 할만하다. 하지만 전작과 비교하면 사정은 달라진다. <리틀 포레스트>는 다이스케 작품 계보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작품이기 때문이다.

 전작 <마녀>, <해수의 아이>, <움벨트> 등은 일상을 넘어선 오컬트, SF 장르 작품이다. 평온한 일상의 세계와 불가해한 미지의 세계에서 접점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질적인 두 세계는 긴밀히 닿아 있다. 설사 각자의 방향으로 갈라져있을지라도, 두 세계 모두 ‘자연’이라는 굳건한 지반을 공유한다. 아가라시 다이스케의 여정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있지만, 그것은 언제나 신비롭고 무한한 자연에서부터 시작된다.     


무한자로서의 자연

 다이스케의 경이의 세계에는 마녀와 정령 같은 초월적 존재가 거주한다. 또한 각각의 생물들이 독자적인 움벨트 속에서 신의 세계와 연결돼 있다. 이 세계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수수께끼가 있고, 이에 다가가가는 것으로 살아가는 의미를 회복할 수 있다1).

 하지만 이 세계를 특별하게 만드는 건 단순히 심령, 괴생물체 같은 미지의 존재 때문이 아니다. 물론 그들은 그 자체로 매혹적이지만, 이 세계의 진정한 주인은 모든 사물의 배후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모든 존재를 자체 내로 통합하는 무한자인 ‘자연’이다2). 이 자연은 아름답다 못해 서늘한 요기를 내뿜다가도 때론 초월적인 외경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무엇보다 수많은 존재를 생산하는 무한한 힘을 가진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 <리틀 포레스트>와 오컬트적인 다이스케 작품은 교차한다. <리틀 포레스트>의 자연은 농촌 마을이라는 현실에 근거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우릴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이끌곤 한다. 신에게 제사지내는 무악 ‘카구라’와 수확제를 즐기는 주민의 모습이 교차되는 장면처럼, 성과 속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리틀 포레스트>는 일본 토호쿠 지방의 마을 코모리를 배경으로 한 음식 만화다. 매 에피소드마다 음식을 만들고 먹는 모습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한편으로 이 작품은 농촌 생활 만화이기도 한데, 그래서 주인공이 먹는 음식의 모든 재료는 주변 자연으로부터 얻는다. 이 과정에서 우린 자연스레 농사를 지어 자연의 결실을 수확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지켜보게 되며 더 나아가 이 모든 것을 넉넉히 감싸는 자연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이 때 작가 아가라시 다이스케는 누구보다 눈부시게 자연을 그려낸다. 작가는 방향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이 드로잉 할 수 있는 볼펜을 이용해, 자연의 무한성을 재현한다. 선은 뒤엉키고 흩뿌려져 명확한 형태를 만들지 않는다. 이어 형태에 음영을 제거해 흰 여백을 그대로 노출시킴으로써 빛을 발산한다. 그 결과 빛은 유기적으로 얽힌 식물 사이를 통과하거나 또는 반사하면서 다이스케 특유의 눈부신 풍경을 펼쳐낸다.

  이것은 2차원 평면의 흑백 세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백색의 광채는 우리의 심상으로 들어와 신록의 푸름으로 번진다. 게다가 무엇보다 우린 경이적인 세계의 일부가 되어 총체적인 경험을 구성한다. 다이스케의 자연에서 인간은 중요치 않다. 그들은 몇 개의 선으로 피상적으로 연장되며 경우에 따라 불안정한 윤곽선마저 해체돼 자연의 일부가 된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우리 역시 예외가 아니다. 바라보는 것이 아닌 세계 내에 위치한다. 여기서 우린 자연에 둘러싸여 감각을 압도하는 숭고의 감정을 경험한다.

  <리틀 포레스트> 자연의 저부에는 기묘한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그리고 어지러이 엉킨 잡초가 밭과 길을 삼켜버릴 때, 아무렇지 않던 자연에서 거룩한 하늘을 향한 대지의 정령을 상상할 때, 억눌렀던 경이의 세계는 기어코 그 모습을 드러내고 만다. 어쩌면 이 세계에는 정말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존재할지 모른다. <리틀 포레스트>는 아가라시 다이스케의 무한의 자연에서 결코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1) 우노 츠네히로, 젊은 독자를 위한 서브컬처론 강의록

2) 한스 요아힘 슈퇴리히, 세계 철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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