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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혁진 Jul 06. 2019

악의 혈통

  

 <악의 혈통>을 다루기 앞서 전작 <짱>을 언급하겠다. <짱>은 1996년부터 2014년까지 장기 연재된 임재원 작가의 학원 만화다. 출판 만화의 부침에도, 여러 차례 매체의 변화에도 <짱>은 한 결 같이 주인공 현상태와 그의 친구들을 그려왔다. <짱>의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 학교 폭력의 본질을 심도 있게 파고든 작품이라서. 아니다. 이 같은 시도가 없진 않았지만 서사의 추동력은 어디까지나 짱이 되기 위한 일진 학생의 욕망이다. 그러면 동시대성을 반영한 작품이어서. 부분적으로 옳은 답일 수 있다. 짱이라는 신조어가 확산된 90년대를 반영하며 특히 작가의 거주지 ‘인천’은 작품 속 구체적 공간으로 재현된다. 하지만 이 답은 여전히 미흡하다. 고등학교에서 시간을 멈춘 <짱>의 세계는 어느 순간 현실보다는 학원 만화 장르의 시공간에 보다 깊숙이 연계된다.

 그러면 인기 비결은 도대체 무엇일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다. 그것은 바로 탁월한 액션신이다. 액션 만화인 만큼 동어반복처럼 들리지만, <짱>의 액션은 그 만큼 압도적이며 오랜 기간 독자를 매혹시켰다. 그렇다. 임재원 작가는 액션만화의 장인이다. 그리고 그런 그가 <악의 혈통>이라는 웹툰을 내놓았다. 다음과 같은 궁금증이 생긴다. 임재원 작가는 <악의 혈통>을 통해 어떻게 액션을 구성하고 또한 그 액션을 통해 무엇을 그려낼까?     


심판자의 수직적 형상

 <짱>의 액션신을 보자. 싸움이 시작되면 인물들은 어지러이 얽히다 이후 정교하게 짜인 동선으로 차례차례 분절된다. 그리고 이 분절된 칸들은 속도감 있게 나열되면서 독자를 고조시키는데 그러다 찰나의 순간 엄청난 타격감으로 장면을 폭파시킨다. <악의 혈통>에서도 이러한 매혹적인 액션신은 여전하다. 도입부를 보자. 화면 중심에 시각정보를 집중한 후 수직 스크롤로 운동성을 더한 웹툰 연출과 함께, 특유의 역동적 구도와 아크로바틱한 액션을 유감없이 펼쳐낸다.

 하지만 그럼에도 <악의 혈통>의 액션은 어딘가 부자연스럽다. 결정적 순간 자꾸만 머뭇거리며 예전 같은 타격감을 느낄 수가 없다. 여기서 타격감은 중요하다. 리듬감을 발생시키고 액션과 액션을 자연스럽게 이어준다. 그래서 <악의 혈통>의 결여된 타격감은 액션 흐름을 끊고 때론 정지된 화면처럼 만든다.

 이러한 결함은 단순히 작화만의 문제는 아니다. 동시에 서사와 연관된 문제이기도 한데, 학원 폭력을 다룬 <짱>과 달리 <악의 혈통>은 칼, 망치를 사용하는 살인을 다루 기에 육체의 충돌을 자유롭게 폭발시킬 수 없다. 만약 액션 장면을 <짱>처럼 구성한다면 싸움은 2~3개의 칸으로 금세 끝나 버릴지 모른다. 그렇다면 칼과 망치는 액션신의 제약에 지나지 않는 걸까? 꼭 그렇진 않다. 앞서 암시했듯, 이 과잉된 무기들은 폭력의 범위를 살인으로 확장시키는 기표를 넘어 작품 전체를 형상화한다.

  <악의 혈통>은 본능적으로 살인자를 감지하는 능력을 가진 주인공 진수의 이야기다. 그는 법에 의하지 않고 악의 혈통이라 불리는 살인자를 처단한다. <악의 혈통>의 세계는 선과 악이 뒤엉켜 인간의 심연을 파고드는 끔직한 도덕극의 무대며, 그 안의 인물들은 우월한 심판자와 비천한 죄인으로 관계 맺는다. 주인공은 차갑게 아래를 내려 보고 살인자는 공포에 질린 채 위를 올려본다. 로우 앵글과 하이 앵글이 번갈아 교차하며 주인공에게 권능과 위압감을, 살인자에게는 공포와 무력감을 부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 인물의 기하하적이며 심리적인 구도는 수직의 이미지로 형상화 된다.

 물론 주인공과 살인자의 위치는 뒤바뀔 수 있다. 하지만 극적으로 대립되는 구도만큼은 변함없다. 심판자와 살인자 두 인물로 구성된 수직적 이미지는 끊임없이 여러 형태로 변주된다. 과잉된 무기 또한 이러한 수직적 이미지의 변주다. 망치와 칼은 형태 그 자체로 더 나아가 살인자의 신체와 결합될 때 각각 판사봉과 십자가가 된다. 이 심판의 도구들은 휘두른다기보다 수직 즉 위에서 아래로 찍어 내리는데, 이 무자비한 폭력은 수직 스크롤을 따라 심판의 이미지를 더욱 강렬히 표출한다. 선과 악, 죄와 벌, 심판자와 처벌자 이 모든 것들은 총체적으로 수직의 형상으로 수렴된다.     


액션 만화가 보여줘야 하는 것들

 <악의 혈통>의 이야기는 법의 무력함에서 시작된다. 법이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불신은, 법과 윤리의 근본적 쟁점과 맞닥뜨리게 한다. 주인공의 행위는 정당화 할 수 있을까. 즉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또한 악을 처벌한다면 어느 선에서까지 행해져야 할까. 그 밖에 심도 있는 많은 질문이 제기될 것이다.

 사실 이 같은 질문은 특별한 건 아니다. 이미 미국 수정주의 슈퍼 히어로 작품에서는 자경주의 윤리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바 있으며, 국내 꼬마비 작가의 <살인자ㅇ난감>에서도 <악의 혈통>과 유사한 설정으로 초월적 단죄를 다룬다. <악의 혈통> 역시 이러한 연장선에서 심판의 윤리적 위상을 검토한다. 초반부 주인공 진수는 살인자를 구별하는 능력과 함께 자신이 그들을 심판할 자격이 있는지 고민한다. 하지만 가학적 폭력과 수직적 카니발리즘에 사로잡혀 버린 것일까. 아버지 죽음 이후, 심판을 확신하는 진수에게 내면의 갈등은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다. 주인공의 욕망은 소거되고 그래서 작품을 관통하는 질문은 말 그대로 멈춘다.


 이제 <악의 혈통>은 다층적 세계가 아닌 선악이 투쟁하는 이항 대립적 세계가 된다. 우린 이 세계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지나치게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악의 혈통>은 액션만화다. 주인공은 서사의 관점에서는 선악의 경계에 걸친 단독자지만, 액션 만화의 관점에서는 경이로운 액션을 보여주는 행위자다. 액션 만화의 목적은 일차적으로 결투, 폭력, 살인과 같은 극적인 행위를 정교한 형식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폭력의 카타르시스와 액션의 미학적 아름다움을 경험한다.

 그럼에도 <악의 혈통>은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다. 의미를 상실한 액션과 폭력은 공허하며 종국엔 무감각해질 수밖에 없다. 현란한 액션의 동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역시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이 같은 서사와 형식의 긴장에 정확한 답은 없다. 서사와 형식이라는 두 점을 잇는 궤적 사이엔 수많은 선택이 존재한다. 당장 결론을 짓기보다 대신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악의 혈통>은 어떻게 액션을 구성했고 무엇을 그려냈나. 보다 비관적이지만, <악의 혈통>은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짱>의 후일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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