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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혁진 Apr 04. 2018

달과 경찰





 인류는 달에 매혹됐다. 달이 지구의 유일한 위성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세상을 가득 채우는 보름달이든 한 가닥 빛을 비추는 그믐달이든, 달 앞에 선 인간은 자신의 내면으로 침착해 간다. 설사 달이 더 이상 신화적 세계가 아닌 삭막한 암석으로 이뤄진 세계라는 것을 인지했다 할지라도 달라질건 없다.

 <달과 경찰> 주인공 역시 달에 매혹된 인물 중 하나다. 그의 유년 시절 꿈은 달에 사는 것과 경찰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성인이 된 주인공은 마침내 달의 경찰이 된다.  



달에 산다는 건 

 <달과 경찰>의 작화는 소박하다. 원 모양의 머리, 삼각형의 몸통, 긴 선으로 이어진 손과 다리, 인물의 신체는 기하학 도형으로 구성돼 있다. 배경 또한 간략하기는 마찬가지다. 블록 모양의 건축물이 드문드문 존재하지만, 이마저도 많은 경우 대지와 하늘이 대신 채워준다. 

 이렇게 <달과 경찰>의 작화 밀도는 높지 않다. 배경은 비워지고, 그 빈 배경에서  인물의 모습은 보다 또렷해진다. <달과 경찰>의 주인공은 텅 빈 세계에 홀로 남겨진 존재다.



작가 '톰 골드'는 시공간을 초월한 공간에 던져진 인간을 그린다.((좌)골리앗, (우)달과 경찰) 



 달과 경찰을 동경하던 주인공은 달의 경찰이 된다. 하지만 달의 현실은 그가 생각한 것과  어긋나 있다. 달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한 희망의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쇠락하는 세계에 보다 가깝다. 달의 이주민들은 꿈을 잃고 하나둘씩 지구로 돌아간다. 주인공 역시 의미 없는 순찰만을 반복할 뿐이다. 


 남겨진 주인공은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그는 어떻게 자신의 외로움을 견뎌내야 할까? 그는 어떤 의미를 안고 살아가야 할까? 


 이 같은 문제, 즉 존재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묻는 문제는 작가 ‘톰 골드’가 그 동안 여러 작품을 통해 전착해온 주제다. 전작 <골리앗>에서는 갈색의 사막이, <달과 경찰>에서는 짙푸른 색의 달이 펼쳐진다. 그리고 그 삭막한 세계에서 <골리앗>은 인간의 부조리한 운명을, <달과 경찰>은 인간의 고독과 외로움을 탐구한다.

 두 작품의 주인공은 선택의 여지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결국 그들은 시공간을 초월한 공간에 던져져 인간의 실존과 대면한다.



인간과 세계, 원경과 근경

 <달과 경찰>은 우리를 관조의 시간으로 초대한다. 그 안에서 우린 주인공의 자취를 고요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주인공은 사람이 떠나는 것과 상관없이 언제나 자신의 일을 묵묵히 수행한다. 길 잃은 아이를 집에 돌려보내고, 실종된 개를 찾아보고, 발생한 범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보고서를 꼼꼼히 작성한다. 


원경 속 주인공은 기하학적 도형을 넘어 하나의 점이 된다.



 이런 그의 모습은 언제나 독자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재현된다. 더 나아가 작은 우주선으로 순찰하는 그의 모습은 먼 풍경으로 담겨진다. 원경 속 주인공은 기하학적 도형으로 구성된 추상적인 모습을 넘어 몇 개의 점으로 환원된다. 반면 달의 황량한 풍경은 주인공의 점과 대비되며 화면을 가득 채운다. 광활한 세계 그리고 그 안에 홀로 남겨진 존재. 원경으로 담아낸 세계가 확장되면 확장될수록, 주인공은 점점 줄어들고 외로움은 더욱더 커져만 간다.


 <달과 경찰>은 분명 인간의 고독과 외로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지구와 달 사이의 엄청난 간극, 인간을 외소하게 만드는 우주의 무한함은 이 같은 주제를 보다 선명하게 한다. 

 하지만 <달과 경찰>은 마냥 우울한 작품만은 아니다. 달에 거주하는 유일한 두 사람,  주인공과 커피 가게 직원을 비추는 마지막 장면엔 따스한 분위기가 흐른다. 


 직원은 주인공에게 말을 건넨다. “전 여기 취직하기 저에는 달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봤어요. 그런데 살아보니깐 너무 좋아요. 몇 시간이나 별과 바위를 멍하니 바라볼 수 있잖아요. 평화롭게 느껴져요.” 주인공은 이에 답한다. “맞아요. 아름답죠. 가끔 그 사실을 잊어버릴 때도 있지만.”


근경과 원경이 구분 안될 정도로 화면을 가득 채운 우주의 장면은, 우리를 관조의 시간으로 초대한다.



 주인공의 단조로운 일상 사이사이, 우주를 근경(사실 우주는 무한해 근경과 원경이 구분되지 않지만)으로 꽉 채운 장면을 삽입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순간적으로 정지한 장면, 이 절대적 침묵의 시간은 그 동안 잊고 있던 무언가를 상기시킨다. 달의 아름다움일 수도 있고, 아니면 유년시절의 꿈이거나 삶의 의미일수도 있다. 

 무한한 우주와 비교해 인간은 너무나도 작고 왜소한 존재다. 그럼에도 숭고하게 펼쳐진 이 광경 앞에서 이런 세계를, 이런 자신을 껴안으며 살아갈 위안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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