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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혁진 Mar 27. 2018

글렌굴드:그래픽 평전

녹음된  <골든베르크 변주곡> 그리고 녹음된 <글렌 굴드>



 <글렌 굴드>는 그래픽 평전이다. 그렇다면 글렌 굴드는 누구일까가? 글렌 굴드는 바흐의 독창적인 해석을 담은 ‘골드베르크 변주곡’으로 명성을 얻은 천재 피아니스트다. 또한 뛰어난 연주 실력만큼이나 강박적인 성격으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언제나 작은 의자에 잔뜩 웅크린 채 연주에 몰두했으며, 이마저도 서른이라는 나이에 연주회를 은퇴해 녹음 연주만을 고집한다.

 독특한 한 인물의 삶을 따라 가는 건 분명 흥미로운 작업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 여정에서 세심하게 살펴야 할 지점이 있다. 그것은 ‘어떻게’ 이다. 복잡하게 얽힌 삶을 어떻게 재구성하여 한 인간의 본질을 재현하는지 말이다. 특히 만화 매체인 <글렌 굴드>의 경우 ‘어떻게’는 내용뿐 아니라 놓치기 쉬운 형식 문제까지 긴밀히 연계돼 있다.      



<글렌 굴드>는 다양한 인물의 회상을 통해 글렌 굴드의 삶을 재구성한다. 



<글렌 굴드>는 의식 잃은 글렌 굴드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글렌 굴드 머리에선 과거의 기억이 희미하게 새어나온다. 이 첫 장면은 이후 전개 방식을 암시한다. 여러 인물이 번갈아 등장하고 다음으로 그들 자신만의 글렌 굴드를 회상한다. 사실 이 같은 시도는 특별한 것은 아니다. 고전 영화 <시민 케인>에서 보여주듯, 다양한 인물의 증언을 통해 주인공의 본질을 탐색하는 방법은 우리에게 이미 익숙하다. 


 그래서 <글랜 굴드>는 변주를 시도한다. 인물-회상 구조를 전체적 유지하면서도 때론 그 관계를 모호하게 구성한다. 특정 회상 장면의 경우 누구의 기억인지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는다. 그것은 특정인의 기억이라기보다, 여러 인물이 공유하는 아니면 그들 바깥에서 재구성된 과거의 기억이다. 

 게다가 과거 장면은 기억의 복원을 넘어 꿈과 같은 초현실적 세계로 진입하기도 한다. 지평선엔 유년시절의 추억이, 그 너머 허공엔 피아노가 쓸쓸히 놓여 있다. 글렌 굴드 역시 마그리트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눈들에 둘러싸여 있다. 절규의 말풍선은 고통을 호소하듯 신경질적으로 일그러진다.



손 이미지의 무한 배열은 '녹음'처럼 지속의 영원한 순간을 재현하려는 시도다.  



<글렌 굴드>는 형식적으로 현재의 모습과 과거의 기억이 뚜렷이 구분 된다. 현재는 ‘이중 칸’으로 과거는 ‘둥근 칸’으로 담아낸다. 단 예외는 존재한다. 글렌 굴드가 연주를 녹음하는 과거 장면만큼은 현재를 의미하는 ‘이중 칸’을 사용한다. 왜, 녹음하는 과거의 순간을 현재로 재현한 걸까? 이에 대한 실마리는 녹음에 대한 글렌 굴드의 생각에서 찾을 수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 글렌 굴드는 연주회를 꺼려했다. 그는 연주회의 시간성을 혐오했다. 연주는 하나의 축을 중심으로 움직여야 하며 또한 그 시간은 방향지어지고 역전 불가능하다1). 글렌 굴드는 시간의 불완전성, 존재의 불완전성을 거부하려 했다. 녹음을 통해 자신의 연주를 끊임 없이 되돌리고, 변형하고, 재배치한다. 그래서 이 같은 행위는 그 자체로 작품의 커다란 은유다. <글렌 굴드>의 세계는 꿈의 세계와 닮아 있다. 글렌 굴드의 삶은 분리되고, 병치되고, 다시 통합된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글렌굴드는 연주회와 구별되는 녹음의 힘을 굳게 믿었다. 녹음은 단순히 흘러간 과거의 회상이 아니라, 현재였던 과거 즉 그 자체로서의 열려 있는 현재에 대한 회상이다. 이것이 녹음 장면을 둥근 칸이 아닌 이중 칸을 택한 이유다. 

이 같은 연장선에서 녹음 연주하는 손의 이미지는 무한히 배열된다. 첫번 째 이미지는 두번 째이미지로 들어오고 첫번 째, 두번 째 이미지는 다시 세 번째 이미지로 들어온다. 이것은 균등한 이미지의 단순한 연속이 아니다. 이전 이미지가 다음 이미지에 영향을 미치며 동시에 다음 단계로 이행하는 지속의 영원한 순간이다. 그렇게 우린 과거의 굴덴베르크를 현재에 대면한다. 녹음된 ‘골든베르크 연주곡’을 통해 그리고 또 다른 형식으로 녹음된 <글렌 굴드>를 통해.



1) 미셸 슈나이더, <글랜 굴드, 피아노 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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