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혁진 Mar 18. 2018

그것은 참호전이었다

그 참호 속에 무슨 일이?

  

.

 

  올해는 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이다. 굳이 역사적 사실을 언급한 이유는 1차 세계대전을 다룬 <그것은 참호전이었다>를 소개하기 위해서다. 사실 1차 세계대전은 대중문화에서 인기 있는 소재는 아니다. 2차 세계대전과 비교하면 ‘나치’와 같은 거대한 악도, ‘노르망디 상륙작전’같은 극적인 전투도 없다.

 그럼에도 1차 세계대전은 여전히 우리를 매혹시킨다. 근대와 현대가 뒤섞인 시기, 기마병과 장갑차는 기묘한 풍경을 이루며 공존한다. 그리고 이 같은 모순을 가장 극명히 드러난 사례가 바로 ‘참호전’이다. 그렇다. 그것은 참호전이었다. 이 전투는 결코 끝나지 않는 싸움이다. 상대를 저지할 역량은 존재하지만, 동시에 상대를 넘어설 역량은 부재하기에. 전쟁은 참호의 깊은 수렁으로 빠져 든다.  

   


혼란스러운 혼합 시점

 <이것은 참호전이다>는 비네, 라퐁, 가스파르 등 참호 속에 엉켜 있는 프랑스 군인을 차례로 소개한다. 이때의 화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우리 군이라는 지칭과 독일군에 대한 적대감은 참전 중인 프랑스 군인으로 짐작케 할 뿐이다. 즉 이 작품은 1인칭 관찰자 시점을 택했으며 실제로 칸 맨 위 박스에는 화자의 내레이션이 자리 잡고 있다.      


 초반부 화자는 군인 비네를 소개하고 이후 비네의 행동을 서술한다. 여기까지는 전형적인 1인칭 관찰자 시점이다. 그러나 서사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화자는 비네의 과거를 이야기하고 심지어 비네의 내면으로 들어가 그의 생각과 감정을 보여준다.

 게다가 화자가 존재할 수 없는 순간들이 차례로 삽입되면서 작품의 세계는 1인칭 화자를 넘어서는 시각으로 재구성된다. <이것은 참호전이다>는 1인칭 관찰자 시점의 형태를 취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서사를 진행한다.


<이것은 참호전이었다>는 혼합시점과 빈번한 시점 이동으로 독자에게 혼란을 제공한다.



 이 같은 시점의 혼란은 1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오갈 때 더욱더 두드러진다. 가령 라퐁의 에피소드를 보자. 화자는 라퐁이 과거를 회상한다 언급하고 다음 장면에서 라퐁의 과거를 보여준다.

 이 지점에서 시점은 이동한다. 하지만 1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의 변화를 인지하기란 쉽지 않다. 시점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고 무엇보다 이전 화자의 목소리와 라퐁의 목소리가 구별되지 않기 때문이다. 독자는 이야기 내내 화자의 존재에 대해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에 대한 명확한 실마리마저 뒤늦게 당도한다. 장면이 몇차례 전환된 후 화자가 자신을 '라퐁'이라 지시하면 우린 그제서야 시점의 변화를 확신할 수 있게 된다.       



다큐멘터리 형식과 소설 형식의 도입

 이 같은  돌출과 뒤섞임은 시점이 이동할 때만 나타나는 건 아니다. 주시점인 1인칭 관찰자 시점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여러 서술 방식이 삽입된다. 작품의 화자는 일반적으로 다른 군인과 같은 참호에 있으면서도 자신은 보이지 않는 것처럼 그들의 모습을 관찰한다. 하지만 특정 장면에선 때때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후 군인에게 가상의 카메라를 들이민다. 그러면 이에 군인들 역시 다큐멘터리에 참여하듯 화자에게 적극적으로 협력한다. 가령 후퇴한 사병과 그런 그들을 무자비하게 포격한 장교가 잇달아 카메라 앞에 서 있다. 사병은  꽉 채운 배경 속에서  전투의 참혹함을 호소하는 반면, 장교는 여백의 배경 속에서 전투 경과를 차갑게 서술한다. 그들은 나라히 놓여 있지만 그리고 동일한 전투에 참여하지만 그들의 경험은 계급의 차이만큼이나 현격하다.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한 그들의 모습은 이렇게 전쟁의 본질을 극명히 드러낸다


1인친 관찰자 시점이 진행되는 동안 '다큐멘터리', '소설' 형식이 도입된다.



  작품은 동적이기 보다 정적이며, 작화의 선과 색 역시 뭉개져 있어 흑백사진의 정서를 자아낸다. 이렇게 작가 '자크 타르디'는 1차 세계 대전의 참극을 관조적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어느 지점에서 이르러서는 관조적 시선의 흐름을 보다 더 천천히 늦춘다. 가령 독일 병사와 프랑스 병사가 지하실에서 함께 숨어 지내는 장면을 보자. 계속해 이어지는 그림엔 변화란 거의 없다. 그림은 상황의 분위기만을 전달하고 대신 우측 상단에 자리 잡은 긴 내레이션이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그림은 움직임을 멈춘다. 그리고 글은 문장과 문장을 천천히 이어간다. 그림에 기대지 않고 글의 동력으로 작품의 서사를 밀고 가는 것이다.  바로 이 순간 만화의 세계는 소설의 세계로 변모한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면  삽화가 삽입된 소설이 된다. 글은 그림을 배경으로 길게 흘러내린다. 인물의 행동 더 나아가 행동 저변에 깔린 심리까지 서술하며 이를 통해  인간의 내면을 보다 깊이 있게 파고든다.     



작품 세계는 1차세계 대전 참호전같이  어지러이 엉켜 있다.



  <이것은 참호전이다>는 어지러이 엉켜 있다. 그러고는 어느새 이질적인 무언가가 틈입해 있다. 양립 불가능한 요소가 불안정하게 공존하며, 만약 참호 속 인물을 주의 깊게 따라가지 못한다면 금세 길을 잃고 헤맬지도 모른다. 우린 이 혼란함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것이 참호전이다>는 작품 속 뒤엉킨 세계를 통해 1차 세계대전의 참호전 본질을 재현하려 한다. 참호는 뒤엉켜 있다. 군인들은 얽혀있고 포탄과 흙먼지는 참호 안팎의 경계를 지운다. 심지어 교전 중인 병사들은 자신의 위치를 상실한 채 상대방의 참호로 뛰어든다. 다시 말해  <이것은 참호전이다>는 서사의 내용과 함께 서사의 전개방식으로 1차 세계대전 참호전을 복원한 것이다. 작품에서 강박적인 전투 장면이 거듭해 반복되는 건 그래서다. 전경과 배경은 구분되지 않고 인간과 인간은 어지러이 엉켜 있다.

작가의 이전글 Here 여기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