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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희 Sep 18. 2019

대표님이랑 술 한잔 했습니다

회사 대표와의 술자리

회사 대표님과 우리 팀이 저녁 회식을 가졌다. 다른 술자리에서 잠깐 동석한 적은 있지만 온전히 시간을 빼서 만난 건 처음이다. 대표님은 일반 사원으로 입사해서 몇 년 전에 대표의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 벌써 입사 20년을 바라보고 계신다. 


이 회사에 입사해서 9년 연속 직장 상사였지만 항상 높은 자리에 있던 분이라 같이 일할 기회도 없었고 그분을 잘 알지 못한다. 그렇다고 직원들을 어렵게 대하는 분은 아니다. 대표라는 타이틀을 떼고 보면 '사람 좋네' 할만한 분이다. 회사 대표와의 술자리라서 부담도 됐지만 너무 어려운 느낌도 없었다. 팀에서 나름 올드 보이라 대화의 메인이 되어야 했기에 할 말도 몇 개 준비해 갔다. 


먹고 싶은 걸로 알아서 골라 놓으라고 하셔서 미리 봐 둔, 룸이 있는 소고기집을 예약했다. 10분 정도 늦게 오셨는데 항상 그렇듯 편한 캐주얼 차림의 복장이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소고기 회식을 해보나. 정말 눈치 안 보고 마구 먹을 수 있는 기회인데 소고기라는 녀석은 느끼해서 생각보다 쉽게 물린다. 소갈비, 꽃등심, 살치살 등이 순차적으로 구워졌고 굽는 고기는 질려서 육회를 시키고 물냉면으로 마무리한다. 당연히 돈이 많이 나왔겠지만 그렇게 많이 쓰고 이렇게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역시 대표 찬스가 좋다.


분위기는 유쾌했다. 그리고 여러 대화가 오고 갔다. 때로는 중구난방이 되고 서로 하고픈 얘기도 많이 하고 딱딱하지도 않았고 직원들도 저자세로 듣기만 하는 그런 자리가 아니어서 좋았다. 회사에 대해 궁금한 것도 여쭤보고 대표님만의 다른 시선도 들어보고 나중에는 아는 형이랑 술자리 같는 것 같은 느낌도 받았다. 


그러다 이분이 회사 대표가 될 수 있었던 두 가지를 발견했다. 물론 이 두 가지가 전부는 아니었겠지만 큰 역할을 했다는 건 맞다. 바로 경청과 직원들을 생각하는 마음.


일단 잘 들어주신다. 무슨 말을 하건 잘 들어주신다. 내용이 과하거나 잘못 빠질 거 같으면 바로 잡아주신다. 그리고 또 들어주신다. 회사에 불만 없는 직원은 단 하나도 없다. 하지만 그런 불만을 높은 자리의 사람이 들어주기만 해도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느껴진다. 당장 바뀌는 게 없다고 해도 말이다. 어떤 상사들은 불만을 얘기하면 요리조리 빠져나갈 생각만 하고 변명만 늘어놓는다. 미꾸라지랑 대화하는 느낌이다. 이러면 불만이 다른 불만을 낳고 상사를 신뢰할 수 없다. 그런 상사 밑에서 일한다는 자괴감도 든다. 


대표님은 불만도 들어주고 원하는 것도 들어주고 일단 다 들어주신다. 그리고 중요한 내용은 핸드폰에 필기도 하신다. 그분이 가진 너무나도 강력한 무기다. 회사 대표의 경청하는 자세는 직원으로 하여금 저절로 존경심이 들게 만든다. 그리고 대표와 직원과의 거리가 한층 더 가까워지게 만든다.


회사가 몇 년 후에 이사를 간다. 당연히 교통이 불편해지는 사람이 많은데 확정된 건 아니지만 그에 대한 대책도 몇 가지 알려 주셨다. 듣다 보니 직원들을 생각하는 마음 씀씀이가 느껴졌다. 어떻게든 불편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보였다. 이외에도 직원들에 대한 편의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계셨다. 회사 대표가 됐기 때문에 갑자기 직원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생겼을까? 아니다. 이전부터 늘 그래 왔기에 대표가 된 시점에 더 잘하는 것이다. 그분은 그저 하던 대로 하는 것이다.


무척 건강한 마인드를 가진 분이다. 직원들 말 잘 들어주고, 직원들 편하고 잘 되는 길만 생각하고 리더가 가져야 할 덕목을 갖춘 이분이랑 같이 일한다는 사실이 좋은 회사에 다니고 있다는 느낌을 줬다. 회사 대표의 자리에 오를만한 인물이다. 


1차가 끝나고 근처 커피숍에서 다 같이 커피를 한잔 했다. 시간이 9시를 조금 넘은 시점. 더 먹고 싶은 사람은 먹고 가라며 카드를 주신다.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그렇게 자리를 끝내고 나를 포함해 세명이 근처에서 한잔 더 했다. 자연스레 대표님과의 자리에 대한 강평이 이어졌다. 누구는 아직 불만이 많았고 누구는 극찬을 했다. 우리가 같은 자리에서 술 먹은 게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의견이 달랐다. 좋은 사람이란 걸 확인한 나는 참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다음 만남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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