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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희 Oct 16. 2019

클알못 직장인의 클래식 음악 따라잡기

직장인에게 버틸 힘을 주는 클래식 음악

제목에 클알못이라고 적었지만 백지상태까지는 아니다. 성인이 되어 6년 정도 정통 클래식 음악 피아노를 배웠고 예술의 전당에서 방귀 좀 뀌어봤다. 시대별 대표 작곡가와 주요 음악을 추천해 줄 수 있고 기분에 따라 필요한 음악을 찾아 들을 수도 있다. 해당 작곡가의 전문 연주자가 누구인지, 인기 있는 연주자가 누구라서 이 사람이 공연을 하면 꼭 가봐야 한다는 정도는 파악하고 있다. 어떤 레이블에서 나온 음반이라면 들어보고 싶은 욕구가 솟기도 한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계는 이제 책과 더불어 마니아 시장이 되어버렸다. 대중들은 찾지 않고 마니아들만 남아있는 전문가 바닥이다. 그런 곳에서 클래식 음악에 대해 안다고 떠벌리기에는 지나치게 부족하다. 요즘은 꾸준히 음악을 듣지 않고 생각날 때만 며칠 찾아 듣고 말고를 반복하고 있어 트렌드가 어떤지도 모른다. 유튜브에서 가끔 찾아 듣는 수준으로 브런치에서 클잘알이라고 했다가는 어떤 철퇴를 맞을지 모른다.

클알못도 아니고 클잘알도 아니라면 뭐란 말인가? 클알잘못인가? 클잘알못인가? 클어알? 클래식을 어중간하게 안다? 뭐가 중요한가. 오히려 나 정도 수준의 잘 알지도 못하고 아주 모르지도 않는 사람이 얘기하는 클래식 음악이 대중에게 더 어필할 수 있는 요소가 많다고 본다. 클래식 음악을 잘 아는 사람들이 추천하는 음악들은 취향과 주관이 확실하고 매니아적인 특성이 있어 처음 듣는 사람들에게는 귀에 잘 안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들이 추천하는 음악에서는 별다른 매력을 못 느낀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이 얘기하는 클래식 음악이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자화자찬해본다.

나의 추천이 전문가보다 가취가 있기를

갑자기 클래식 음악을 왜 추천하려는가? 아직도 모차르트 음악을 들으면 지능이 올라간다는 속설을 어필하기 위해? 고인물 또는 꼰대 소리 듣게 하려고? 그렇지 않다. 일단 직장인에게 클래식 음악을 추천해 주고 싶고 거기엔 두 가지 이유가 있으며 나는 직장에서 큰 효과를 봤다.

첫 번째는 클래식 음악이 마음을 정화한다.

무척 고리타분하고 추상적인 얘기지만 사실이다. 음악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깨끗해진다. 진짜 깨끗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깨끗해지고 있단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몸이 이완되면서 스트레스를 잠시 내려놓게 된다. 몸이 힘들고 마음이 복잡할 때 클래식 음악을 듣고 있으면 복잡한 실타래가 어느 정도 풀린다.

밤새 하얗게 눈 내린 운동장에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그곳에 첫 발자국을 내는 느낌, 드넓은 보리밭 한가운데 홀로 서있는데 산들바람이 불어와 보리와 함께 내가 동화되어 흔들거리는 이미지, 수평선 저 너머에서 돛을 단 배가 해를 등지고 항구로 다가오는 듯한 감정. 클래식 음악에 빠지면 이런 감각을 느끼게 되고 자연히 등에 지고 있던 많은 것을 내려놓게 된다.

직장 생활의 여러 어려움들을 클래식 음악을 통해 위안받고 어깨에 잔뜩 들어간 힘을 조금은 뺄 수 있으며 팽팽히 당겨진 고무줄을 조금은 느슨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비싼 돈과 시간을 들여 해외여행을 가지 않아도 힐링을 받을 수 있다.

두 번째는 고상한 척할 수 있다.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 고상해 보이고 잘난 척을 할 수 있다. 주변에 듣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게 가능하다. 그런데 이런 고상한 척과 잘난 척이 직장 생활에서 중요하다. 왜냐면 남들과 달라 보일 수 있고 그 다름이 나의 자존감을 올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존감이 중요한 건 말하지 않아도 다들 잘 안다. 자존감을 업무에서 찾아야지 클래식 음악에서 찾는 게 말이 안 되지만 본인의 자존감이 많이 무너졌다면 이런 방법을 통해서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나도 회사에서 일 못하고 헤맬 때 클래식 음악을 통해 한없이 추락하는 자존감을 붙들 수 있었다.

그렇다고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고 너무 티 내진 말자. 가끔 쉬는 시간에 유튜브로 클래식 음악을 듣고 있는다거나 지나가는 말투로 '어 그거 누구 음악이지' 하는 정도의 시크한 아는 척 정도가 적당하다. 여기서 더 나가면 '~~충' 소리 들을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음악을 어떻게 들어야 할까?

예술은 그렇다. 무조건 나의 감정을 움직이는 것을 따라가면 된다. 사전 지식이 있고 전문가가 추천해 주고 하는 것들이 더 좋을 수 있지만 다 필요 없다. 예술은 주관의 영역이다. 그림도 음악도 내가 보고 듣고 좋다고 느끼는 게 진짜 좋은 것이다. 피카소 그림이 누구에게는 위대한 그림이고 누구에게는 애들 장난처럼 보여도 그 두 가지 느낌이 다 맞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베토벤 음악이 누구에게는 인생 최고의 음악이 될 수 있고 누구에게는 무겁고 지루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두 느낌 모두 정답인 것이다.

일단 여러 가지 음악을 들어보자. 수많은 클래식 음악 중에 내 귀에 맞는 음악이 단 하나도 없을까? 없을 확률이 더 낮다. 분명 내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이 있을 것이다.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이 있다면 다른 연주자나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음악도 찾아보자. 그 작곡가의 다른 음악도 찾아보고 작곡가의 같은 시대의 음악도 찾아보자. 그러면서 점점 클래식 음악이 확장된다. 내 귀에 맞는 클래식 음악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찾으려고 하면 오히려 더 찾기 어려울 수 있다. 생각날 때 잠깐 찾아보거나 광고에서 들은 클래식 음악이 좋아서 찾아는 정도가 좋다. 일정이 꽉 짜인 여행보다 어그러진 일정 속에 우연히 만난 여행지나 음식이 더 기억에 남는 것처럼 말이다.

요즘 LG 시그니처 광고의 배경 음악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악장인데 여러 번 들어봤음에도 TV에서 광고로 들으니 감동이다. 우연히 들었던 음악이 좋았다면 찾아보게 되고 자연스럽게 클래식 음악에 빠져들 수 있다.

https://youtu.be/2_zJlLCl_Yg

악기의 왕은 피아노라고 생각한다. 바이올린, 첼로 등등 여러 악기가 있지만 개인적인 애정을 섞어서 뭐니 뭐니 해도 피아노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피아노 음악 먼저 찾아서 들어보자. 피아노 음악이 괜찮으면 그때 바이올린이나 첼로 등으로 넘어가도 된다. 피아노 음악 또는 피아노 협주곡 아니면 교향곡 위주로 찾아 듣자.

수많은 클래식 작곡가가 있다. 하지만 그중에 대장들 몇 명 것을 먼저 들어보자. 바로크 시대의 바흐, 고전주의 음악에 모차르트, 낭만주의 음악에 베토벤, 쇼팽. 우선 이들의 음악을 먼저 들어보자. 모두 신이 낳은 위대한 작곡가들이고 클래식 음악계의 대장들이지만 그들의 음악을 반드시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귀에 맞지 않는 음악도 있을 수 있다. 나도 개인적으로 바흐의 바로크 음악은 너무 규칙적이라 따분하고 베토벤은 너무 무거워서 좋아하지 않는다. 밝은 모차르트와 아름다운 쇼팽을 좋아한다. 우선 이들의 음악을 들어보고 귀에 안 맞으면 다른 작곡가들을 찾으면 된다. 바로크의 헨델, 고전주의의 하이든, 낭만주의는 엄청 많다. 슈베르트, 리스트, 라흐마니노프, 차이코프스키 등등. 인상주의는 드뷔시에서 끝나지만 안 맞으면 라벨도 들어보자. 바로크-> 고전-> 낭만-> 인상-> 현대 음악으로 계보가 이어지는데 현대 음악은... 버려도 된다.

클래식 음악 사대천왕 : 모차르트, 베토벤

클래식 음악 사대천왕 : 바흐, 쇼팽

미국 농구 NBA에 수많은 스타들이 존재한다. 누가 잘했고 누가 못했고 말들이 많고 줄 세우기가 난무하는데 이런 말이 있다. '애매하면 조던'. 마이클 조던 실력과 스타성 앞에 모든 논란이 수그러든다. 클래식 음악계에도 이런 법칙을 정하고 싶다. '애매하면 조성진'. 내가 만든 말이지만 참 잘 만들었다. 2015년 쇼팽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대한민국이 낳은 위대해지고 있는 젊은 피아니스트이다. 요즘 직장의 화두인 94년생인데 방송에 나와서 차분히 조곤조곤 얘기하는 모습과 폭넓고 깊은 생각이 젊은 친구 답지 않은 면모를 보여준다. 그런 모습과 반대로 연주할 때의 몰입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처음엔 샌님 같던 그의 연주가 별로였는데 최근에 들어보니 상당히 발전했다. 소위 '삑사리'라고 하는 미스터치도 거의 없는 완벽주의자다. 누구의 연주를 들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그냥 조성진을 찾아서 듣자. 아직 경력이 얼마 안돼 다양한 연주가 많지는 않지만 그 정도만 들어도 충분하다.

아름다운 청년 조성진

음악은 어떻게 들을까? 작곡가별 전집을 사야 할까? 책이나 클래식 음악이나 전집을 사는 것만큼 바보 같은 게 없다. 전집 사봐야 듣는 것만 듣게 된다. 그게 법칙이다. 클래식 음악은 유튜브에서 들으면 된다. 연주하는 모습도 보고 음악을 들을 수 있으니 아주 좋은 클래식 음악 감상소다. 몇 개 찾아서 들으면 추천 알고리즘이 무수히 많은 좋은 연주를 뿌려줄 것이다.

클래식 음악은 좋다. 다른 세계다. 아무나 접근하지 않는 또 다른 세계다. 클래식 음악을 느낄 수 있게 되면 이런 세계를 왜 진작 몰랐나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아도 내 귀에 맞이 않으면 그만이다. 찾아보고 아무리 해도 동화되지 않는다면 과감히 포기하자. 느끼고 감동을 받으려고 음악을 듣는 것이지 스트레스받으려고 듣는 것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스트레스를 유발한다면 듣지 말자. 대신 괜찮은 게 있나 찾아보는 작은 노력 정도로만 시간 투자를 하자.

바람이 차가워지기 시작하는 이 가을, 클래식 음악에 기대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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