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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희 Oct 22. 2019

개발자들은 왜 그래요?

개발자 사용 설명서

개발자라는 직업을 갖기 전 IT 회사에서 운영과 관련한 업무를 맡았었다. 개발자들에게 문의하거나 협조를 구할 일이 종종 있었는데 그때마다 참 어렵고 힘들었다. 일단 개발자 집단의 분위기 자체가 쉽지 않았다. 알 수 없는 무거운 분위기가 느껴졌고 몇몇 개발자들을 뭐라도 물어보러 가면 화부터 내곤 했다. 간혹 나의 문의나 요청 때문에 개발자들이 일을 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했는데 그때는 무척이나 미안해해야 했다. 상대하기 어렵고 까다롭고 무서운(?) 사람들. 이게 개발자들에 대한 이미지였다. 


시간이 흘러 내가 개발자가 되고 지난 회사생활을 돌아보니 응? 나 역시 그때의 안 좋은 분위기를 풍겼던 개발자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다크한 분위기, 간혹 누군가 뭘 물어보러 오면 까칠하거나 화부터 내는 태도,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습성 등등. 


도대체 개발 업무가 어떤 영향을 미치기에 이런 사람이 되어가는 건지 스스로도 궁금했다. 그래서 나의 사례를 비롯한 동료 개발자들의 모습에 대해 고민해보고 개발자에 대한 QA 형태의 글을 써보려고 한다. 사람 좋은 개발자들도 수두룩하니 모두가 이렇다고 일반화할 수 없음을 전제로 쓴다. 이 글을 통해 개발자와 일하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여기에 해당하는 내용이 있는 개발자라면 고치고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무엇보다 나 자신에 대한 반성문과 같은 글이다. 




Q : 요청하거나 물어보면 왜 그렇게 까칠하고 화를 내요?

A : 하던 일을 중단하고 다른 일을 해야 한다면 그리고 다시 원래 하던 일로 돌아와야 한다면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단순한 일이라면 일에 대한 스위칭이 간단할 수도 있겠으나 개발 업무가 그렇지는 않다. 개발은 절차가 중요한 업무다. 순서대로 진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생각보다 정신적인 영역의 업무다. 모든 정신이 개발에 쏠려 있어야만 진도가 나간다. 그런데 순서가 끊기고 정신을 훼방받게 되면 일에 대한 의욕은 사라져 버리고 다시 하던 업무로 돌아가려면 많은 집중력을 요구하게 된다. 그러려면 뇌에서는 많은 칼로리를 소모하게 되고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들게 만든다. 그래서 까칠한 태도나 화를 내는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거기에다 보통은 해당 업무에 대한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지도 않으니 다른 일을 하려면 일정에 대한 촉박함때문에 더욱 짜증이 난다. 만약 요청 내용이 내 코드로 인한 버그라면 자존심도 심하게 상한다. 코드가 구조적으로 아무리 잘 짜여 있어도 수많은 코드 속에서 원인과 문제를 찾는 일은 도서관의 책 속에서 원하는 문구를 찾는 일과 비슷하다. 간단한 확인 정도의 업무라고 생각되어도 개발자에게는 찾기 쉽지 않다. 

Solution : 심각한 오류라면 긴급하게 요청하는 건 당연하다. 일반적인 업무이고 회사 내에 절차가 있다면 절차를 지켜가며 업무를 요청해야 한다. 절차가 없다면 절차를 만들자. 절차까지 필요하지 않은 확인 정도의 업무라면 시간에 여유를 두고 답변을 요청하자. 개발자의 머릿속에는 요청 내용이 계속 맴돌아 아마 여유 시간보다 더 일찍 답을 줄 것이다. 


Q : 이거랑 비슷한 작업 해봤으니 금방 하죠?

A : 개발을 하다 보면 비개발자 직군에서 이런 얘기를 많이 듣는다. 이미 했으니 다시 하는 게 뭐가 어렵고 오래 걸리냐고. 단순히 복사 & 붙여 넣기 작업이라면 당연히 오래 걸릴 것도 없고 어려울 것도 없다. 하지만 그런 업무는 거의 없다. 개발 코드가 단독으로 혼자 쓰여서 이 녀석만 복사해서 붙여 넣기만 하는 되는 그런 형태의 프로그래밍은 매우 드물다. 보통은 다른 코드와 밀접하게 연계되어 쓰이고 느슨하게 묶여 있다 하더라도 이 코드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개발자는 일일이 확인해 봐야 한다. 그러니 해봤던 일이고 비슷해 보여도 개발자에게는 쉽게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거기다 대고 금방 끝낼 수 있지 않느냐고 얘기하면 화가 난다. 화가 났으니 개발자의 반응이 까칠할 수밖에 없다. 

Solution : 비개발자가 보기에 단순하거나 비슷해 보여도 그렇게 끝낼 수 있는 개발 업무가 거의 없다. 개발자에게 이런 말은 안 하는 게 좋다. 


이런 상황까지는 가지 않게


Q : 분위기가 어두워요, 개발팀이 무서워요.

A : 협업이 강조되는 시대이지만 개발 업무는 지독히 외롭다. 거의 혼자 해야 한다. 다른 개발자와 같이 개발한다고 하더라도 협업해서 만나는 코드 전까지는 혼자 개발해야 한다. 혼자 일하고 혼자 고민하다 보면 저절로 과묵해진다. 아니면 해결 못한 코드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말도 잘 안 하고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개발자를 다른 직군의 사람들이 보면 유쾌해 보이진 않을 것이다. 

Solution : 일의 특성 때문에 말을 안 하고 어두워 보이는 것뿐이다. 마음까지 어두운 사람들이 아니다. 개발자들도 양지를 좋아한다. 사소한 일이라도 개발자들은 먼저 말 걸어주는 걸 좋아하니 말 한번 걸고 양지로 이끌어 주시라. 


Q : 말을 잘 안 해요,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A : 이것 역시 혼자 일해야 하는 직업 특성 때문이다. 말을 잘 안 하다 보니 말하기 기술도 떨어진다. 점점 말수가 줄어드는 이유이다. 말도 잘 한하고 기술도 떨어지는데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잘할 리 없다. 혼자 조용히 생각하는 게 편한 직업이다. 

Solution :  위와 같다.


Q : 왜 맨날 체크 남방만 입어요?

A : 주로 남자들 얘기이고 인터넷에 떠도는 밈같은 얘기인데 실제로 주변을 둘러봐도 개발자들이 체크 남방을 많이 입는다. (그렇게 의식해서 체크 남방이 유독 눈에 띄는 것일 수도 있기는 하다) 일단 개발자들은 보통 복장이 자유롭다. 자유롭지만 옷을 잘 입는 사람은 거의 없다. 체크무늬 남방은 손쉽게 이뻐 보인다. 옷을 잘 못 입으니 손쉽게 이뻐 보이는 체크 남방을 자주 입게 된다가 내 결론이다. 격자무늬 패턴이 일정한 규칙과 패턴으로 개발해야 하는 개발자에게만 아름다워 보인다는 얘기도 틀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Solution : 좋은 남방 좀 추천해 주시라.


Q : 업무 요청이 어려워요, 무조건 안된다고만 해요.

A : 주로 기획자들과 부닥치는 경우가 많은데 이건 개발 업무를 경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누군가 기획을 해오거나 요청을 해 오면 개발자는 그 자리에서 본인의 경험과 현재 주어진 환경을 가지고 빠르게 시뮬레이션해 본다. 그럼 대략적인 작업 범위와 일정이 산출되는데 작업 범위가 크거나 일정이 길어진다면 안된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거기다 새로운 기술을 도입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러면 새 기술을 익히고 안정화하는 시간까지 일정에 포함시켜야 하니 안된다고 할 수밖에 없다. 물론 하기 귀찮아서 그러는 경우도 있다.

Solution : 개발자들은 논리적인걸 좋아한다. 논리가 없이 뜬금없이 하라고 하거나 어려운 요구를 하면 삐딱해지기 시작한다. 논리 정연하게 설명하면 쉽게 OK 한다. A를 요청할 때 어려운 일인지 아닌지 모르겠다면 B라는 대안도 준비해 두면 좋다. C까지 준비해 주면 더 좋다. 그럼 개발자들이 그중 적절한 답을 찾아줄 것이다. 


Q : 이상한 취미를 가진 사람이 많아요. 더불어 사람들도 이상해요.

A : 이상한 취미가 있어서 개발자가 된 것인지, 개발자가 되어서 이상한 취미가 생긴 것인지에 대한 인과관계는 파악이 어렵지만 솔직히 내 주변에도 이상한 개발자들이 제법 많다. (물론 그들도 나를 보며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어느 직업 직군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창의성이 중요하다. 무에서 코드를 타이핑해 유를 창조해야 하는 개발자들도 창의성이 매우 중요하다.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으면 빠르게 달려가는 이 바닥에서 생존이 어렵다. 창의성이란 게 갑자기 길러질 리 없다. 평소에 다른 생각, 다른 활동들이 창의성에 도움을 준다고 본다. 그래서 개발자들의 이상한 취미도 창의성에 플러스 요소다. 

Solution : 다양성이 존중받는 시대이다. 이상해 보여도 이해해 주시라. 그리고 창의성을 위한 작은 발걸음이라고 봐 주시라.


Q : 왜 그리 자존심이 세요?

A : 매우 안 좋은 태도인데 개발자들은 자기가 모르는걸 남에게 물어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반대도 마찬가지, 내가 모르는걸 남이 물어보는 것도 좋아하지도 않는다. 내 기술의 부족함을 드러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술자는 기술 하나로 밥 벌어먹고 산다. 기술이 전부인 것이다. 내 기술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 기술이 있으니 남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이 자존심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Solution : 위와  같은 태도는 극히 일부의 경우다. 기술의 우월함보다는 개발자가 맡은 도메인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나타나는 강한 자존심이라고 생각해 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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