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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희 Oct 31. 2019

출장 가는 날

내가 꼭 가야 했니?

"가야 된다고?"


지방 출장이 잡혔다. 위치는 충청도. 업무가 간단치 않은 일이고 방문해서 작업해야 한단다. A업체 관계자도 같이 와서 봐야 하는 일이다. 기술팀 인원 한 명, 우리 팀 팀장님 한 명, 나까지 세명이 간다. 오전에 회사에 출근해서 회사차로 이동한다. 개발팀 인원에게 출장이나 외근이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종종 가야 할 때가 있다.  


기술팀 친구가 운전대를 잡았다. 그런데 이 친구. 운전이 거칠다. 무지하게 밟아댄다. 공용차로 쓰이는 디젤 RV는 관리도 잘 안되고 여러 사람이 끌다 보니 상태가 안 좋다. 진동이 심하다. 거기다 신나게 밟으니 진동이 어머어마해서 안마기에 앉아있는 느낌이다. 나는 뒤에 앉았는데... 두렵다. 고속도로를 화끈하게 달린다. 차 양 옆에 날개를 단다면 공중으로도 뜰 것 같은 느낌이다. 


기술팀과 동반해 출장이나 외근을 가면 장점이 많다. 일단 서버 관련한 작업이라면 기술팀 인원들이 더 많이 알기에 꼭 필요하다. 또 낯선 외근지에서 우리 편인 기술팀 인원이 있으면 심리적으로 안정되어 작업에 집중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다른 시선을 제공해 문제를 해결할 단서를 주기도 한다. 그래서 꼭 동반하는 게 좋은데 이 순간만큼은 사신과 함께하는 기분이다. 


두 시간을 달려 도착했다. 주차를 하고 점심을 먹고 들어가기로 했다. 대충 둘러봤는데 갈만한 식당이 보이지 않는다. 눈에 띄는 만두집에 들어가기로 했다. 위치는 좋은데 손님이 없다. 그때 눈치채고 나왔어야 하는 건데 이것저것 시켜서 먹어보니 맛없다. 난 실패하기 힘든 라면이랑 공깃밥을 시켰는데 라면도 설익어서 딱딱하다. 대충 때우고 작업을 진행하러 들어간다.


A업체 담당자가 미리 와있다. 나이가 어려 보인다. 지방 출장이다 보니 짬 안 되는 친구를 보낸 것 같다. 어린 친구들은 경험이 부족해 일이 어려워질 수 있다. 일단 우리 쪽 가이드를 주고 내가 준비해 간 작업용 파일들을 서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A업체 담당자가 일을 시작했다.


대기. 대기. 대기. 업체 담당자가 작업하는 동안 계속 대기다. 내가 출장을 동행한 이유는 이번에 하는 일의 업무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서이다. 우리가 어디까지 진행하고 A업체가 어디까지 진행할지 결정이 안됐다. 사실 우리 업무도 아니라서 안 해도 되는 건데 일이 꼬이고 누구는 배를 째고 하는 바람에 이지경까지 왔다. 어쨌든 일이 진행되게 하는 게 중요하기에 우리 영역이 아님에도 준비를 해 왔다. 가만 보니 A업체 담당자는 분명 뭐가 잘 안 되는 눈치다. 끙끙대고 꿍시렁대는게 잘 안되고 있는 거다. 이 사람이 앞에서 완료해줘야 그다음 우리 쪽 연동이 된다. 안되면 안 될수록 집에 가는 시간만 늦춰진다. 혹시나 도움될 게 있을까 해서 물어본다.


"뭐가 잘 안 되나요?"

"아뇨, 시스템이 좀 달라서..."


딱히 도움을 바라지 않는 대꾸다. 다시 대기. 한 시간 정도 지나자 다 됐다고 한다. 응? 업무 범위를 명확히 구분하진 않았지만 어쩌다 저쩌다 담당자가 다 해버린 듯싶다. 이러면 당연히 우리 쪽에서는 좋지만 그럼 굳이 내가 올 필요도 없었다. 서버에 파일 두 개 업로드하려고 충청도까지 출장을 오다니. 허탈하다. 오늘 작업의 주인공은 나였고 조연은 팀장님이었는데 오히려 내가 조연이 되고 팀장님이 주인공이다. 팀장님쪽 일이 잘 안돼서 거기가 더 바쁘다. 그럼 난 또 대기.


외근이나 출장에는 법칙이 있다. 업무를 보면 대략 언제쯤 끝낼 수 있는 시간이 산정된다. 일찍 끝낼 수 있거나 오래 걸릴 것 같은 작업으로 분류되는데 일찍 끝낼 수 있을 것 같아서 가서 작업하면 아주 늦게 끝난다. 늦게 끝날 것 같으면 또 일찍 끝난다. 무슨 청개구리 귀신이 씌었는지 꼭 예상과 실제는 정반대로 흘러간다. 오늘도 그 법칙이 어김없이 나와 팀장님에게 찾아왔다. 나는 일찍 끝나고 팀장님은 늦게 끝나고. 저녁 6시가 다 되어서야 업무가 끝났다. 막판에 내쪽에 문제가 생겨 한 시간 정도 집중을 했더니 급격한 피로가 몰려온다. 


그냥 올라갈까 저녁을 먹고 올라갈까 올라가서 저녁을 먹을까 잠깐 의견이 오간다. 차가 막힐 수도 있으므로 저녁을 먹고 올라가기로 결정. 점심때 먹었던 맛없던 만두집을 지나 좀 걸어가니 의외의 번화가가 펼쳐진다. 한 블록 지나왔을 뿐인데 명동 거리다. 젊은이들도 많고 삐끼도 몇 명 보이고 혼란스럽다. 골목 안쪽에 쌈밥집이 있다. 손님이 별로 없었지만 귀찮아서 일단 들어간다. 쌈밥 3인분을 시켰는데 고기는 별로 없고 채소만 엄청 준다. 대충 먹고 서울로 올라간다.


중간에 이천 휴게소쯤에서 잠깐 쉬었다 간다. 휴게소에 스타벅스도 있다.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들고 차에 타서 먹으려고 했는데 생각을 잘못했다. 올라가는 차도 아까 그 친구가 운전한다는 것을. 엄청 밟아대고 차는 흔들리고 커피 마시다가 입과 혀를 몇 번 데었다. 나쁜X끼. 회사에 도착하니 밤 9시. 집에 가려면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더 가야 한다. 아무리 가까워도 출장은 다녀오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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