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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희 Dec 10. 2019

직장 경조사, 갈 것인가? 말 것인가?

딜레마 제조기 직장 경조사

얼마 전 같은 부서 다른 팀 후배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토요일 오후 4시. 급하게 예식장을 잡은 티가 팍팍 나는 시간이다. 점심으로 먹기에는 지나치게 늦고 저녁을 먹기에도 심하게 이르다. 점저도 아닌 정말 애매한 시간. 3시, 4시에 열리는 결혼식은 가기 싫다. 결혼식이라면 당연히 축하가 먼저인 것을 밥시간을 생각하게 되는 대한민국 결혼식은 이상하게 변질되었다. 


사실 요 근래에는 직장 동료 결혼식을 거의 안 다닌다. 속물근성이지만 일단 내가 결혼을 해서 딱히 받을 게 없다. 그리고 같은 부서 같은 공간에서 일하지만 나보다 어린 친구들과 그다지 친분이 없으니 잘 안 가게 된다. 또 결혼식이라는 게 얼굴 도장 찍는 행사로 심하게 변질되어가고 있는 마당에 내 윗사람도 아니다 보니 안 가도 될 얄팍한 명분이 만들어진다. 참석 안 해도 축의금을 보내기는 한다. 이번에 간 이유는 같이 일한 지 오래된 친구라 굳이(?) 챙겼다. 


오랜만에 몸에 어색한 정장을 입고 출발을 한다. 어차피 정시에 도착하나 먼저 도착하나 늦게 도착하나 크게 의미는 없다. 대충 어림잡아 출발하고 도착했더니 예식이 진행 중이다. 예식을 보고 있는 회사 사람은 몇 명 없다. 같은 팀 후배에게 전화해보니 식당에 내려와 있단다. 저녁 안 먹으려다가 국가 표준 축의금 5만 원을 내고 식권 한 장 받아 든 후 식당으로 내려갔다. 아니 근데 이게 웬걸. 그날 참석한 20여 명의 회사 사람들 전부 식당에 모여있다. 사진도 안 찍고 전부 밥 먹으러 온 거다. 참 웃기다고 생각했다가 나도 그냥 내려왔는 걸 깨닫고 조용히 자리 잡는다.



우리나라 결혼식은 요식행위로 변질되었다. 응당 축하해주고 축하받고 기쁜 날이 되어야 하는데 신랑 신부는 정신없이 바쁘기만 하고 사람들은 참석에만 의의를 둔다. 그나마 친인척 또는 친구라면 그런 게 덜한데 직장 동료의 결혼식은 유독 그런 형태로 흘러간다. 친하기보단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니 축하보다 인사치레 하는데 더 의미를 둔다. 그래서 난 더욱 안 가게 된다. 굳이 후배들에게 인사 치례를 할 필요성은 없으니... 아마 직장 상사의 결혼식이었다면 꼭 갔겠지만 지금 결혼하는 직장 상사가 있다면 그건 재혼일 때나 가능한 것이기에 그런 일은 잘 없다.


몇 년 전에 회사 임원의 상갓집을 다녀왔다. 지방이었고 왕복 7시간이 넘게 걸렸다. 아침밥 먹고 30분 앉아있다 올라왔다. 입사 때부터 직장 상사였던 분이라 다녀온 거라고 주변에 얘기했지만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이었다면 내가 거기까지 다녀왔을까? 절대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임원이라는 타이틀이 멀어도 움직이게 만들었다. 


간사하다고 생각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직장 내 정치에 신경 쓰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런 건 또 챙긴다. 챙기기 싫어도 제법 오래된 직장 생활의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몸을 움직여야 한다고 말해준다. 결혼식에서는 웃는 가면을 쓰고 상갓집에서는 슬픈 가면을 쓰고 무심한 마음으로 경조사를 쫓아다녀야 하는 직장인들은 피곤하다. 황금 같은 휴일을 하루 반납하고 회사 사람들을 하루 더 본다는 사실도 부담스럽다. 


그래도 어쩌랴. 직장 생활 나 하고픈대로만 할 수도 없고 그게 룰이라면 따라야 한다.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경조사는 꼭 참여하고 친분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 또한 꼭 참여한다. 그 외에는 돈만 보낸다. 이게 직장 생활하며 생긴 별것 없는 나만의 경조사 원칙이다. 


직장생활을 하며 진심으로 축하해 줄 사람도 슬퍼해 줄 사람도 없다면 그런 직장 생활도 슬프다. 그렇게는 살지 말자고 공허하게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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