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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희 Dec 18. 2019

나이가 드니 바뀌는 것들

직장 안에서의 변화

1. 

젊을 때는 SUV가 끌렸다. 요즘은 전반적으로 SUV가 인기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세단이 당긴다. 요즘 새로 나온 그랜저가 무척 예쁘더라.


2.

직장에서 간혹 차를 끌어야 할 일이 있다. 예를 들어 워크숍 같은 거 갈 때. 이때 은근히 차가 신경 쓰인다. 나보다 나이도 어리고 직급도 낮은데 더 좋은 차, 큰 차 끌고 있으면 괜시리 03년식 중고 아반떼 차주는 부끄럽다. 요즘 성공의 상징이 그랜저라던가?


3. 

연차가 쌓이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골프가 중요해 보인다. 골프가 많이 대중화되기도 했고 주변에 골프 한번 안 배워본 사람이 없을 정도다. 운동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나 이건만 어째 골프는 한 번도 관심을 가져보지 않았다. 그런데 이젠 배워야 할 거 같다. 지금 안 배워두면 분명 언젠가 골프가 발목을 잡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4. 

점점 잠이 없어진다. 원체 일찍 일어나고 일찍 출근하는 게 습관이 되었지만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젊은 친구들을 보면 항상 졸려한다. 왜들 그럴까 이해가 안 됐는데 옛날 생각을 해보니 나도 젊을 때는 직장에서 항상 피곤했었다. 몰래 자기도 하고. 확실히 나이 들면 잠이 줄어든다. 눈뜨고 있는 시간이 길어진 만큼 생산적인 인간이 되어야 하는데...


5. 

잠이 없어진 이유가 카페인 때문일 수도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커피 복용량이 늘어간다. 일단 하루에 기본 세 잔은 먹는다. 그 이상은 되도록 안 먹으려고 하는데 회사일에 집중할수록 에너지는 딸리고 카페인은 필요하다. 


6. 

젊을 때는 사람 만나는데 큰 의미를 두고 시간을 많이 들였지만 점점 그런 게 무의미해진다. 인간관계 열심히 가져가 봐야 피곤하기만 하더라. 그래서 직장 안에서의 인간관계도 매우 심플해져가고 있다. 가끔 친한 사람 출근 안 하면 밥 먹을 사람 없을 때도 있다. 


7.

매니지먼트에 관심이 간다. 계속 개발만 하는 개발자로 남고 싶기도 하지만 매니지먼트도 해보고 싶다. 나이 먹고 직급이 쌓이면 회사에서 매니지먼트 능력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래서 관련 책들도 찾아보게 된다. 무엇보다 훌륭한 교보재는 직장 상사들이다. 잘하는 사람을 보면 잘하는걸 배우지만 못하는 사람을 보면 난 저러지 말아야지 하고 배운다.


8.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나이 때가 점점 어려져서 솔직히 힘들다. 이제야 90년생에 대한 이해도가 1% 정도 완료됐는데 00년생을 걱정해야 한다. 얼마 전에는 99년생의 이력서도 받아봤다. 어린 친구들은 나이 많은 사람들을 꼰대라고 놀려댄다. 꼰대인걸 알고 그걸 탈피해보려고 하면 생각 있는 척하는 꼰대라고 놀려댄다. 나이 든 게 잘못한 것도 아닌데 이런 조리돌림을 당하는 게 억울하기도 하지만 직장 내에서 그들보다 조금 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에게 돌아오는 화살 정도라고 생각하려고 한다. 사실 내가 그들보다 직장에서 크게 권한이 많은 것도 아닌데 자꾸 꼰대라고 놀리면 나도 화살 쏴버린다. 


9. 

옷차림에 신경을 쓰게 된다. 나이 먹고도 옷차림에 신경 안 쓰면 좀 없어 보인다. 원래 옷을 잘 입지도 못하지만 젊을 때는 365일 캐주얼이었다면 요즘은 몇 번 정도는 세미 캐주얼로 입고 출근한다. 옷 사러가도 젊을 때는 바람막이 같은 것에 자주 끌렸는데 이젠 마이나 코트 같은 것에 눈길이 많이 간다. 


10.

슬픈 일인데 젊을 때는 냄새가 별로 안 났는데 나이 드니 냄새가 많이 난다. 열심히 씻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늙어서 나는 냄새다. 그래서 옷 자주 빨고 양치해도 리스테린으로 한번 헹궈주는 등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나이 먹고 냄새까지 나면 그것만큼 같이 일하기 싫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꽃중년이라는 게 가능하긴 한 걸까?


11. 

남의 시선을 신경 안 쓰게 된다. 이젠 욕도 먹을 만큼 많이 먹었고 몹쓸 놈이라는 인상도 여기저기 남겨서 타인의 시선에 신경 안 쓰고 my way 한다. 이미지가 나쁠 만큼 나빠져서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다. 여기서 더 이미지를 나쁘게 만들려면 범죄를 저질러야 한다. 근데 이게 참 편하다. 한 회사를 오래 다녀서 그런 것도 있는데 아마 새로운 회사를 다녔다면 이미지 관리하느라 착한 척을 해야 했겠지. 워낙 이미지가 안 좋으니 조금만 잘해도 개과천선 했다는 소리도 가끔 듣는다.


12.

뭣 같은 놈들 때문에 퇴사를 하는 결정은 하지 않는다. 그런 놈들은 어느 회사를 가나 있을 것이다. 그런 놈들을 극복한 사례도 나의 좋은 경험이다. 그런 못난 놈들 때문에 내 인생이 피해를 입는다는 게 기분 나쁘다. 똥을 만났다고 왔던 길을 돌아가야 하나? 아니면 다른 길로 가야 하나? 그저 옆으로 살짝 비껴가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도 나이를 먹고 생긴 좋은 혜안이다.


14. 

회사가 편하다. 집에 가면 집안일, 애보기로 정신이 없다. 쉬어도 쉬는 게 아니다. 주말이 주말이 아니다. 회사는 편하다. 해야 할 업무도 있고 보기 싫은 인간도 있고 스트레스도 있지만 그래도 집보다 회사가 편할 때가 많다. 가장 큰 이유는 나한테 뭐라고 할 윗사람이 별로 없어서 일 것이다. 


15.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넓어졌다. 나이 먹어도 나쁘지만 않은 게 이런 부분이다. 좀 더 넓게 바라보고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가고 이런 건 나이를 먹고 경험을 쌓아야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이 먹는 게 다른 한편으로는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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