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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희 Dec 19. 2019

그 시절 직장 생활은 어땠을까?

10년 전 회사 생활에 대한 추억

2002년 한일 월드컵이 한창이던 6월에 군에서 제대를 했다. 복학을 해야 했지만 쓸데없는 돈 욕심에 학교로 돌아가지 않고 이런저런 회사들을 다녔다. 주로 아르바이트나 비정규직에 종사했고 돈은 많이 못 벌었지만 그때 했던 회사 생활이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기억이란 왜곡되기 마련이고 추억도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뇌의 기억들은 재편되어 그 당시가 이제 몇몇 장면으로 밖에 남아있지 않다. 지금 직장 생활과는 결이 달랐던 그때의 회사 생활을 떠올려 보고 기록으로 남긴다. 그래 봐야 10년 조금 더 된 얘기다. 



1. 토요일 출근

대기업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중소기업은 토요일도 근무를 했다. 회사 사람을 반으로 나눠 격주로 출근했고 오전 근무만 하고 퇴근했다. 토요일 출근하면 일이 될까? 당연히 안된다. 오전에 출근하면 노가리 좀 까다가 일하는 척하고 다들 퇴근 후 뭐할지 고민하며 보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비효율의 극치다. 주 5일 근무는 신의 한 수다.


2. 스타벅스는 직장인의 안식처

그때도 스타벅스는 인기가 있었다. 지금은 워낙 지점도 많고 보편적인 곳이지만 그때는 좀 특별한 느낌의 커피숍이었다. 특별할 때만 가는 커피숍. 커피를 잘 모르던 내게 회사 누나들이 스타벅스를 데리고 다니면서 커피를 알려줬다. 에스프레소가 뭔지, 아메리카노가 뭔지, 넌 뭘 먹어야 하는지. 그때나 지금이나 스타벅스는 짱짱맨.


3. 점심에 당구장에서 짜장면 한 그릇?

회사 형들이 당구장을 데리고 다녀서 당구를 배웠다. 점심에 형들과 당구장에서 짜장면 시켜놓고 당구를 치는 맛이 정말 좋았다. 세상에서 젤 바쁜 게 당구장에서 짜장면 먹으며 당구 치는 거다. 짜장면 먹다가 내 차례 되면 치고 다시 짜장면 먹고. 정신없어서 짜장면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지경이 된다. 보통은 당구장 비용 또는 음식 비용을 내기로 걸기에 재미와 긴장은 배가된다. 요즘엔 직장인들에겐 당구 자체가 인기가 없어 이런 문화도 옛날 얘기가 되어 버렸다.


4. 빌딩 지하 식당들

명동 쪽에서 일할 때 빌딩 지하에 있는 식당가를 자주 갔다. 그때는 빌딩 지하에 이런저런 식당이 많이 있었다. 현재 여의도 지하 식당가에도 비슷한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자주 가던 집이 제육덮밥을 잘했다. 제육을 시키면 나오는 비빔 그릇에 밥 넣고 제육 넣고 비벼먹으면 거칠지만 꿀맛이었다. 요즘엔 그렇게 무식한 식당은 보기 힘들다. 제육을 시켜도 깔끔하게 나온다. 빌딩 지하 식당에는 나름의 풍미가 있었다. 요즘은 조미료에 대해 사람들이 반감을 많이 가지는데 아마 그 시절 지하 식당들은 조미료 엄청 넣었을 것이다. 그래서 맛있었나?


5. 회식은 거칠어

지금처럼 다양한 회식이 없었다. 1차 술, 2차 술, 술로만 때우는 회식이었다. 술 못 먹는다고 배려해주는 것도 별로 없었다. 회식 자리에서 술 잘 먹고 잘 놀면 사랑받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앉은자리에서 소주 3잔을 외치며 안주도 없이 깡소주를 까곤 했다. 정말 그때 회식은 거칠었다. 지금 그렇게 회식하면 다 도망간다.


6. msn, 네이트온 메신저 없이 회사생활 불가

처음엔 msn 메신저 그다음엔 네이트온 메신저가 공용 메신저처럼 사용되었다. 대화명을 그날의 기분이나 감정 상태에 따라 바꾸곤 했는데 좀 안 좋게 적으면 무슨 일 있니? 하고 물어보기도 했다. 자주 보였던 메신저 대화명이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였는데 나도 한때는 이 대화명을 썼다. 출처가 불분명한 체게바라의 명언이라는데 어떻게 보면 낯 뜨거운 얘기지만 워낙 인상 깊은 문구이기에 너도 나도 대화명으로 사용했던 것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메신저 없이는 업무 불가능이다.


7. 개인정보는 먹는 건가요?

개인정보 법이나 개인정보에 대한 인식이 아주 낮던 시절이다. 회원 가입하면 주민번호를 반드시 받고 그걸 DB에 저장해 놨다. 지금이야 개인정보 유출되면 뉴스에도 나오지만 그때도 엄청 유출되었을 것이다. 이미 그 시절부터 주민번호 및 개인정보는 공공재.


8. 탈퇴하면 지워줘

그때 내가 일하던 웹사이트에서 회원들에게 이벤트 메일을 뿌렸다. 그러려면 개발자한테 회원들 이메일 정보를 받아야 했는데 이런 젠장. 개발자가 탈퇴 회원을 예외처리 안 하고 다 줬다. 그러니 탈퇴회원, 정상 회원 모두에게 이벤트 메일이 날아갔다. 그때는 탈퇴해도 회원 정보를 삭제하지 않고 남겨놨다. 문제가 발생했다. 탈퇴한 회원 중 이벤트 메일을 받은 회원이 심하게 컴플레인을 했다. 아마 고소 얘기까지 나왔던 것 같다. 부장에게 보고하니 나더러 직장인 대 직장인으로 감정에 호소해 보란다. 전화를 해서 '실수가 있었다, 죄송하다, 나 잘리게 생겼다' 고 목소리까지 떨며 빌었더니 그게 먹혔다. 부장이 시키는 대로 하긴 했지만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하지 않았다면 일이 커졌을 것이다. 그분이 봐주셔서 잘 넘겼던 기억이 있다. 많은 회원 중에 컴플레인 한 회원이 한 명밖에 없었단 것도 것에 개인정보에 관심이 없던 시기라는 걸 반증한다.


9. 꼰대가 있었나?

내가 주로 다녔던 회사가 젊은이들 위주의 IT 회사라서 그랬는지 몰라도 꼰대 같았던 사람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개중에 지금의 기준에서 바라보면 꼰대라고 불릴만한 사람들도 있긴 있었다. 그래도 많지는 않았다. 90년대의 직장 문화와 2000년대의 새로운 직장 문화가 충돌하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있던 IT 업종은 변화의 폭이 크기도 했다. 그 당시의 꼰대들도 아마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의 나처럼 ㅠㅠ


10.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그냥 바라보면 

정. 그때는 정이 있었다. 메신저 대화명이 이상하면 별일 없는지 물어보고 생일이면 다 같이 케이크 사놓고 축하도 해주고 했다. 서로 간 개인사에도 관심을 많이 가졌다. 요즘 직장이야 워낙 개인주의가 팽배해 있지만 그때는 분명 정이라는 감정이 있었다. 따뜻했던 느낌이 있었다. 가족 같은 분위기가 있었단 것이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니까. 다만 그때가 자꾸 떠오르는 건 에너지 넘치던 젊은 시절의 내 모습이 그리워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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