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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희 Mar 08. 2020

나도 써보는 재택근무 후기

재택근무 종료를 기원하며

사상 유례없는 전염병 시국에 직장생활 유례없는 재택근무를 해보고 있다. 이제 일주일을 했고 다음 주에도 며칠을 더 해야 한다. 해보고 느낀 점을 써 본다.




1. 

일과 휴식의 경계가 무너진다. 회사에 있을 때는 점심시간에는 확실히 쉬고 종종 쉬는 시간도 마련했는데 집에 있으니 경계가 없다. 오히려 PC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더 많아진다.


그러는 가장 큰 이유가 알 수 없는 죄책감 때문이다. 계속 이래도 되나? 이러고 있어도 되나? 하는 죄책감이 든다. 회사에서 전사로 시행하는 재택근무임에도 죄책감이 든다. 어엿한 직장의 노예가 되었나 보다.


3. 

회사 메신저가 있는데 혹시 놀고 있는 걸로 비칠까 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메신저 왔는데 답변 못할까 봐 계속 신경 쓰인다. 밥 먹다가도 뭐 왔나 쳐다보게 되고. 이것도 죄책감의 일종.


4. 

재택근무 전에는 집에서 절대 일을 못할 줄 알았다. 그냥 간단한 잡무만 처리해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일이 잘 된다. 제법 할만하다.


5. 

그렇다고 효율이 좋은 건 아니다. 집중이 잘 안된다. 회사에서 할 때보다 집중력이 많이 떨어진다. 너무 복잡한 일은 회사에 가서 하려고 미뤄두고 있다.


6. 

효율은 안 나오는데 놀 수도 없고 뭔가 일을 하긴 해야 하니 죽겠다. 연비 드럽게 안 나오는 차 모는 기분이다.


7. 

효율은 안 나오는데 머리는 굴려야 하니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나 보다. 평소에 잘 안 먹는 단것들이 무지 땡긴다.


8. 

대부분 재택근무를 해서 그런가 일도 거의 없다. 뭐라도 하긴 해야 하는데 일이 없으니 힘들다. 차라리 출근이라도 하고 있으면 덜 불안할 텐데.


9. 

회사의 책상과 의자가 얼마나 좋은 건지 이번에 알았다. 집에 있는 의자와 책상에서는 장시간 앉아있을 수가 없다. 허리는 아프고 팔과 책상의 각도가 맞지 않아 조금만 일해도 무리가 온다.


10. 

밖에 한 번도 안 나가는 날이 생긴다.


11. 

밖에 거의 안 나가니 빨래도 잘 안 생긴다.


12.

심심하고 저자극인 집밥만 먹으니 기름지고 매운 음식들이 땡긴다.


13. 

작은 방에서 혼자 틀어박혀 일하고 있는데 조금만 지나도 머리가 아프다. 산소가 금방 부족해지는 것 같다. 환기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14. 

집에 있는 캡슐 커피가 엄청 축난다. 혼자서 하루에 몇 개를 먹는지 와이프한테 들키면 혼날 거 같다.


15. 

퇴근 후 귀가 시간이 없으니 저녁 자유시간이 엄청 길다. 회사와 집이 가까운 건 축복임을 다시 한번 느꼈다.


16. 

평소에는 밤에 최대한 일찍 자려고 하는데 재택근무 기간에는 그런 부담이 없다. 평소보다 두세 시간 정도 늦게 잔다.


17. 

주말의 의미가 약해진다. 집에만 있으니 확실히 그렇다. 행복이 하나 줄어든 느낌.


18. 

아이도 유치원을 못 가고 있다. 어머니가 와서 봐주고 계신데 평소에는 유치원 하원이랑 퇴근 전까지만 봐주신다. 그런데 재택근무하면서 보니 어머니랑 애랑 제법 많이 싸우더라. 평소에도 이렇게 싸웠다는 얘기겠지. 재택근무해보지 않았으면 절대 몰랐을 사실이다. 어머니도 많이 힘드실 것 같다.




학창 시절 많이 하는 실수 중 하나가 이거다. '그냥 집에서 공부해야지'. 집에서 공부하면 백 프로 망한다. 집에서 절대 공부 안된다. 어떻게든 나가서 해야 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일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일은 회사에서 하는 게 몸도 마음도 편하다. 미션 수행하듯 직장에서 업무 딱 끝내고 집에 와서 쉬는 게 좋다. 재택근무는 일도 휴식도 애매하게 만들어 버린다.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공부는 도서관에서, 일은 회사에서'


많은 회사가 재택근무를 함에도 다들 잘 돌아간다고 한단다. 바이러스 하나 때문에 직장인들도 기업도 많은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다음 주에는 출근을 하는데 직장생활 사상 처음으로 출근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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