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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희 Dec 28. 2021

직장인의 소소하지만 웃지 못할 에피소드

에피소드 모음

2022년을 앞두고 있는 지금, 지나가는 해에 대한 회고와 앞으로의 결심이 넘쳐나는 이 시기, 소소하지만 웃지 못할 에피소드로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전해보려 한다.




1. 주차장 탈출 사건

예전 회사는 오래된 건물이라 지하 주차장이 없고 지상 주차장만 있었다. 지상 주차장도 건물 안쪽에 있고 출입구도 하나이며 사방이 막혀있는 옛날 건물이다. 사무실이 2층이라 전화 통화를 할 일이 있으면 주차장에 가서 하곤 했다. 어느 날 저녁, 통화를 하고 있는데 하나밖에 없는 출입구의 철창으로 된 차단막이 스르르 내려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 어.. 닫히면 안 되는데 어떡하지? 그러다 차단막이 3분의 2까지 내려와 버렸다. 막히면 끝장난다는 생각에 인디아나 존스에 빙의된 듯 재빨리 땅바닥에 몸을 굴려 탈출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뭐야 저건 하고 쳐다보던 시선은 아랑곳 않고 빠른 선택과 재빨랐던 몸놀림에 흐뭇해하고 있는데 차단막 버튼이 쉽게 누를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는 걸 보고 에라이.



2. 술자리 뒷담화의 위험

회식이 있었다. 술을 제법 먹었고 2차까지 갔었던 것 같다. 뇌를 컨트롤하는 부분이 알콜로 마비됐으니 생각나는 대로 말해버리는 생무새가 되어 버렸다. 그러다 부장님 얘기가 나왔다. 부장님은 날 예전부터 아꼈고 그래서 이 회사까지 데려오신 분이다. 하지만 젊은 호기에 술기운까지 더해지니 못할 말이 없었다.  


"부장님은 날 건드리지 못해!"

 

정확히 다음날 오전 회의시간. 전체가 모인 자리에서 부장님이 "부장님이 날 건드리지 못한다고 얘기했다며?"라고 말씀하셨다. 어떤 생퀴가 12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꼰지른 것이다. 회의 시간 내내 머리를 숙이고 있었던 건 중력 때문만은 아니겠지요.



3. 병특 run

회사에서는 병역특례 제도를 이용해 인원을 뽑아 썼다. 개발 업무도 배우고 병역 혜택도 받으니 참 좋은 일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병특이 일도 잘하면 싼 인건비에 좋은 인력을 쓸 수 있어 역시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인생사  좋은 상황만 있는 건 아니다.

병특을 한 명 뽑았다. 첫날 밥 먹고 커피 마시러 가는데 대뜸 나더러 나이트는 다니냐고 물어본다. 응? 초면에? 내가 나이트 다니게 생겼나?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다. 키도 크고 머리도 염색하고 첫날부터 외제차를 몰고 오긴 했다. 양끼(?)가 아주 조금 있어 보이는 친구였다.

그리고 얼마 후 사건이 벌어졌다. 출근을 안 한 것이다. 일단 출근 안 한 것부터 큰일인데 병특도 군 제도의 일부라 이거 군대로 치면 탈영이나 마찬가지다. DP조 출동시켜? 전화도 안 받는다. 다음날 출근은 했다. 상태가 안 좋아 보인다. 아파서 응급실에 입원했단다. 그러나 살며시 풍기는 술냄새는 어쩔 것인가.

회사에서는 지금 가서 진단서를 떼어 오라고 했다. 아픈 척하며 나갔던 그 친구는 죄송하다는 문자만 전송하고 그 이후로 볼 수 없었다. 문자 끝에 자기 병특 관련 서류는 전부 파기해 달라는 첨언도 빼놓지 않았다.      



4. 젊음의 힘

회사에서 워크숍을 갔다. 회사생활 첫 워크숍이었다. 대부도인가 안면도인가 서쪽 바닷가, 많이들 가는 그런 곳에 갔다. 회의도 하고 바닷가도 거닐고 술도 먹고 재미있게 놀았던 것 같다. 다음날 올라오는데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횟집에 들렀다. 술 먹은 다음날 회를 먹다니 다들 비위도 좋았나 보다. 월요일에 출근하니 워크숍 갔던 인원들 회 먹고 배탈 나서 고생한 경험담을 들려준다. 딱 두명만 멀쩡했는데 회를 전혀 먹지 않은 사람과 나였다. 당시 20대 초반이었으니 횟감 속에 세균쯤 위액과 함께 소화시켰으리라. 바람만 불어도 아픈 40대는 그때의 건강함이 그립다.



5. 화이트 해커 경험

예전에는 고객사 서버에서 작업할 일이 있으면 방화벽을 열어줬다. 그러면 우리 회사에서 원격으로 고객사 서버에 접근할 수 있었다. 이렇게 일하면 서로서로 편한데 단점은 그만큼 보안에 취약해진다는 것이다. 고객사에서 마음껏 드나들라고 문을 열어 놓은 격이니 당연히 위험할 수밖에. 그래서 요즘은 이렇게 일 안 한다.

어쨌건 당시에는 그렇게 일을 많이 했다. 어느 날 회사에서 개인 서버에 접속해 작업을 하고 서버를 껐다.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영업팀에서 혹시 이 IP 쓰는 사람 있냐고 물어보러 왔다. 어? 그거 내 IP인데... 고객사에서 서버가 꺼져서 난리가 났는데 이 IP가 접속해서 껐다고 한다. 

원인을 파악해보니 고객사 프로젝트 진행하면서 방화벽을 열어줬고 프로젝트 끝나면 업체 담당자가 방화벽을 막아야 하는 게 그걸 안 한 거다. 내가 접속한 건 뚫려있던 고객사 서버였다. 평소 서버랑 환경이 다른데? 하고 생각했지 다른 서버에 접속했단 생각을 못했다. 결국 내가 끈 건 고객사 서버였던 것이고. 만약 해커가 접근했다면 서버 정보 다 털어가고 난리가 나고 뉴스에도 났을 일이다. 그날 담당자는 그룹사 회장님에게 불려 가 혼났다고 하고 나도 반성문 같은 사유서 한 장 제출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고객사의 보안 취약점을 찾아준 거고 보안에 대한 경종을 울려준 것인데 무료로 화이트 해커 역할을 해 줬음에도 상을 주지는 못할 망정.    



6. 분실의 순간

외근 가는데 팀장님이 편하고 빠르게 택시 타고 다녀오라고 법카를 주심. 분실.

부장님이 계약서 보내라고 했는데 등기 비용 아낀다고 일반 우편으로 보냄. 분실.



7. 퇴사 선물 아이팟

퇴사를 얼마 앞둔 어느 날. 경영지원 팀장님이 카드를 주면서 내 마음에 드는 mp3 기계를 하나 사 오라고 했다. 살게 마땅치 않으면 당시 유행했던 아이팟을 사 오라고 했다. 순간 직감했다. 나에게 줄 퇴사 선물이구나. 그 시절에 아이팟보다 괜찮은 mp3 기계가 있을 수 있나. 그냥 아이팟을 골랐다. 얼마 후 내 품에 안길 것을 상상하면서. 

팀장님에게 가져가니 '너 가져'가 아니라 주소를 주신다. 여기로 가져다주란다. 회사에서 멀지 않은 사무실에 배달을 하고 왔다. 아이팟아~~ 잘 가~멀리 안 나갈게~~ 다음에 보자.    



마무리할 때쯤 돼서 소소하지만 훈훈한 얘기로 전환



8. 당근이세요?

음악 회사에 다닐 때였다. 회사에는 CD가 많았고 단종되거나 국내에서 구할 수 없는 CD도 많았다. 그걸 고객들에게 신청받아 팔았다. 사겠다는 고객이 있으면 입금받고 택배로 보내줬다. 어떤 고객이 구매를 요청했는데 주소를 보니 회사 근처다. 종로 어디쯤이었던 듯. 그냥 가져다줄까? 고객 입장에선 빠르게 받을 수 있고, 회사 입장에서는 배송비도 아끼고. 고객에게 물어봤더니 바로 OK. 추운 겨울이었다. 추위를 뚫고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는데 고객이 CD를 받으러 왔다. 쇼핑백을 하나 건네주는데 안에 초콜릿이 가득하다. 고객도 직접 배달까지 해 준 게 고마웠나 보다. 회사에 복귀하니 부장님도 잘했다고 칭찬해 주신다. 이래저래 따뜻함이 느껴졌던 하루다.



9. 옛 동료의 안부 

 신입 개발자로 입사한 첫 회사에는 나보다 한 살 어리지만 3년 먼저 근무한 선배가 한 명 있었다. '선배님' 하고 따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존중해줬다. 좀 특이했고 나와 결이 잘 맞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직장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는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 서로 놀리고 까대며 점점 친해져 갔다. 어느 순간 회사가 어려워져 많은 사람이 퇴사했고 결국 그 친구와 나만 남았다. 힘들었지만 서로 의지할 수 있어서 끝까지 견뎠다.

시간이 흘러 내가 먼저 그 회사를 떠났고 그 친구도 얼마 후 이직을 했다. 서로 회사가 달라져도 가끔 연락도 하고 만나기도 하며 인연의 끈을 완전히 놓지는 않았는데 코로나가 찾아오고 인간관계에 큰 공을 들이지 않는 성격 탓에 제법 오랜 시간 연락이 끊겼다. 

그러다 어제 그 친구가 안부를 묻는 카톡을 보내왔다. 오랜만에 생사도 확인하고 또 오랜만에 예전처럼 서로 놀리다가 내년 초에 약속을 잡았다. 오랜 시간 연락하지 않아도 먼저 연락해주면 고맙지만 미안한 마음이 더 크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 잊지 않고 연락을 해 주나. 인생 헛 산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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