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장은 개발자 출신이 하면 안되나요?
몇 주 전 회사 이사님과 술자리를 가졌다. 나를 비롯한 우리 팀 몇몇이 자리 요청을 드렸고 흔쾌히 응해 주셨다. 임원분과의 술자리라니 사실 부담스러운 자리인데 회사도 오래 다니고 나이도 먹고 하다 보니 부담보다는 얻을 게 더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역시나 이런저런 좋은 말씀을 많이 들었다.
그중 내가 하소연하듯이 여쭤본 게 있다. 우리 회사는 IT 회사인데 부서장 직급을 전부 영업 직군에서 맡고 있다. 왜 회사는 부서장 자리에 개발자들은 앉히지 않고 영업 직군만 맡기는지 불만 섞인 질문들 던졌다. 그리곤 하시는 말씀이
"부서장은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고 그런 일은 영업 직군이 제일 잘하거든"
곧 백 프로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부서장은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한다. 그게 부서 사람일 수도 있고 회사 내 다른 부서의 사람일 수도 있으며 외부 사람일 수도 있다. 사람 만나는 걸 꺼리면 안 된다. 사람을 만나면 밥도 먹어야 하고 술도 자주 마셔야 한다. 부서를 대변하는 역할도 해야 하기에 말도 잘해야 한다. 이런 부분들은 개발자가 영업 직군을 따라갈 수가 없다.
부서의 비전을 제시하고 현재 제품을 잘 팔고 활용하려면 기술도 필요하다. 그래서 개발자가 부서장이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런 부분은 개발 팀장이 지원해주면 되지"
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부서장이 사람 만나는 일, 개발 팀장들이 기술적인 지원을 해 주면 된다. 그렇게 한 팀처럼 움직이며 부서를 끌어가면 된다. 부서장이 기술도 잘 알면 좋겠지만 다 할 수도 없고 할 필요도 없다. 물론 개발자들이라고 그런 거 못하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많은 개발자들이 사람 만나는 일, 만나서 술 먹는 일 이런 일들 좋아하지 않는다. 이건 분명 직업적 특성이다. 개발자도 협업은 필요하지만 대부분 자기 혼자만의 일하는 시간이 많다. 영업 직군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니 당연히 사람 만나는 걸 영업 직군을 따라갈 수 없다. 내가 부서장에 앉으면 잘할 수 있을까? 나 역시 혼자만의 시간이 좋은 전형적인 개발자의 특성을 갖고 있다.
지금보다 높은 자리에 가려면 그에 맞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개발자로서 부서장의 자리에 가려면 개발로 한 획을 긋는 것도 필요하지만 사람을 만나는 능력 또한 그에 못지않게 키워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난 그 자리까지 올라갈 자신이 없다.
최초의 질문에서 이사님의 마지막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모두가 높은 자리까지 갈 필요는 없다. 어떤 자리에는 맞는 사람이 있고 맞는 사람이 맡아서 끌어가면 된다. 후천적으로 능력을 길러서 그 자리에 올라갈 수도 있겠지만 선천적으로 다른 일을 더 잘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자리에서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며 그 사람을 밀어주면 된다. 그게 다 같이 잘되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