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냉면에 시원한 음주
여러분은 술을 좋아합니까? 대한민국의 음주문화는 전 세계에서 몇 위 정도가 될까? 뭐, 사람들이 바라보는 음주문화가 다 다르겠지만, 난 그래도 우리나라처럼 음주를 하기 좋은 환경을 가진 나라가 드물다고 생각한다. 물론, 유럽을 가면 맥주가 물보다 저렴한 국가들도 있기는 하지만, 불판에 고기를 구우면 소주 한 잔 하는 문화는 다른 나라에서는 굉장히 드물다고 한다. 이미 완성이 되어있는 음식과 간단히 반주할 수 있는 술들로 식사를 즐기는 게 보편적이라고 하는데, ‘저녁에 반주하는 느낌과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대한민국도 다른 나라들과 비슷하게 술과 함께 하기 좋은 음식들, 그리고 음식들과 잘 어울리는 주류들이 어느 정도 조합을 이루고 있는 것 같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치킨에 맥주, 삼겹살이나 회에는 소주, 파전에 막걸리. 그러나, 항상 술자리마다 이렇게 일반적이라고 생각했던 술과 안주의 조합을 깨부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꼭, 치킨과 소주를 같이 마시는 사람이 있고, 회랑 막걸리를 마시는 사람들, 그리고 파전에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한 번씩 등장하면 내가 평상시에 느끼던 사회적 합의가 붕괴되는 듯 한 느낌을 가지면서도, 내가 사회적인 약속에 새로운 도전을 못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대학교 시절, 자주 먹던 순댓국에 소주를 마시다 갑자기 냉면에 술을 한 잔 하고 싶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물냉면을 시켜 청담동 디자이너에 빙의해서 면을 세밀하게 잘라서 숟가락으로 떠먹는 안주를 만들어봤다. 근데, 생각보다 소주랑 너무 잘 어울려서 한동안 소주에 냉면을 여기저기 전파하고 다녔다. 작게 자른 물냉면이 마치 차가운 냉면 육수에 얇은 젤리들을 풀어놓은 느낌이라, 예상하고 있는 맛에 새로운 식감이 인상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돈이 없던 시절, 냉면이라는 안주는 자칫 호흡조절을 실패하는 순간 한 번에 수많은 양의 안주를 흡입할 가능성이 있는데, 짧게 자른 냉면은 그러한 대참사를 기존에 방지하는 아주 좋은 방지책이었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함께 냉면에 소주를 마시던 친구들과 몇 년 만에 모여서 술을 한 잔 기울인 적이 있었다. 그때의 기억이, 철 없이 먹고 마시던 날의 추억이 좋아서였을까? 우리는 오랜만에 만나, 냉면에 술 한잔 하자며 다 같이 냉면집에 모이게 되었다. 그러나, 대학교 시절 순댓국 집에서 잘게 잘게 잘러서 먹던 6000원짜리 물냉면이 아니라, 평양냉면집에서 1인 12000원짜리 평양냉면을 단 한 번도 자르지 않고 천천히 소주와 함께 느긋한 반주를 즐기게 되었다. 큰 사치는 아니었지만, 옛날 생각을 하며 냉면으로 사치스러운 느낌을 느끼며 술을 마시는 기분이 나름 흐뭇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심지어, 냉면에 소주를 너무 오래 마셔 더 이상 냉면육수 리필이 안된다고 말씀하시던 사장님께 죄송하다고 수육 대자를 주문할 때는 웃길 수 있지만, 성공한 것 같다는 이상한 자부심과 뿌듯함까지 들기도 했다. 물론, 냉면에 소주만 먹는 것이 음식점 입장으로써는 굉장히 짜증 나는 상황일 수도 있지만, 그냥 냉면과 함께 술을 마시던 옛날이야기에 빠지고 싶었던 시간이었다.
각자, 과거를 추억하는 나름의 이야기와 안주, 그리고 음식들이 있을 것이다. 난 이상하게 그 두 가지가 소주와 냉면이었던 것 같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내가 ‘이북사람이 아닐까?’ 의심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저렴하고 가성비 좋은 음식들이 뜨거운 음식이었던 그 시절, 뭔가 차가운 음식이라는 독특한 그 느낌에 냉면이라는 안주에 사랑을 느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먹고, 마시고, 놀러 다니는 걸 좋아하는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서, 좋은 추억이 있는 음식과 술과 그리고 그때 그 자리를 잘 기억하는 편이다. 여러분의 추억이 담긴 안주와 술이 있던 장소가 어디인가요?
그 장소가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혹시나 새로운 추억을 만들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기회가 될 때 꼭 냉면에 소주 한 잔 기울여 보기를 추천한다. 먼 훗날, 냉면과 소주와 함께 만들어진 새로운 추억이 새로운 안주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