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카메라 뒤에서... 上
“아이... 거 참... 왜 자꾸 펑크를 내는 거야? 이 바닥 시간이 생명인 거 몰라?”
“죄송해요. 아희가 이번에 컴백해서 좀 예민하다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니. 뭐 지만 예민한가? 나도 요즘 진짜 존나게 예민하거든. 위에서는 쪼지... 출연진은 하나같이 지랄...”
-활짝!-
“아희님. 준비하고 계셨어요?”
“어머. PD님. 너무 오랜만이에요.”
“그렇죠. 요즘 컴백하느라 바쁘셨다면서요?”
“아... 진짜 다이어트에 앨범준비에 진짜 죽는 줄 알았어요.”
멸망 이전의 세계에서 나는 한낱 방송국의 PD였다.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가장 높은 자리에 있었지만 톱스타들과 인기배우, 한류 K-pop 스타들의 뒤치다꺼리나 하는 그런 잔 신부름꾼 같은 존재. 가장 높은 자리라는 감투를 썼지만 윗대가리들 눈치를 보고 유명인들 갑질에 휘둘리는 업무 전선의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더러운 운명의 노동자.
“PD님. 요즘 힘든 일 있으세요?”
“네? 아닌데... 똑같은데?”
“진짜요? 요즘 많이 피곤하신가 보다. 조금 부으신 것 같아요. 원래 피곤할수록 몸 잘 챙겨야 한 대요.”
“아... 그런가? 아희님이 말하는데 그럼 신경 좀 써야겠네요.”
“언니. 진짜 관리해야 해요. 진짜 그러다 훅 가세요.”
“나 걱정해 주는 건 진짜 아희님 밖에 없다. 그럼 저는 지금 다시 준비 좀 하러 가야 해서... 잘 준비하고 좀 있다 봐요. 파이팅!”
“파이팅!”
-끼이이익.-
“하아...”
“PD님. 일단 촬영장 가시죠.”
“진짜 더러워서 못해먹겠네.”
연예계가 더럽다고? 방송국 놈들이 쳐 죽일 놈이라고? 아니. 세상은 어딜 가나 명확한 힘의 논리에 귀속되어 있었다. 사회생활을 잘하던 못 하던 쓰레기들은 존재했고, 세상은 생각보다 그 얄미운 쓰레기들을 빨리 판별해내지 못했다.
“큐!”
-딱!-
“안녕하세요. 이번 주 뮤직 온 더 보드의 MC를 맡은 블링블링 아희입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기싸움한답시고 사람 심기를 뒤집어놓은 년이 가증스럽게도 카메라 앞에서 온갖 상큼한 척을 하고 있었다. 세트장 뒤에서 담배 피우지 말라고 그렇게 말해도 줄담배를 물고 전자담배까지 무는 그 모습을 생각하자 괜히 또 뒷목이 뻐근하게 당겼다.
“PD님. 여기 커피 드세요.”
“땡큐. 희정.”
“얼마쯤 보세요?”
“뭐가?”
“아시잖아요.”
“글세... 예전에는 대충 감이 왔는데 요즘은 하도 여우 같은 것들이 많아서 잘 모르겠어.”
우리는 남몰래 그런 내기를 했다. 누가 먼저 이 바닥에서 사라질지. 누가 과연 저 더러운 가면을 가장 먼저 대중에게 들키게 될지. 누군가의 몰락을 보며 희열을 느끼는 악취미라 평할 수도 있겠지만 가면 뒤의 그 모습을 본 우리들로써는 앞뒤가 다른 자들이 승승장구하는 모습이 그리 달갑지 않았다.
「 평소정상인 : 살다 살다 저런 라이브는 처음 들어본다. 」
「 djjssep : 언제부터 가수가 노래는 안 하고 춤만 췄냐 그냥 댄싱 프로를 나가라 」
「 소주먹고기절 : 아니 내 알고리즘 왜 이래... 보기 싫다니까 」
「 jellyfish5541 : 너무 크게 웃어서 지하철에서 쪽팔렸네 」
실력에 비해 운이 좋아 세상에 빛을 발한 친구들은 금세 그 밑천을 드러냈고, 꿈을 향해 나아가는 희망찬 가사에 사람들은 냉정한 현실의 평가를 내놓았다.
“그쪽은 어때?”
“뭐... 크게 신경 안 쓰더라고.”
“그래? 진짜 요즘 애들 대단하기는 하네.”
“뭐... 최근에 병원까지 다닌다고는 하는데... 막상 얘기해 보면 아예 신경을 안 쓰는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어.”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갔지만 그 말 위에 탄 자들의 이야기에는 대부분 출처가 없었다. 대부분이 책임 없는 쾌락일 뿐 그 누구도 이야기에 대한 책임을 지려는 사람은 없었다.
“아희님. 준비되면 말씀해 주세요.”
“...”
“아희님?”
“....”
평상시 행실에 비해 그렇게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못하던 이들은 자신을 비추는 스포트라이트가 사라지고 나서야 밝은 빛 뒤에서 사람들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매일이 빛나는 삶을 산 사람들이기에 타인의 시선 따위를 볼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의 표정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화면에 잡히는지가 더 중요한 직업이니까.
“감독님. 오늘 아희가 좀 컨디션이 안 좋아서...”
“아... 그럼 뭐 어떻게 할까요?”
“혹시 조금만 쉬고 진행할 수 있을까요?”
“하아... 매니저님. 소속사 가수 챙기는 건 알겠는데 저희도 좀 봐주세요. 사정없는 사람 없고 여기도 다 가정이 있어요. 지금 계속 딜레이 되잖아요.”
“죄송합니다. 제가 최대한 잘 케어해서...”
싫은 소리를 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 바닥에 오래 있다 보면 스트레스에 절여지는 건 아주 당연한 기본값이었다. 매일매일이 변수의 연속이었고 예상시간 내에 일을 끝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과도 비슷했다.
“하아... 진짜 대가리 터지겠네.”
“아직도 안 되겠대요?”
“네. 조금만 더...”
“지금 연락 가능한 사람 누가 있지?”
“감독님! 잠시만요!”
정말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우리는 결국 우리 손으로 그 사람이 간신히 잡고 있던 그 동아줄을 끊어버렸다. 우리까지 떨어지지 않기 위해. 우리까지 침몰하지 않기 위해.
멸망의 여신들 _ 웹소설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