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둘은 손가락 하나 꿈쩍하지 못했지만 동공은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이번에 배합한 이 약품은 기존의 마약과는 훨씬 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정신의 배터리가 방전되었지만 육체의 배터리가 남아있는 상황에서 일어나는 현상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몽유병이다. 이번에 새롭게 만든 이 약은 정확하게 그와 반대되는 현상을 만들었다.
“가위눌린 것 같은 이 기분. 참 신기하죠? 뇌는 깨어있는데 몸은 움직이지 않는 느낌. 움직이고 싶은데 움직일 수 없는 느낌. 이게 새로운 세대를 이끌어갈 저희의 기술력입니다. 미구엘. 당신은 좋은 파트너가 될 수도 있었지만 시대의 앞에서 당신은 그저 지나가는 한 점에 불과했던 것 같습니다.”
짜릿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알려서도 안 되는 어둠의 세계의 정점. 그 자리를 대체했다는 걸 어떻게든 공표하고 싶었는데 제일 그 말을 들려주고 싶었던 두 남자가 내 앞에 서있었다.
“조금만 있으면 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될 거예요.”
이 약의 묘미는 지금부터 시작되었다. 뇌는 깨있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는 마비현상은 사람들에게 각자의 주마등을 스쳐 지나가게 했다. 어딘가에 떨어져 죽는 것도 아닌, 누군가의 칼에 찔려 죽는 것도 아닌 돌이 되어 죽는 그 아찔한 공포. 그 공포에서 사람들은 긴 시간 동안 주마등을 느끼며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장면들을 바라보았다.
“궁금하지 않아요? 이 약의 이름이?”
“으...으...”
“야... 역시 가브리엘 형님. 아니. 우리 스티브. 정말 대단합니다. 벌써 마비에서 일어나시다니. 벌써 주마등을 다 보고 오셨나 봐요.”
“너... 이 새끼. 이...”
“정말 대단하시단 말이야. 약도 그렇게 한 번에 딱 끊으셨다더니. 다른 형들이랑 누나들은 다 병신이나 폐인이 됐는데.”
-푹!-
얼마나 강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는지 그냥 한 번 시험해보고 싶었다.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감정이 들수록 더 선명한 주마등을 느낄 테니 형님도 나쁘지만은 아닌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어떤 장면을 보게 될지는 궁금해서 그런지 그의 허벅지에 칼을 쑤셔 넣지 않을 수 없었다.
“이래도 살아나시면 제가 진짜로 살려드릴게요. 정말 우리 형님 대단하시네. 괜히 아버지가 자신을 이을 메시아로 형님을 찍은 게 아니라니깐...”
“으...으...”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아... 그래. 맞아. 이 약의 이름은 ‘카페인’이에요. 진짜 기가 막히지 않아요?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한 번씩은 마시는 그 카페인. 제 포부를 담은 네이밍입니다. 전 인류를 각성시키기 위하 첫 번째 포석이 바로 이 카페인이 될 거예요. 어떻습니까? 형님. 네?”
“이런... 미친 새끼...”
“이야... 역시 대단하십니다. 카페인마저 이겨내시다니. 난 정말 형님이 존경스럽습니다.”
-탕!-
전대 가브리엘이자 가장 힘이 좋고, 의지가 강했던 스티브를 꺾으려면 조금 더 강력한 시각적 요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털썩.-
머리에 구멍이 난 미구엘은 스티브의 앞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형님. 꼭 이겨내 보이세요. 이 두려움을. 이 분노를.”
지금껏 무시당했던 과거의 억눌림 때문이었을까. 그를 죽이기 전에 최대한 괴롭히며 장난을 치다가 그 숨을 끊어버리고 싶었다.
“더러운 핏줄에서 태어난 쓰레기 자식.”
“아버지의 욕정을 받은 구역질 나는 어미의 몸에서 태어난 열매가 왜 우리와 같은 공간에서 살아야 하지?”
“더러운 몸종의 자식과 함께 식사를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버지의 뜻으로 그와 함께 살고 있기는 하나 내가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는 순간이 되면 꼭 저 아이를 내가 보는 앞에서 불태워 죽일 것이다.”
수도 없이 그의 입에서 나왔던 이야기들이다. 욕설과 비방을 넘어서 미래에 날 죽이겠다는 살인예고까지. 난 그 추악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루하루를 버텨왔다. 그래서인가 아버지의 자리를 차지했을 때보다 지금 이 순간에 터지는 도파민이 더 달고 맛있는 것 같았다.
“더러운... 잡종새끼가...”
“와... 정말 근성 하나는 인정합니다. 이 순간에도 그런 말을 하다니...”
“너 정말 모르는구나... 덕분에 확실하게 기억이 났어. 네 어미라는 년... 고작 만 달러에 자식까지 팔아버린 그년.”
“뭐라고?”
“그 년이 돈... 때문에 널 판 것 같아? 그년이 널 팔아치운 건 순전히 약 때문이야...”
카페인에 취기에서 깨어나는 스티브의 말을 조금씩 더 명확해져 갔다. 말도 정신도 조금씩 맑아져 가는 그였다. 그리고, 그의 상태를 보며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가 말하는 게 거짓이 아님을. 그가 주마등에서 봤던 그 장면들 속에 나를 낳아준 생모가 있음이 분명했다. 살면서 그녀가 궁금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듣게 된 그녀의 존재에 순간 마음이 동요했다. 불안함을 증폭시키는 ‘혹시나’가 ‘역시나’가 될 것 같아서.
“너도 지금쯤 알고 대충 눈치를 챘을 텐데... 네 어미에 대한 이야기들이...”
“약에 취하게 한 노리개가 내 엄마였어?”
집에 있는 시녀들 중 대부분이 아버지의 성적 도구였다. 신앙심을 더 깊이 받기 위해 속에 있는 욕정을 계속해서 뱉어내겠다는 그 더러운 거짓말에도 우리는 아버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약에 취해있던 수많은 시녀들이 약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버지의 손을 붙잡았다. 아버지는 약으로 그런 시녀들의 과거를 지웠고, 기억을 잃은 그들을 새 삶을 받은 것 마냥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잘 아네. 많이 봤을 거 아냐? 출신이 비슷해서 그런지 심지어 그런 종자들이랑 친했잖아... 클라라? 네가 지옥으로 보낸 그 썅년...”
“개소리하지 마.”
“약에 취해 평생을 절절거리다 과거의 기억을 모두 삭제당했으면서도 너를 챙기는 모습을 보며 홍연이라는 게 진짜 있나 싶었어. 네가 그년이 가져다주는 빵이랑 커피를 먹는 모습을 보고 눈깔을 뽑아도 짐승은 지 새끼를 알아보는구나 싶었다.”
“시발. 진짜 빛의 악마였네. 쓰레기 같은 아버지. 그렇게까지 나를 무너뜨리고 싶었나? 그 어린애가 쓰러져가는 걸 그렇게까지 보고 싶었던 건가?”
“너 같은 새끼들 중에 불에 소각된 놈들만 몇인데. 네까짓 거 쓰러지는 거 보려고 그러셨겠냐?”
“그럼 왜?”
“그야. 네 어미가 널 임신했을 때부터 약을 했으니까. 넌 마약에 내성뿐 아니라 실험할 가치가 있었으니까.”
“크크크크. 진짜 실험용 파리새끼였네.”
가브리엘은 조금씩 몸이 깨는 듯 보였다. 손가락을 몰래몰래 움직이며 내게 다가오려는 그의 꼼지락거림이 참 가엽게 느껴졌다. 갓 태어난 기린이 파리 하나 잡아보려고 비틀거리는 꼴 같다나. 그의 말에 정신이 흐릿해졌지만 그래도 방심은 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이 개 같은 인간을 더 잔인하게 죽일지 생각에 빠진 그때 아주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다렸나 봐?”
“어. 잘 왔어. 벨제붑.”
“어때? 나한테 막 몸을 넘기고 싶어? 나한테 몸을 넘기면 저 쓰레기한테 최악의 고통을 선사해 줄 수 있는데?”
“아니. 괜찮아. 난 확실히 너란 놈이랑 잘 어울리는 것 같아.”
“뭐야? 갑자기?”
“너도 사탄보다 유명해지려고 엄청 노력하잖아. 나도 노력하려고. 어떻게 하면 더 나쁜 놈이 될 수 있는지를...”
-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
[ 카페인의 반란 ] -> 웹소설 링크
https://www.blice.co.kr/web/detail.kt?novelId=100096https://www.blice.co.kr/web/detail.kt?novelId=1000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