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태풍 上
-휘이이이이이잉.-
-덜컹! 덜컹!-
-쾅! 쾅!-
-삐융! 삐융!-
한 발만 늦었어도 바람에 날려 난리부르스를 치는 저 바깥의 모든 것과 함께 거리를 나뒹굴고 있을 뻔했다.
“아! 잠시만요! 스쿠터가...”
-휘이이이이잉!-
“잠시만요!”
“...”
바깥에 들려오는 바람소리는 예삿 바람소리가 아니었다. 산들산들 불어오는 봄바람 소리가 아니라 거대한 대서사시의 프롤로그와 같이 옅지만 강렬한 소리들이 창문을 너머 귓가에 꽂혀 들어왔다.
“아니. 왜요? 아직 태풍까지...”
-우당탕! 쾅! 쾅!-
“벌써 시작됐어요.”
-텅!-
-쨍그랑!-
길거리 곳곳에 배치되어 있던 입간판들과 화분들이 쓰러지며 다들 각각의 파열음을 내며 거리를 나뒹굴었다.
“지금 나가면 큰일 나요.”
“아... 스쿠터 어떻게 하지...”
“나중에 보험 알아봐요. 다치고 나서 스쿠터 구하면 뭐해요?”
“아...”
생각보다 단순한 사람인 것 같았다. 그는 아쉽다는 듯 한숨을 쉬며 다시 이전에 앉았던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여전히 헬멧도 벗지 않는 그를 보며 좀 이상한 사람이 아닐까 싶었지만 그냥 태풍이 빨리 끝났으면 하는 생각밖에 없었다. 호의로 모르는 사람을 집안에 들였지만 지금 이 순간이 뻘쭘하고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휘이이이이잉.-
-우르르르르.-
-쾅! 쾅!-
-번쩍!-
“아주 난리가 났네.”
단순한 태풍이 아닌 느낌이었다. 바람소리는 이전보다 훨씬 더 맹렬해졌고 조금씩 그 존재감을 알리는 빗소리와 달리 이번 태풍의 음성은 시작부터 엄청난 크기의 빗소리를 세상에 퍼뜨렸다.
-번쩍!-
-콰콰콰쾅!-
“깜짝이야!”
헬멧을 쓰고 있던 배달원은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살짝 일어나기까지 하는 듯 보였다. 그 모습에 이 배달원이 다른 배달원들과 왜 그렇게 이질감이 들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여자였구나.’
당연스럽게 배달원들은 모두 남자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선입견이었지만 그냥 너무도 당연하게 박혀있는 이미지가 그랬다. 배달원 앞에서 치킨을 뜯기도 그랬고 뭔가 다른 일을 하기도 그랬다. 방에 들어가 신경 쓰지 않고 할 일을 하자니 잘 알지도 못하는 배달원을 집에 두고 한눈을 팔기도 그랬고 계속해서 우리는 거실에서 어색한 시간을 공유하고 있었다.
-꼬르륵.-
참 애석하게도 거칠게 불어오는 태풍소리는 꼭 이런 소리를 집어삼키지 못했다. 밥을 먹다 말아서 그런지 이전보다 배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훨씬 더 크게 들려왔다.
-꼬르륵.-
어이없게 남의 집에 표류된 그 여자도 저녁을 먹지 못한 듯했다. 혼자서 치킨 한 마리를 다 먹으려 했는데 어이없게 처음 보는 사람과 식사를 해야 할 것 같았다.
“흠... 저... 같이 식사하실래요?”
“네?”
“아니. 배고프신 것 같아서요.”
“아... 그래도 될까요?”
어지간하면 다들 한 번쯤은 거절을 하는데 이 사람은 확실히 조금 특이한 사람 같았다. 바로 미끼를 덥석 물다니. 물고기였으면 아마 제일 먼저 인간의 손에 낚였을 것 같은 그런 타입의 사람인 듯했다.
“감사합니다.”
“아... 네. 맛있게 드세요.”
당황스러웠다. 지금 이렇게 모르는 여자와 내 집에서 합석을 하게 된 것도. 제 손으로 가져온 치킨을 나와 함께 먹고 있는 이 여자도 참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이 여자의 얼굴이었다.
“참나... 또 늦는다고?”
“네. 죄송합니다.”
“네가 죄송할 게 뭐가 있어? 죄송해도 시간 약속 개같이 아는 아는 걔들이 죄송해야지.”
“일단 다시 연락해 보겠습니다.”
“하여간... 그렇게 이쁘지도 않은 것들이 꼭 시간 약속은 더 안 지킨단 말이야. 그거 조금 더 늦게 오면 지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툭하면 시간펑크를 내던 연예인들과 모델들. 다 저마다의 사정이 있었지만 항상 조급하고 미안해하는 건 매니저들과 조연출들이었지. 연예인과 감독이 아니었다.
‘뒤지게 이쁘네.’
일을 하면서 꽤나 이쁜 사람들을 많이 봤지만 그래도 이렇게 수수하고 잡티 없이 이쁜 사람은 오랜만이었다. 분명, 이 일이 아니더라도 꽤나 많은 유혹들과 제안들이 있었을 건데 굳이 잘 나가지도 않는 스쿠터를 타면서 이 일을 하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리나 날개 드세요.”
“아... 괜찮아요. 저 원래 퍽살 좋아해서요.”
다행이다. 그래도 양심 있게 퍽살을 고르기는 하는구나. 남의 집에 와서 꽁으로 밥까지 얻어먹으면서 다리를 탐했다면 그건 강도나 다름없었지만 그래도 이 사람은 양반은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가 그녀는 밥상머리에서 말 한마디를 하지 않았다. 자그마한 소리 하나 내지 않는 과거 성균관의 유생들처럼 말이다.
“크흠...”
사람들과 부대끼는 것에 질릴 대로 질린 나였지만 그래도 밥상머리에서 아무 말 없이 그저 밥만 먹는 건 오히려 체기를 불러일으키는 느낌이었다. 할 수 없이 TV에 연결된 노트북으로 이전에 검색하고 있던 갓드레스에 대한 뉴스들을 다시 찾아보기 시작했다.
멸망의 여신들 _ 웹소설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