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인의 반란

14-2

by 심색필 SSF

“야... 이제는 진짜 신이랑 다를 바 없네?”

“...”

“하... 또 사람들 앞이라고 대꾸도 안 해주는구먼. 이것 참 악마로 살기 서러워서. 다른 누구보다 내가 너를 제일 많이 도와주는데 이렇게 찬밥신세로 날 남겨놔도 괜찮은 거야? 인간들보다 내가 훨씬 더 너의 마음을 잘 알아주잖아.”

“그럼 이만 들어가 볼 테니 다들 수고해 주세요.”


벨제붑은 사람들 앞에서 내가 본인한테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툭하면 모습을 드러내 옆에서 깐죽거렸다. 정말 짜증이 날 때도 많았지만 그래도 이 녀석의 말대로 세상에서 내 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는 게 바로 벨제붑이었다.


“진짜 다 좋은데 지금 너무 숫자에 빠지려는 경향이 있어. 내가 항상 말했잖아. 숫자, 수학, 과학, 물리 이런 거는 다 너희의 입장에서 떠드는 이야기라니깐. 이 거대한 시간과 공간의 우주를 판독하고 판별하는 언어 중 하나가 숫자일 뿐 거기에 매몰되서는 안된다니까.”

“...”

“하... 운전기사 있다고 또 입 닫는 거야?”

“....”

“진짜 너무하네. 지금껏 이렇게 성장할 수 있던 것도 다 내덕인데 좀 이제 또 하나의 존재로써 날 인정해 주면 안 되나? 사람들한테 말해. 대재앙의 상징인 이 벨제붑님이 바로 네 옆에 있다고. 당신들같이 미천한 인간들은 감히 보지 못하는 역사상 최대의 이 악신을 등에 업은 자가 바로 너라고.”


주절주절 떠드는 녀석 때문에 심심할 틈은 없었다. 문제는 정말 쉴 새 없이 떠드는 것이 문제였다. 아주 정신이 나갈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녀석의 소리가 듣기 싫을 때면 나는 항상 그걸 마셨다.


“저 커피 한잔만 부탁드릴게요.”

“네. 알겠습니다. 이사장님.”


고소한 향이 일어나는 커피를 한 입 마시고 나면 어둠 속에서 뱀의 혀를 날름거리며 떠들어대는 녀석의 존재가 점점 희미하게 사라져 갔다.


“야... 진짜 너 이러기야?”

“...”

“와... 이거 진짜. 어떻게 사람이 이럴 수가 있지? 이렇게 기쁜 날은 나와 함께 이 도파민을 나눠야 하는 거 아니야? 야. 이 개새끼야! 대답 좀 해봐! 답답하게 그러지만 말고.”


수천 년을 살았다면 다들 어느 정도 해탈의 경지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수백 년에 한 번씩 사악한 인간과 동화가 되는 이 악귀는 쉴 새 없이 떠드는 걸 더 좋아했다.


“감사합니다. 오늘 커피 향이 더 훌륭하네요.”

“에티오피아에서 직수입한 원두로 만든 커피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가... 정말 훨씬 더 향이 좋네요.”


하얀색 연기를 모락모락 피어올리는 새까만 커피를 보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반면에 벨제붑은 커피를 마시지 말라고 옆에서 아주 난리를 치고 있었다.


“야! 자기 전에 마셔. 이 미친새끼야. 너 그것도 나 때문에 알게 된거면서... 야! 야! 이런 미친... 내 몸에서 태어난 걸로 차나 끓여 마시면 염치가 있어...”

“음... 진짜 맛있네.”

“...”


커피 한 입에 녀석의 말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녀석의 몸에서 기원된 커피. 처음에는 그냥 각성한 채 몸의 긴장이 풀리고 정신이 또렷해지는 줄만 알았지만 커피는 봉인된 벨제붑의 원념이 만들어낸 열매였다.


“끄아아아아악! 케인! 그만! 이제 그만!”

“왜요? 형님? 형님같이 의지가 강한 자들이 있어야 우리 실험이 더 효과가 있다니깐요.”


벨제붑은 둘째 형 스티브를 묶어놓고 여러 가지 실험을 하자고 제안했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빛의 계도는 불온건한 자들을 심판하는 데 있어 말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가져다주었지만 너무 단편성으로 끝난다는 것이 아쉬웠다. 그에 비해 이 하얀 가루와 피의 실험은 항상 새로운 자극을 가져다주었다.


“벨제붑. 진짜로 네 말이 맞네?”

“말했잖아. 너는 악마의 재능이 있는 놈이라고.”


어머니. 아니. 클라라의 뱃속에서부터 마약에 찌들어있던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약에 대한 부작용에 내성이 강했다. 쉽게 정신을 잃지도 쉽사리 감각이 격하게 전이되지도 않았다.


“이걸 넌 어떻게 알고 있던 거야?”

“수천 년 전에 너랑 비슷한 인간이 있었거든.”


상온에서 내 피와 약이 결합하고 함께 반응했을 때 일어나는 화학반응은 실로 충격이었다. 약으로 인해 퍼지는 다양한 효과들을 수십, 수백 배는 더 강화시켰다. 환각을 보는 게 아니라 잠시나마 다른 세계에 다녀왔다고 느끼게 만들 정도로 그들은 내 피와 결합된 하얀 약들에 심한 후유증을 느꼈다.


“케인! 제발! 네 피가 필요해! 케인!”


그렇게 심지가 굳은 스티브도 내 피와 섞인 약에 완전히 노예가 되어 있었다. 아니. 노예라기보다는 거의 좀비에 가까웠다. 심하게 폭력적으로 변하고 어떻게든 피를 갈구했다. 처음에는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데 대략 2~3시간이면 충분했지만 완전히 중독된 그가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데는 이틀 반나절이 걸렸다.


“어떻게 보십니까? 박사님.”

“아... 이런 건 처음이네요. 이사장님.”

“어때요? 의학적으로 잘 사용해 볼 수 있겠습니까?”

“네. 조금만 잘 사용하면 정말 영생에 가까워질 수 있는 신약이 탄생할 수 있습니다.”

“그래요? 저는 무기로 만들면 어떨까 했는데...”

“그게 무슨...”

“원래 뭐든지 전쟁물자가 되면 돈이 되잖습니까?”

“이사장님...”

“농담입니다. 농담. 혹시나 박사님이 제 말에 동조할까 봐 순간 걱정했습니다.”

“하하하. 생각보다 짓궂은 면이 있으시군요. 이사장님.”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게 재단에서 대학을 지원하기 시작한 첫 프로젝트였다. 신약을 핑계로 더 강한 자극을 펌프질 하는 그런 것들. 세계를 멸망에 다다르게 하기 위한 새로운 신약 프로젝트. 그러나, 피와 결합된 약들도 연구실의 내용들도 결국 한계가 있었다.


“확실히 각성효과의 전염성도 낮고, 효과의 지속시간도 짧긴 하네요.”

“하아... 역시 신의 영역은 다가갈 수 없는 건가요?”

“네. 신의 영역이라기 보다는 악마의 영역이지만 실험체들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죽는 걸 보니 뭔가 운명과는 거리가 먼 프로젝트인가 싶기도 하네요.”

“박사님은 과학자면서 운명을 믿으시네요.”

“원래 우주학자들이 신을 더 많이 믿습니다. 이 세상은 도저히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거든요.”

벨제붑이 항상 내게 하던 말이었다.


“너희의 언어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그게 맞다고 생각하지 마. 삼라만상에 퍼진 모든 일은 너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면서도 단순하니까. 자물쇠로 문이 잠겨있다고 열쇠를 찾거나 번호를 찾는 건 지식의 틀 안에 너희를 가두는 행동이라니깐. 문을 없애면 길은 다시 나오게 되어있어.”


미친 소리 같았지만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었다. 그리고, 벨제붑은 항상 내게 속삭였다.


“커피의 기원을 찾아. 내게서 떨어져 나간 원념의 열매. 이 세상의 모든 인간에게 매혹을 퍼뜨린 나의 부산물들의 시초와 이야기를 찾게 되면 자연스럽게 일이 풀리게 될 거야.”

“또 그 소리냐? 커피의 시초.”

“장담하는데 지금 네가 다가가지 못하는 그 한 걸음. 보이지 않는 유리문 앞에서 계속해서 헤매는 듯한 그 답답한 감정에서 완전히 해방시켜 줄게. 문을 열라고 하지 마. 없애면 그만이야.”


진도는 나가지 않고, 다른 차도도 보이지 않는 그런 상황에서 벨제붑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돈은 넘쳐났고 굳이 연구자금을 아낄 필요도 없었다. 성공에 대한 의욕이 강한 자들. 자신의 분야에 대한 욕심이 높은 자들에게 투자하는 건 꽤나 우리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학장님.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아... 여기 말씀하신 대로 박사님을 모셔왔습니다. 박사님 인사드리세요. 이전부터 말씀드린 케인 리 이사장님입니다.”


몇 백 년을 살기라도 한 듯 창백한 피부에 백발의 머리와 수염. 아직 오십도 되지 않은 사람의 행색이라고 하기에는 눈에 띄는 몰골이 참 마음에 들었다.


“안녕하세요. 고고학을 담당하고 있는 니콜라스 박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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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인의 반란 ] -> 웹소설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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