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대로 쓰는 그 다음 이야기...
요리와 미나토는 산 하나를 뒤집을 만큼 거대했던 폭풍이 지나간 그날 결국 그들은 소원을 이루어냈다. 그들은 다시 태어났으면서 다시 태어나지 않았다. 둘은 해가 지지 않고 비가 내리지 않는 세상에서 나이도 들지 않은 채 그렇게 그들만의 세상을 살아갔다. 언젠가는 그들에게 올 ‘빅 크런치’를 기다리며...
그러나, 세상은 나이를 먹어갔고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요리와 미나토는 스스로들만 시간을 비껴나가 성숙하지 못하는 자신들이 괴로웠다. 둘만 있으면 우주가 팽창해서 폭발하는 그 순간까지, 아무리 긴 시간이라도 즐겁게 그 순간들을 감내할 수 있으리라 믿었지만 그들은 그러지 못했다. 고작 10년의 시간에도 그들은 서서히 말라 비틀어져 가고 있었다.
“엄마가 미안해.”
“아빠가 미안해.”
“선생님이 미안해.”
매년 폭풍이 치던 그 시기만 되면 사람들은 요리와 미나토를 찾아왔다. 첫해의 절절한 슬픔과 아픔은 온 데 간 데 사라진 채 이제 그들을 찾는 건 그저 연례행사가 되었다. 그들의 죽음을 기리는 마을의 행사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요리와 미나토의 꿈을 펼치던 그 작은 기차칸에 모든 동급생들과 선생님들은 찾아왔고 떠나갔다. 자신만의 꿈으로 향해 달려갈 수 있는 그들만의 기차를 타러.
“난 아직도 돼지의 뇌에서 벗어나지 못했나 봐.”
“왜? 넌 정상이야. 절대 이상하지 않아.”
“난 인간들이 이해가 가지 않아.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인간의 뇌가 들어있는 저 사람들이 이해가 가지 않아.”
인간이 아닌 새로운 무언가로 그 자리에서 새롭게 태어난 그들이었지만 그들은 인간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저 육체라는 껍데기가 없는 한낯 아이의 정신과 규격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성숙하지 못한 두 영혼은 그렇게 쓰러진 기차에 묶여 점점 혼탁해져 갔다. 아무리 맑은 물이라도 고여있다면 결국 초록 이끼가 끼듯이 그들의 마음속에 거의 사라져 있던 멍에는 다시금 그 색을 전염시켜 갔다.
“왜 저들은 행복해야 하지?”
“어?”
“그렇잖아. 우리는 호색한 아버지의 방탄에 밀린 자식들이야. 너희 아버지는 죽어서 상관없겠지만 나는 아니라고.”
요리의 아버지는 산사태의 초석이 된 아들의 부재를 여자로 풀었다. 슬픔을 잊으려고 여색에 빠진 것인지 여색에 빠지기 위한 핑계로 아들을 사용한 건지 헷갈릴 만큼.
“맞아. 우리가 이렇게 된 건 우리가 잘못이 있어서가 아니야. 세상이 잘 못 한 거지. 생각 없는 손가락질 한번.
그저 유희와 쾌락을 위해 지껄인 그 혀놀림 한 번이 우리를 이렇게 만든 거야.”
아버지가 더러운 길에 빠지고 분개심을 쉽사리 덜지 못하는 요리만큼이나 미나토의 분노도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세상이 그를 그렇게 만들고 있었다.
“남자 잡아먹는 요괴 할망구.”
“남편은 럭비 선수였고 아들도 멀쩡했다며?”
“싱글맘이 괜히 싱글맘이겠어? 저런 여자는 소용돌이 같은 여자야. 남자들을 모두 깊은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 결국 질식시키는 그런 여자.”
남편을 잃고 아들을 잃은 미나토의 엄마는 살아있음에도 살아있지 못했다. 세상이 가리키는 그 손가락질을 보지 않으려 그녀는 스스로 시력을 망가뜨리고 있었고, 세상이 수군 되는 소리가 듣기 싫어 귀를 잃어가고 있었다. 점점 눈도 귀도 들리지 않는 미나토의 엄마를 사람들은 이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요괴 퀴리다. 요괴 퀴리.”
“미나토랑 요리를 잡아먹은 요괴 퀴리.”
그리고, 그 요괴퀴리라는 말을 입에 담은 붉은색 운동복의 그 자식은 결국 가지 말아야 할 곳에서 담지 말아야 할 말을 입에 담았다.
“타로 군. 여기 너무 무서워.”
“나나짱. 이게 뭐가 무서워. 원래 이런데가 스릴 넘치는 곳이라니까. 안 그래? 지로?”
매일같이 요리를 괴롭히던 그 아이였다. 그렇게 아이들을 괴롭혔던 그 아이는 도쿄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 꽤나 밝은 미래를 그렸지만 결국 직장 내 따돌림과 왕따를 주동하다 회사에서 잘리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 옆에서 그의 부하처럼 졸졸 거리던 약삭빠른 녀석들은 타로가 시골에 오자 다시 망나니처럼 동네를 누비기 시작했다. 어렸을 적 조용히 미나토 옆에서 책일 읽고 선생님에게 미나토를 모함하던 나나도 결국 별 볼 일 없이 자라다 타로의 귀향에 탑승해 매일같이 멍청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설마 쫄은 건 아니지? 나나짱?”
“쫄기는. 내가 쫄기는 왜 쫄아? 그 바보 같은 선생도 파면시킨 게 나야."
아이들은 그런 사건을 냈음에도 선생님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그들에게 있어 선생님도 요리도 그저 장난감에 불과했다. 살아 숨 쉬는 장난감. 아무리 애처롭게 울고 있어도 멀리서 돌을 던져 맞추는 놀이를 해도 되는 그런 장난감. 그렇다. 그때 고양이를 죽인 건 타로와 아이들이었다.
“야. 요리! 미나토! 사실 너희 그때 서로 좋아했지? 너희 러브러브 맞잖아?”
술에 잔뜩 취한 타로와 그의 친구들은 먼지가 쌓이고 이끼가 덮인 그들의 추모석과 촛불, 비석 위로 오줌을 갈기며 조롱 섞인 말들을 던져내기 시작했다. 자신의 용기를 증명하기 위해 누가 누가 더 더러운 말을 더 가감 없이 내뱉는지 대결이라도 하듯 그들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아... 맥주 더 없어?”
“다 먹었네.”
“그러니까 이 바보새끼들아. 맥주 더 사오랬잖아. 빨리 가서 사 와.”
“지금?”
“어. 지금!”
나이가 먹고 성인이 되었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어린아이 때의 그 망나니 같은 모습을 벗어나지 못했다. 여전히 사람을 괴롭혔고 여전히 죄책감이 없었다. 친구들을 모두 보내고 나나와 둘만 남은 타로는 반쯤 풀린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나짱.”
“응?”
“우리 저기서 해볼래?”
“어? 미쳤어?”
“왜? 재밌잖아.”
“돌았나 봐.”
“왜? 한 번만 해보자. 내 소원이야. 저기서 나나짱이 벗으면 정말 섹시할 것 같단 말이야.”
실랑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비가 내리지 않아 구정물이 튀지 않았을 뿐 나나의 마음도 시커먼 건 매한가지였다. 그렇게 불 하나 들어오지 않는 기차칸으로 들어간 나나와 타로는 천천히 입을 맞추고 체온을 높여가기 시작했다.
-부스럭.-
“뭐야?”
“뭐. 그냥 동물이겠지.”
“아... 여기 진짜 기분 나빠.”
술에 잔뜩 취한 타로와 달리 나나는 이 순간이 무서웠다. 귓가를 스쳐 지나가는 얇은 바람소리도, 머리 위로 떨어지는 가느다란 바람소리도. 그러나, 가장 무서운 건 무너진 기차칸에 둘만 있지 않은 것 같은 그런 공간감이었다.
-짤랑! 짤랑!-
“꺄아아악!”
“왜? 왜 그래?”
“나가자. 여기 좀 이상해. 꺄아아악!”
“끄아아아악!”
전기가 들어오려야 들어올 수 없는 그런 망가진 기차칸에 갑자기 불빛들이 번쩍였다. 광분하 듯 요동치는 불빛에 둘은 다리에 힘이 풀린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고막을 간질이는 가느다란 노래 하나가 흘러나왔다.
“뭐야!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야?”
“이거 그 노래 아니야? 그...”
“멍청한 년아! 지금 노래가 뭔지 왜 궁금해?”
시카모토 류이치의 ‘아쿠아’. 가느다란 그 노래가 무너진 기차칸을 가득 채웠다. 둘은 밖으로 나가려 몸부림을 쳤지만 갑자기 그날과 같은 강한 바람이 불었다. 요리와 미나토를 잡아먹었던 그날의 그 매서운 강풍이 타로와 나나의 머리 위를 덮었다.
-쾅!-
“꺄아아아아악!”
문이 닫히고 불이 꺼지고 쓰러진 기차칸에서는 여전히 그 얇디얇은 노래선율이 흘러나왔다.
“야. 이 새끼들아! 장난치지 마! 나가면 다 죽여버린다!”
-휘이이이잉!-
-두두두두두두두.-
타로가 겁에 질려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그 소리는 거친 비바람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귀를 막는 바람소리에, 눈앞을 가리는 새까만 어둠에 둘은 겁에 질려 완전히 얼어붙고 말았다. 그리고, 스산하게 퍼지는 음악 사이로 잊지 못하는 그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이야.”
둘은 그 목소리를 잊지 못했다. 아니 잊을 수 없었다. 타로와 나나의 머리 위에 덮인 창문 위로 계속해서 비가 내렸고 진흙에 뒤덮인 창문 위로 빗방울은 작은 별들을 만들었다. 빗방울이 창문으로 떨어질 때마다 바늘구멍만 한 빛들이 기차 안으로 새어 들어왔다. 그리고, 그들은 눈앞에 있는 둘의 모습을 보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 긴 시간 동안 그들은 완전히 모습을 바꿨지만 그때 입은 옷도 아이였던 그때의 모습도 명확했다.
“안녕.”
“끄아아아아악!”
아이의 체구에 돼지의 얼굴을 한 미나토와 요리는 우두커니 서서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엄청나게 반가운 얼굴로. 십 년 만에 다시 친구들을 만났다는 그 반가움에 쫙 찢어진 입으로.
“잘 지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