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생각이 나서....
[ 고래 낙하 ]
프롤로그
「 숨을 거둔 고래가 빛이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심해로 천천히 떨어집니다. 고래가 죽고 천천히 바닥으로 낙하하는 이 모습을 우리는 고래낙하라고 부릅니다.」
오랜만이었다. 이런 고요함. 수면 아래로 햇빛들이 날카로운 창처럼 내리꽂는 바다를 뚫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날카로운 햇빛도 감히 범접하지 못하는 암흑의 심해에 숨을 다한 고래가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그 모습을 숨소리도 내지 않고 그저 바라만 보았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 하얗고 거대한 곡선을 우리는 하염없이 바라만 보았다.
「 그렇게 심해로 떨어진 고래는 모든 바다에 사는 모든 생명체를 위한 양분이 됩니다.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상어가 첫 손님이 되었군요. 」
빠져도 빠져도 계속 이빨이 자라나는 상어가 숨을 거두어 바닥에 누운 고래밥상을 찾아왔다. 하나하나 세는 데만 해도 한 참이 걸릴 듯 촘촘하게 박혀있는 날카로운 삼각형의 이빨들은 두터운 고래의 껍질을 조금씩 짓이겨나갔다.
「 상어가 지나간 자리에 뒤이어 점점 작은 몸집을 가진 손님들이 고래의 사체를 찾아옵니다. 」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조악스럽고 얄미운 입놀림으로 갈기갈기 찢어져 느리막하게 흘러가는 바닷물에 일렁이는 고래의 살결을 한 점씩 뜯어갔다. 이후에는 온몸에 갑옷을 두른 듯 한 가재와 게들이 거대한 집게발을 들이밀며 세상 옹졸한 주둥이로 조금씩 야금야금 고래의 살점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한 참의 시간이 지나고 앙상하게 남은 고래의 뼈들에 새빨간 실처럼 하늘거리는 오세닥스라는 좀비벌레들이 자리를 잡고 긴 시간을 서식했다. 그렇게 뼈의 골수까지 다 내어주고도 고래의 사체는 다른 생명체들이 살아가는 새로운 둥지로써 그 역할을 이어갔다.
「 고래는 깊은 바닷속에 거주하는 심해 열수구의 생태계를 확장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
정보를 전달하는데 목적을 둔 딱딱한 어조였다. 그렇게 친절하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한 남자의 내레이션은 TV앞에 모인 우리들의 가슴에 큰 멍울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그 어떤 새드엔딩의 멜로영화보다 가슴이 아팠고 누군가의 절절한 인생이야기보다 훨씬 더 심장을 후벼 파는 느낌이었다.
“오빠 우는 거 한 번 보고 싶다. 한 번 울어봐.”
“아들 둘 있는 집에서 별 걸 다 기대한다.”
“어머니가 고생 많으셨겠어.”
살면서 셀 수 도 없이 많이 들어온 말이었다. 우는 모습을 보고 싶다. 불이 꺼진 침실에서 베개를 부여잡고 울어보거나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눈물을 흘린 적은 있어도 누군가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남자는 살면서 딱 세 번 우는 거야. 태어났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그리고 죽기 직전에. 그렇게 세 번만 울면 되는 거야.”
“남자가 질질 짜고 그래. 꼬추 떼라. 그냥.”
“난 찡찡거리는 새끼들이 제일 싫더라. 아무 데서나 쳐 울면 뭐 일이 해결되냐?”
남자로 태어남과 동시에 눈물을 봉인되어야 했던 지난날들. 그리고, 그런 삶을 가르쳐주신 아버지와 그런 삶을 누구보다 잘 이행해 온 나와 동생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태어나서 한 번 조우해 본 적도 없는 낯설기만 한 하얀 지방덩어리의 죽음에 말없이 눈에서 뜨거운 눈물을 떨어트리고 있었다. 고래가 저 깊은 심해로 떨어지는 모습에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깊은 슬픔에 빠졌고 그 누구도 그 어떠한 말을 하지 않고 그저 사라져 가는 고래의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어이구. 남자들이 뭐 저런 거 보면서 눈물을 흘리냐. 남자들은 다 커서도 애라고 하더니 내가 애를 셋을 데리고 살았네.’
TV옆에 우리를 보면서 환하게 웃고 있는 엄마의 사진에서 너무나도 익숙하면서도 너무나도 그리운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평생을 옆에 있을 것 같았던 그 사람이 우리 곁을 떠나 사진 속의 그 모습으로나마 추억할 수 있게 된 이 사실이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비록 고래는 세상을 떠났지만 남겨진 고래의 사체는 바다에 모든 것을 내어주었습니다. 그렇게 고래는 수많은 생명에게 또 하나의 세상을 만들어주며 바다의 곁을 떠났습니다. 」
안경을 벗고 눈물을 닦던 동생이 심해의 온도처럼 차가운 그 목소리에 더 이상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던 나도 결국 먹먹하게 자리 잡은 가슴속의 응어리를 막아내지 못하고 안방 화장 시로 향했다.
-쏴아아아아아.-
목놓아 울고 싶었지만 그렇게 울고 싶지 않았다. 우리보다 더 큰 슬픔을 감내하고 있을 아버지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기도 싫었다. 우리는 모두 눈물을 참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서로에게 눈물을 닦으라며 휴지를 주는 그런 상냥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는 모습을 서로에게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우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지금 더 약해진 모습을 보여준다면 서로에게 더 힘들게 만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진짜 못났네.’
벌겋게 부어있는 두 눈두덩이와 술 취하기라도 한 듯 새빨갛게 부어오른 코. 누가 봐도 울음을 터뜨린 얼굴이었다. 붉게 물들음과 동시에 퉁퉁 불어버린 얼굴. 엄마 앞에서는 차마 보여주지 못했던 그 얼굴이었다. 엄마가 떠나고 나서도 뒤에서 남몰래 숨어서 울 수밖에 없었던 그 얼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수치스러웠고 더군다나 누군가 때문에 흘리는 눈물이라고 하면 더더욱 그 사람에게는 보여주고 싶지 않은 얼굴이었다. 미안했다. 내가 누군가 때문에 이렇게 망가지는 모습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여준다는 것이. 그리고, 이런 낯간지러운 말을 입 밖에 담아내기에도 나는 용기가 부족했다.
“이제 갈게요.”
“어. 그래. 언제 또 올 수 있니?”
“자주 올게요.”
“너무 자주는 오지 마. 아빠도 바빠.”
“걱정 마세요. 그렇게 자주는 안 올 테니까.”
“저는 그래도 자주 오겠습니다.”
“너도 자주 오지 마. 귀찮아.”
“하하. 알겠어요. 그럼 이제 들어가 보겠습니다.”
“들어가.”
얼굴이 퉁퉁 불어있던 우리 셋은 문 앞에서 어색할 정도로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그렇게 헤어졌다. 미안할 일이 아니었음에도 미안했다. 우리가 집을 나가 독립을 했을 때 어머니, 아버지가 이런 느낌이었을까 싶었다. 고래를 보며 구멍이 난 가슴이 채 메워지기도 전에 쌀쌀하게 불어대는 바깥바람에 마음이 채 아물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들어가.”
“어. 형도 들어가.”
길게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혔지만 우리는 더 이상 눈물에 젖어 불어 터진 서로의 얼굴을 보여주고 싶지도, 마주하고 싶지도 않다는 것을. 그렇게 우리는 엄마라는 이름의 판도라 상자 앞에서 굳이 꺼내지 않아도 될 슬픔을 마주하며 눈에서부터 시작된 바닷길을 만들었다.
“아버지가 걱정이네. 아버지가 걱정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