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막 다 이해한 건 아니고...
최근에 어떤 술자리를 가도.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있는 모임을 가도 절대 빠지지 않은 질문이 있다.
“MBTI 어떻게 되세요?”
과거의 ‘식사하셨어요?’라는 말과 비견될 정도로 자주 사용되는 것 같다. 뭐... 굳이 분류를 나누자면 ‘혈액형이 어떻게 되세요?’와 비슷한 이야기겠지만 말이다. 그냥 MBTI 하나로 그 사람의 특징을 생각해서 나와 얼마나 잘 맞을지, 그리고 어떻게 상대를 대해야 할지를 판가름하는 좋은 척도가 된 것 같다.
“혈액형으로 성격을 구분 짓는 것은 아주 멍청한 행동입니다.”
이전부터 많이 나왔지만 혈액형으로 누군가의 성격을 구분 짓는 것은 과학적으로 틀린 이야기라면서 아마 MBTI라는 주제가 많이 성행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 MBTI를 가지고도 입 아프게 반대를 하며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이 꽤나 나타났다.
“아니. MBTI로 사람 나누는 게 말이 되냐? 컨디션 따라 달라지고 상황 따라 달라지는 건데?”
“그냥 재미로 보는 거잖아. 왜 이렇게 열을 내?” “아주 어디 갈 때마다 MBTI 얘기하는 거 꼴 보기 싫어서.”
“참... 싫을 것도 많다. 너 ISTJ냐?”
“어... 어떻게 알았지?”
MBTI에 대한 박사들이 있는 반면에 MBTI 이야기만 나오면 치를 떠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나는 이 MBTI가 나오게 된 이유가 내향적인 사람들을 위함이 아닌가 싶다.
‘아... 사람 많은 거 싫은데...’
‘말 걸지 말아라. 말 걸지 말아라.’
‘나 빼고... 나 빼고....’
‘아... 집에 가고 싶다.’
‘약속 취소? 오히려 좋아.’
집에 있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좋아하는 내향형 인간들. MBTI의 첫 번째 알파벳이 의미하는 것이 외향형, 내향형인 것을 고려하면 아마 이 검사의 척도에서 가장 중요하게 내향이냐? 외향이냐? 의 차이겠지.
“야. 술 한잔 하자.”
“아... 난 오늘 피곤해서 집 들어가서 잘게.”
이유는 모르겠지만 말이 없는 이 친구들과 처음에 쉽게 친해지는 게 좀 어려웠던 것 같다. 물론, 친하면 제정신이 아닌 놈들이 많기는 했지만 그 처음이 어려웠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비치는 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고 누군가를 처음 보고 믿기 전까지도 꽤나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았다. 이전에는 그러 내향인을 볼 때면 ‘남 모르는 상처가 많나?’라는 생각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또래보다 철이 좀 빨리 들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영국의 비평가 '토머스 칼라일' ]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다(Speech is silver, silence is gold)"
영국의 비평가 토머스 칼라일이 했던 말이다. 침묵과 경청은 억만금과 바꿔도 아깝지 않다는 말이 있듯이 누군가의 말을 천천히 들어보면서 상대를 파악하는 것은 꽤나 좋은 인생스킬 중 하나인 것 같다. 생각보다 사람은 자신의 입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며 그 정도가 과해지면 소위 우리가 말하는 꼰대로 전락하는 것 같다. 아마, 내향인들은 타고나기를 경청까지는 아니더라도 먼저 말을 입에 담지 않는 그 좋은 기술을 타고난 인간들이 아닐까 싶었다.
“아우. 답답해. 말 좀 해라.”
옆에서 그냥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는 사람을 보고 속이 터질 듯이 가슴을 퍽퍽 치는 장면을 꽤나 봐왔던 것 같다. 영화에서든, 드라마에서든, 실제에서든. 친구끼리도 그런 장면들이 연출되지만 가장 많이 연출되는 장면은 아마 무뚝뚝하고 말이 없는 남편을 대하는 아내들의 역할에서 그 모습이 많이 나왔던 것 같다.
“아주 벽하고 얘기해도 저것보다는 낫겠어.”
어지간하면 벽이랑 대화하는 게 낫겠다는 말을 할까? 그런데, 그 모습을 멀리서 방관하다 보면 맹공을 퍼부은 복서가 홀로 지쳐서 쓰러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모든 내향인들이 그런 게 아니겠지만 뭐가 그들은 강하고 쎈 말들을 듣더라도 크게 반응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정확하게 말하면 겉으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할까나?
“괜찮아?”
“어. 괜찮아. 그냥 놔두면 괜찮아져.”
그냥 스스로 그 화를 삭이고 조용히 다시 제자리로 가는 사람이 있는 가 하면...
“괜찮아?”
“아니.”
“힘내.”
“아니.”
큰 말을 하지 않고 바로 행동으로 보여주는 친구들이 있던 것 같다. 자신들이 당한 수모를 이기지 못하고 바로 게시판에 글을 올리거나 익명성의 힘을 빌려 뒤에서 그들을 조곤조곤 밟는 장면도 몇 번 봤던 것 같다.
“거... 참. 그거 말을 하지. 말을 안 하면 우리가 어떻게 알아?”
“그러게요. 참... 답답하네요.”
쉬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는 극 외향인들은 속으로만 생각을 묵혀두고 있는 내향인들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언제나 자신들을 드러내는 외향인들을 보며 내향인들은 또 그들 나름대로 외향인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하아... 이 새끼는 도대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네. 음침한 놈.”
“넌 죽어서도 그 주동이만 둥둥 떠 다닐 거야. 촉새같은 자식.”
상극인 둘이지만 막상 같이 있으면 생각보다 밸런스는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사실, 나도 어느 정도 외향적인 편이라 주변에는 시끄러운 놈들이 많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닌 듯 술자리에서도 놀러 가서도 우리는 했던 이야기를 또 하면서 3박 4일을 떠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쉬지 않고 떠들다 보면 집에 와서 녹초가 될 때가 많다.
“넌 완전 외향형은 아닌가 보네. 난 그렇게 다 풀어내고 오면 개운하던데.”
“그래. 너 많이 떠들어라.”
한해 한 해가 지날수록 점점 더 내향인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I’ 호소인일 수 있겠지만 정말로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보내거나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내는 그 호자만의 시간들이 너무 감사해질 때가 많다.
“야. 오늘 술 한 잔 해야지.”
“오늘은 멸망전이다. 뒤질 때까지 마시는 거야.”
“어디 놀러 갈까?”
집보다는 밖이 좋았던 옛날의 내가 지금의 내 모습을 본다면 큰 충격에 빠지겠지. 점점 내향인이 되어간다는 건 어떻게 보면 조금은 힘이 빠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의미 없는 이야기들을 떠드는 것이 얼마나 의미 없는지를 알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사람들을 만나면서 영역을 확대하려고 사력을 다했던 시간이 있다면, 이제는 내 주변에 있는 몇몇의 고마운 사람들에게 감사를 하는 시기가 되는 것 같다. 물론, 입 밖으로 그 말까지 하지는 않겠지만.
“야... 너희가 진짜 인생을 즐기는 법을 알았구나.”
혼자서 노는 즐거움. 홀로 집에서 멍하니 있을 때의 그 평화를 알게 된 요즘. 내향인 친구들이 그동안 얼마나 인생을 유연하고 여유롭게 살았는지를 알게 되었다. 물론, 아직 따라가려면 한참 남았지만 뭔가 이제는 조금... 정말 조금 내향인들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다. 뭐 ... 완전히 이해했다는 건 아니고... 그래도 사람은 만나면서 살아야지. 어떻게 혼자 사냐? 무슨 도인도 아니고... 난 아직 그만큼 깨닫지는 못했다. 확실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