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 제목을 보고.
국문학과를 나왔다는 이유로 나는 주변 사람들의 자소서를 거의 대부분 볼 수 있었다.
마음에 차지 않아서,
나는 새삼 그들의 사소한 이야기까지 끄집어 냈다.
그리고 나는 아주 '별 일 아닌' 경험들마저 알게 되었고,
그것들에 이것조차 '별 일일 수 있음'을 설득했다.
여기저기서 우리는 살면서 겪은 '모든' 경험들이 사실 지금의 나를 기여했으며,
결국 내가 앞으로 '나이고 싶은 나'를 만드는 데 자양분이 될 것이라는 설명을 한다.
어느새 사소한 것일지라도 '의미를 찾는 것'은 평생의 과제가 되었다.
오늘도 나는 여러개의 자소서를 보았다.
우연인 듯, 오늘 밖에 나가기 전 나는 밀란 쿤데라의 소설 <무의미의 축제>를 가방에 넣었다.
'무엇이라도' 의미를 찾아야만 하는 날,
'무의미'에 대한 글을 읽겠다고,
여러 책 중 '하필' 그것을 골라버린 것이다.
살면서 겪은 모든 경험, 그 하루하루.
그 모두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다.
내가 학창시절부터 시간이 날때마다 영화를 본 이유, 국문학과를 선택한 이유,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던 이유, 하지만 나이가 들고 보니 드라마를 만들고 싶어지지 않은 이유,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언제나 있어왔던 사소한 선택들의 이유.
그 전부는 '지금'의 내가 있는 이유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와는 너무나도 다른 나의 경험, 선택들은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의미 있는' 선택들을 했을까.
밀란 쿤데라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이다.
그래서 새로 나온 <무의미의 축제>를 사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했다.
나는 아직 <무의미를 축제>를 읽지 않았다.
이 글은 철저히 제목만을 보고 드는 생각에 관한 것이다.
책을 다 읽은 후, 나는 이 소설을 통해서 그 어떤 것도 끄집어낼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책을 펴기 전 '이런 글'이라도 써놓아야겠다고도 생각했다.
그 놈의 '생각하기'를 하고나니,
결국 <무의미의 축제>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의미를 찾는' 내가 있다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여전히,
"의미 없는 것, 혹은 쓸모 없는 것 자체가 사실은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구절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나를 보았다.
도무지 정리가 될 것 같지 않지만,
이 정리되지 않는, 무의미한 주절거림 또한 '쓸데 없는 것'이 될 것만 같다.
"그러려니",
버려지는 글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