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며 '오래된 미래'로 가는 길

이문재 시인의 <산책시편>을 읽고.

by 이그저

* 시집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제외한 글입니다.



이문재 시인은 ‘산책’을 통해 ‘산책’을 이야기한다.


사실 이 한 문장으로 이문재 시인의 시를 말할 수 있다.

그에게 ‘산책’은 곧 ‘게으름’이고, 이는 ‘빠름’으로 대변되는 현대 문명 사회 속에서 ‘이제라도’ 사람들이 생각해야할, 그리고 실천해야할 삶의 방식이다.

‘속도의 시대에서 느리게 살자’라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그다지 새로운 권유는 아닐 것이다.

90년대는 모든 것이 급속도로 빠르게 이루어졌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 속에서 많은 사람들, 그리고 많은 시인들은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고 또 말해왔다. 특히나 ‘힐링’, ‘느림’, ‘여유’ 등의 단어가 하나의 가치로 자리잡아서 우리 주변 여기저기에 널려있는 요즘엔 ‘게으름’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이루어지고있는 듯하다.


하지만, 부상하는 가치들 또한 너무도 ‘급작’스럽다.

또, 그것들은 우리에게 또 다른 절망도 안겨준다.

가장 기본적으로 먹고사는데에 있어서 ‘성공’으로 가는 단계에는 ‘빠른 것’이 필요한데, 한편에서는 자꾸만 ‘여유’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여유’라는 가치는일상 생활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잘못 살고 있다’고만 한 채, 별다른 방향 제시는 크게 해주지 못하고 있다.

여태까지는 별 생각없이 현대 사회의 가치에 맞게 살아오고 있었는데, 이제는 ‘불편한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게으름’의 가치가 새롭게 평가되고 있는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자고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새로운 평가 자체가 또 ‘빠르게’ 이루어져버렸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문재 시인의 ‘산책’은 특히나 요즘 우리들에게 필요한 ‘자세’일 수 있다. 시인 이문재의 ‘산책’은 그의 시의 주제이며 동시에 그 스스로가 행하는 삶의 태도이다.

우리는 그 ‘느림’의 태도를 ‘같이’ 행할 준비를 해야 한다. 그는 게으르게 시집을 발표한다. <산책시편>은 단순히 ‘산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시인 스스로 ‘산책’한 결과물이다.

즉, 모든 것이 빠른 사회 속에서 그 ‘빠름’을 산책하며 천천히 관조한 관찰의 흔적이며, 동시에 손쉽게 ‘빠름’에 휘둘릴 수 있는 욕구를 다스리는 시인의 고행의 자취이다.

우리는 이문재 시인의 <산책시편>을 통해, 그의 고행을 보고, 그 속에서의 어려움과 성찰들을 따라가면서, 각자만의 ‘산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느리’게 ‘느림’을 말하는 시인의 시들을 보며, 우리도 ‘느리’게 ‘느림’을 행할 가능성을찾게 되는 것이다.


이문재 <산책시편>


여기서 ‘산책’은 단순히 훼손된 현실을 살피는 현미경이 아니다.

산책은 곧 ‘게으름’이고 ‘느림’이다.


이는 모든 것이 ‘빠름’인 사회와 정반대의 지점에 놓인 근본적인 가치이기도 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문재 시인은 ‘산책’을 통해서 ‘산책’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관념적으로 이러한 가치를 설파하는것을 넘어서, ‘그렇다면 우리가 가야할 산책의 길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한다. 그 고민의 결과는 과거로의 회귀이다.

‘앞’만 보고 내달려온 우리들은 이제 ‘뒤’로 돌아가야 한다. 미래만이 존재하는 현실 속에서 과거로 돌아가는것은 ‘새로운 시간의 길’을 걸을 수 있는 가능성을 향해가는 것과 같다.

단순히 그는 ‘과거로 돌아가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시작으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것이다. 과거로 돌아가야만 우리는 새로 시작할 수 있다. ‘이제는’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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