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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진 Aug 22. 2018

매미야, 끝이 보인다

8월의 이야기 열셋

우리 동네는 고층 아파트가 수두룩하다. 하이페리온, 트라펠리스, 쉐르빌 등 갖가지 주상복합형 아파트들이 이미 높은 경치를 선점한지 오래다. 지난해에는 푸르지오시티까지 들어오는 바람에 남산타워가 내 시야에서 사라지기도 했다.


나는 20층짜리 아파트 꼭대기 층에 산다. 어느덧 신식 건물들에 밀려 구식 아파트가 됐으나 20층 아파트 꼭대기 층도 나름 매력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예정에 없던 손님의 방문이다. 종종 새가 날아와 에어콘 실외기에 앉는다. 어릴 적에는 큼직한 까마귀가 날아와 똥을 싸고 떠났고, 까치가 둥지를 튼 적도 있다. 아버지한테 말씀드린 뒤로 까치 가족이 어떻게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한여름에는 잠자리떼가 모여 장관을 이루기도 한다. 온다는 예고없이 오는 탓에 '이번엔 어떤 새가 올까?'라는 묘한 기대감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유난히도 더운 올 여름에는 기대와 다르게 새가 찾아오지 않았다. 대신 베란다 방충망에 매미가 붙었다. 지상에 있는 나무에서 울어대는 소리가 20층까지 들려오는데 바로 옆에서 우는 소리는 상상을 초월했다.  미친듯이 울어제끼는 소리에 우리 가족이 모두 잠에서 깼다.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가보니 아빠가 매미 앞에 자리잡고 앉아있었다. 엄마 말에 따르면 아빠가 1시간 넘게 베란다 앞에 앉아 매미만 지켜봤다고.


"아빠, 매미 좀 어떻게 해봐. 시끄러워서 잠을 못자겠어."

아빠에게 도움을 청했다. 나는 수년 전에 방충망에 붙어있는 매미를 내쫓기 위해 효자손으로 방충망을 내리쳤다가 찢어뜨린 적이 있기에 직접 나설 수 없었다.


"야, 어차피 15일 밖에 못사는데 내비둬라. 쟤도 이제 끝이 보인다."

아빠는 역시 아빠다웠다.


우리 집은 20층 꼭대기다. 한 층 당 높이를 2m로 어림잡아도 지면에서 40m씩이나 떨어진 곳이다. 이렇게 멀리까지 와서 짝을 찾는 걸 보면 얘도 어지간히 인기가 없는 놈이구나 싶다. 몇 년동안 번데기로 살다가, 딱 15일 동안 매미로서 울부짖는데 그 사이 짝 하나 없는 신세라니. 사정없이 우는 그를 뒤로 하고 난 내방으로 들어왔다. 평소같았으면 잠을 더 청했겠지만 매미 덕에 하루를 일찍 시작했다.


볼 일을 다 보고 저녁이 다 돼서 집에 돌아왔을 때, 방충망에 매미는 없었다. 매미가 앉아있던 방충망 사이로 바람이 솔솔 들어왔다. 40도에 육박하던 온도는 어느덧 28도까지 내려왔다. 땀에 절었던 티셔츠를 바람이 말려주듯 여름이 가고 있다. 아빠 말이 맞았다.


"매미야, 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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