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이야기 열둘
# 넌 생각보다 힘들다 티를 안 내는 것 같단 말에 그런가, 싶었다. 그래서 몸에 자꾸 병이 나는 거야 라는 말에는 정말 그런가, 싶었다. 치과의사가 떠올랐다. 신경치료하는데 너무 잘 참는다고, 다른 일은 그렇게 참으면 병난다던 말.
# 사주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 능력치에서 두 번째로 높은 게 '인내심'이었으니까. 아주 자세하고 구체적인 유료 사주 어플에 따르면 그렇다. 제일 높은 건 쓸모없는 '배려심'. 차라리 '유머감각'을 주시지 그랬나 싶다. 하하호호 웃으며 지내면 얼마나 좋아.
# 내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최대치를 이미 넘겼다고 생각했는데 하나 더 둘러맨 것 같다. 그런데 그 와중에, 그렇게 막막한 와중에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그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그러니까 우리를 위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는 감정들을 한 움큼으로 만들어 힘껏 움켜쥐고는,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숨겨 놓고 일상을 계속하는 방법밖에 없다.
# 나는 잘 살고 있다. 잘 살고 있나? 매일 그날 저녁 뉴스를 정리해 업로드하는데 매일 며칠에 살고 있는지 모른다. 잘 살고 있는 건가?
# 나의 재수생활이 얼마나 오래 한 공간에 갇혀 있을 수 있는가를 시험하는 시간이었다면, 요즘은 얼마나 크고 복잡한 감정들을 아무렇지 않은 듯 삼켜낼 수 있는가를 시험하는 것 같다.
# 계속 반복되는, 어마어마한 횡설수설함은 마음의 반영이다. 몇달째 일기가 똑같다. 반복과 변주랄까. 지난달을 아 이 시간 또한 지나가리라는 생각으로 버틴 것처럼, 지금도, 이 한 치 앞을 모를 밤들도 언젠가 지나가겠지. 흠 개복치도 살아가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