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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진 Aug 29. 2018

나는 행복하지 않다

8월의 이야기 열여덟

중학생 시절 나는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나이(?)에 담배를 배웠다. 동년배 친구를 이유 없이 괴롭혔고, 부모님을 포함한 모든 어른에게 억지로라도 반항했다. 사춘기 때 겪은 방황 덕분에 내가 얻은 것은 '불량청소년'이라는 낙인, 그리고 생활기록부에 남은 숱한 비행사건 목록이었다.


살아가는데 불필요한 것들만 얻었던 그때였지만, 다시 돌이켜보면 그때가 가장 행복했다. 아무런 목적 없이 만나서도 밤새 얘기를 나누고, 딱히 말하지 않아도 생각과 행동이 똑같은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매 시험과 교내 생활에서 예쁨을 독차지하는 교내 우등생들, 공공의 적인 엄친아들과의 비교에도 굴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였다. 그 시절 내게 있어 친구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인생의 낙이었다. 그들과 함께라면 미래에 닥쳐올 험난한 시련도, 혹독한 매질의 고통도 감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세월이 흘러 모두 직장에 대한 고민을 할 때도 우리는 항상 '함께'였다. 다만 과거의 문제아들이 아닌 현재의 일반인들로만 바뀌었을 뿐이다. 누군가는 지극히 일반적인 취업 준비를, 또 다른 누군가는 가족의 업을 이을 준비를, 나머지는 사업을 계획하면서도, 우리는 서로에게 동행의 대상이었다. 나아가는 방향은 다를지라도 '흰머리 될 때까지 친구'라는 최종 목적지만큼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 들어 친구들 사이 기류가 시나브로 변하고 있다. 각자 세월의 때를 타는 과정, 현재까지 받아들은 성적표가 다르다보니 서로가 서로의 비교 대상이 됐다. 누구는 벌써 대기업에서 '대리'를 달았고, 누구는 어마어마한 연봉의 소유자가 되었으며, 누구는 벌써 안정적인 재정을 바탕으로 결혼을 꿈꾼다. 반면 몇몇은 여전히 취업에 도전 중이고, 누군가는 도박으로 진 빚을 갚는 중이다. 회사, 연봉 따위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는 기준이 됐고, 우리를 성공한 놈들과 실패한 놈들로 갈라놓았다.


예전 같았으면 웃어넘겼을법한 농담에도 이제는 서로 얼굴을 붉힌다. 바로 앞 건물에 사는 친구는 큰 맘 먹고 약속을 잡아야만 만날 수 있을 정도로 연락이 뜸해졌다. 한 시간 만에 재회해도 아쉬움 가득했던 우리인데, 이제는 한 시간만 같이 있어도 어색한 기류가 흐른다. 세월이 흐르면 무엇이든 변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우리'가 변했다는 아쉬움이 날로 커져만 간다.


그 시절, 그 추억들을 함께 했던 친구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지금. 난 행복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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