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도 곧 보게 될 모습
일본 도쿄도 메구로구(區)의 한산한 주택가. 도쿄 역에서 전철로 25분 떨어져 있는 이 동네에 작은 식당 하나가 있다. 가게 이름은 '하나마메(花豆)'. 평범한 일본 '가정식'을 팔고 있다. 일본 주택가에 흔히 있는 식당의 모습이다.
그러나 가게 사장(요코 미하라)과 두 명의 종업원은 다른 식당들과 비교하면 평범하지 않다. 모두 '채소 소믈리에'다. '채소 소믈리에'란 쉽게 말해 채소 전문가다. 채소를 고르고 보관하는 방법 등 채소와 관련된 전반의 지식을 갖고 있다. 음식도 채소 간 궁합을 고려해 만든다. 각종 채소 요리 레시피 연구도 한다. 자격증도 있다.
요컨대 자연으로부터 식탁까지의 전 과정에 참여하며 생산자와 소비자를 이어 주는 역할인 것이다
여기 메뉴는 채소 소믈리에가 직접 고른 채소로 만든다. 물론 친환경 채소다. 식당의 메뉴는 일본의 가정식 요리이다. 가격은 당연히 다른 식당보다 조금 비싸다. 비슷한 메뉴와 비교하면 약 20% 정도는 비싼 것 같다. 그래도 동네 주민들이 자주 찾는다.
가게를 찾은 손님 다카하시씨(40대 초반 여성)는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골고루 먹을 수 있으니 집에서 혼자 요리해 먹는 것보다 가격은 물론 영양 밸런스 측면에서도 비교할 바가 못된다고 한다. 요코 사장과 종업원들은 손님에게 계절별로 맞춤 채소를 권한다. 고정된 메뉴를 팔고 있는 다른 식당과 차별되는 점이다.
손님의 반 이상은 동네 주민이다. 모두 단골이다. 이 동네는 대표적인 도쿄 인근의 주택가로, 1인 가구가 많이 모여사는 동네다. 고령화 비율도 높다. 그러다 보니 먹거리에 대한 관심도 많다. 요코 사장은" 혼자 살고 고령화 비율이 높으니 유기농 친환경 채식 등에 대해 관심이 당연히 있다"라고 말했다.
나이 든 사람만 찾는 건 아니다. 특히 최근 들어선 '하나마메'를 찾는 손님의 연령이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 고령 세대뿐 아니라 '젊은 엄마'들도 친환경 채소 요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단다. 대개 아이들과 함께 온다. 사장은
"채소를 먹는 습관은 어렸을 때부터 들이는 게 중요하다"며 "화학조미료 없이 맛있게 만들어진 채소 요리를 접하는 게 좋다는 인식이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진 것 같다"라고 했다.
식당에서 음식만 파는 건 아니다. 채소도 직접 판다. 식당 한편에 파는 곳이 따로 마련돼 있다. 처음엔 밥만 먹고 갔다가 채소가 좋아 손님들이 팔라고 해서 생겼다고 한다. '채소 소믈리에'를 동네 주민들이 믿은 것이다.
비단 동네 주민과 식당에만 좋은 건 아니다. 농부들에게도 좋다. 일석삼조인 셈이다.
식당을 찾았을 당시 농산물을 들고 온 농부를 만날 수 있었다. 도쿄에서 무려 1,500km 남쪽인 규슈에서 과일을 키우고 있는 나리아이 토시조우 농부다. 물론 유기농이다.
그는 "적은 규모라 도매시장에 내다 팔 수도 없고, 인근 마트나 직매장에 출하해도 유기농 농산물에 대한 제값을 받기 어려웠다"며 " 그러나 하나마메 식당이 우리 과일에 관심을 보이면서 새 판로가 생겼다"라고 했다.
그는 "판로도 판로지만 내 농산물을 인정받는 기쁨과 보람은 그 이상"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토시조우 농부가 도쿄까지 직접 온 건 이곳에 볼 일이 있어서였다. 온 김에 식당을 일부러 찾은 것이다. 그만큼 식당을 좋아한다는 얘기다. 토시조우 농부처럼 직접 들르지 않아도 된다. 사장은 처음엔 농가를 직접 찾지만, 한 번 신뢰를 쌓으면 택배로 만으로도 농산물을 받는다.
보통 한국은 일본보다 몇 년 늦게 사회현상이 따라간다고 한다. 하나마메란 조그만 가게가 한국의 농부와 사회에 시사점을 던져주는 이유다. 최근 한국도 1인 가구와 고령자의 비율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한국의 고령화 비율은 2017년 8월 말 기준 주민등록상 65세 이상 인구가 725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4.0%를 처음 넘어섰다. 아직 일본보다 높지 않지만, 고령화 진행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UN은 고령화 사회에서 초고령 사회까지 도달하는 데 프랑스는 154년, 독일은 77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한국은 26년이다. 한국은 급속히 늙어가고 있다.
고령자는 조그만 시골에, 1인 가구는 도심에 주로 많이 모여 산다. 이곳을 중심으로 식당도 많이 생겨났다. '집밥'이 트렌드가 되면서 식당들이 여기저기 생기고 있지만, 친환경이나 채소 등을 주메뉴로 하는 곳들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대개 김치찌개나 설렁탕 정도 내지는 예식장 뷔페의 축소판 정도이다. 특히 친환경 농산물을 식당에서 파는 곳은 거의 없다.
일본 식당을 함께 찾은 김기태 씨(27세)는 "친환경 식당 등의 창업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일본의 사례가 많은 도움이 된다"라며 "1인 가구와 고령화 증가가 농업에 어떤 변화를 주는지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