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캄한 여름밤, 아이들이 참나무 길로 몰린다는 건 여름이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시골에서 아이들의 여름은 사슴벌레 채집과 함께 온다.
한낮에 귀가 따갑도록 울던 매미가 잠잠해지면 동네 아이들의 은밀한 외출이 시작된다. 목적지는 단 한 곳! 두툼한 참나무가 길 한쪽으로 나란히 줄 서 있는 참나무 길. 그곳에 삼삼오오 모여든 아이들은 비장한 표정으로 나무를 바라본다.
나 역시 사슴벌레 채집에 빠지지 않고 출석했던 어린이다. 사실 나는 사슴벌레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한두 번 잡아보면서 ‘우와 우와~’ 하다가 금방 흥미를 잃었다. 그런 내가 사슴벌레 채집에 빠질 수 없었던 이유는 다분히 오빠 때문이다.
나에게는 세 살 터울 오빠가 있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오빠는 고학년이었고, 그때쯤 시골 초등학교 남자아이들 사이에서는 자기가 잡은 사슴벌레를 자랑하는 일이 유행처럼 있었다.
나는 오빠의 ‘내 사슴벌레가 더 잘났음’ 대회 참가를 위한 보조 인원 정도였는데, 주된 역할은 조명 담당이었다.
시골 마을의 밤은 생각보다 매우 깜깜하다. 도시에서는 빛 공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암막 커튼이 필수지만, 시골은 다르다. 시골의 밤은 말 그대로 암흑에 가깝다. 특히 차도 잘 다니지 않는 참나무 길 같은 곳은 가로등도 없는 경우가 많아 실제로 ‘눈에 뵈는 게 없다’고 봐야 한다.
이런 상황에 큰 참나무에 붙어있거나, 혹은 참나무 구멍에 숨어있는 사슴벌레를 맨눈으로 발견하기란 거의 불가능이다. 그래서 사슴벌레 채집에 꼭 필요한 필수품이 바로 불빛이다.
나는 주로 오빠에게 이 불빛을 비춰주는 보조 역할을 했는데, 처음에는 평범하게 후레시(랜턴, 플래시라 표기해야 맞지만 당시 불렀던 발음대로 후레시로 하겠다.)를 사용했다. 지금도 판매하는지 모르겠는데, 작은 대포처럼 생긴 굉장히 두껍고 아이 팔뚝 길이만 한, 주로 빨간색이고 위쪽에 손잡이가 달린 후레시다. 아마 ‘음~ 그거?’ 하는 분들이 많이 있을 것 같다.
문제는 그 후레시의 무게다. 어린 내가 오랫동안 오빠의 명령에 따라 나무 여기저기를 비추고 서있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들고 있을수록 후레시는 점점 무거워지고, 들고 있던 팔은 스르륵 내려갔다. 그때마다 오빠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아! 야!!! 좀 위쪽으로 비추라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오빠가 알아서 해!!’하고 무시해도 그만인데 그때는 왜 그렇게 오빠의 말을 철석같이 들었는지, 무거운 후레시를 들고 서 있으려면 마치 벌 서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나는 그때부터 슬금슬금 채집을 피했고, 사슴벌레 자랑을 멈출 수 없었던 오빠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며칠 후 평소처럼 오빠는 사슴벌레를 잡으러 가자고 했다. 나는 거절했다. 그때 오빠가 씩 웃으며 한마디 건넸다.
“야, 나와봐~”
마지못해 마당으로 나간 나는 마치 영화관 영사기 불빛처럼, 환하게 마당을 비추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 빛의 시작은 할아버지 자전거였다. 할아버지의 자전거는 페달을 밟으면 앞에 달린 전조등에서 불빛이 만들어졌다. 세워 둘 때는 삼각대 같은 받침대로 뒷바퀴를 살짝 땅에서 떨어트려 놓는데, 오빠는 그 상태로 페달을 손으로 돌리면서 불빛을 만들어냈다.
신세계였다. 공회전으로 만드는 자전거 불빛이라니.
그 순간 오빠가 천재라고 아주 잠깐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무거운 후레시를 들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과 자전거 불빛의 강력함에 놀라 자빠질 동네 친구들을 생각하며 한달음에 오빠를 따라나섰다.
우리 남매는 목표한 참나무 앞에 자전거를 세웠다.
“돌려!”
오빠의 한 마디에 나는 연신 페달을 돌렸다. 후레시보다 넓고, 환하게, 자전거 불빛이 참나무를 밝혔다.
그날 이후로 우리 동네 사슴벌레 채집에는 라이트 달린 자전거가 늘 함께 했다. 물론 이 자전거 비법도 오래 가진 못했지만…
발도 아니고, 손으로 자전거 바퀴를 계속해서 돌리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단지 한 두 번 색다른 재미를 느끼는 아드레날린으로 힘든 줄 모르고 돌렸을 뿐, 몇 번 하고 나니 그것 역시 팔이 아팠다. 자전거 조명의 최대 단점은 속도 조절이 어렵다는 것! 너무 빨리 돌리면 손으로 잡을 수 없을 만큼 페달이 빠르게 돌아가서 건들 수가 없고, 일정한 속도로 계속해서 돌리다가 힘이 빠져 느려지면 불빛도 약해진다. 그렇게 약해진 불빛은 오빠의 호통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날 이후로도 어쩔 수 없이 사슴벌레를 잡으러 나갔다. 가기 싫은 마음에 자전거도, 슬리퍼도 질질 끌면서 느릿느릿 걸었던 그 길이 여전히 생각난다.
어른이 된 후 내가 오빠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오빠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듯 “내가?”라고 되묻는다. 역시 행복한 기억(=오빠의 추억)보다 고생한 기억(=나의 불빛 노동)이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