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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스트 Mar 21. 2024

시골 출신은 벌레를 무서워하지 않을 거란 착각

읽으면서 힐링되는 <시골 포레스트>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면 주인공 혜원(김태리 역)이 서울로 대학을 간 후 갑작스럽게 벌레를 마주하는 장면이 나온다. 함께 있던 친구들은 소리소리를 지르면서 도망가는데 혜원은 오히려 벌레가 귀엽다는(?) 듯 바라본다. 꼭 이 장면이 아니더라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특히 대학에 가보면) 도시 친구들은 시골 출신인 내가 벌레를 무서워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착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벌레를 그다지 무서워하지도 징그러워하지도 않는다. (뭐야, 그럼 맞잖아?) 그도 그럴 것이 시골에서 살다 보면 별의별 종류의 크고 작은 벌레를 항상 만난다. 밭이나 길가, 마당뿐만 아니라 집 안에서도 벌레는 단골손님이다.


내 기준에 시골에서 가장 많이 만나게 되는 벌레는 ‘돈벌레’인데, 정식 명칭은 ‘그리마’다. 통성명이 필요한 분들을 위해 생김새를 설명해 보겠다. 자고로 통성명이라 함은 사진을 넣었을 때 가장 쉽고 빠르게 ‘아~ 이거!’ 하고 알아볼 수 있지만, 분명 사진을 보자마자 들고 있는 것을 던져버리는 사람이 있을 수 있기에 글로 대신하겠다. (글도 징그럽다면 과감하게 다음 문단은 넘어 가시길.)


돈벌레는 지네와 비슷한데, 보통 새끼손가락 1-2마디 정도의 크기고, 다리가 많고 얇다. 다리의 개수는 모른다. 세어볼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는데 위급 상황에 다리 몇 개 정도는 떼어 두고 가도 될 만큼 많다. 색깔은 어두운 갈색 또는 검정에 가깝고 움직임이 빠른 편이다. 이쯤 되면 대충 어떻게 생긴 벌레인지 상상이 될까?


돈벌레는 시골집에서 가장 자주 마주치는 존재다. 주방, 화장실, 거실, 방 할 것 없이 어디서나 나타나고, 소파, 서랍, 가방, 심지어 옷이나 이불 사이에서도 발견된다. (윽, 징그러워.) 낮에도 나타나지만 주로 밤에 더 자주 볼 수 있다.


놀라운 점은 생김새의 묘사만으로도 소름을 돋게 하는 돈벌레가 ‘해충’이 아닌 ‘익충’이라는 사실이다. 한 마디로 인간에게 유익한 벌레라는 건데, 흠… 대체 왜 때문이죠?


글과 아무 상관 없지만 그나마 귀여운 벌레로 무당벌레 사진 당첨


시골에서 어느 정도 살아본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하는 게 하나 있는데, 시골에는 바퀴벌레가 없거나 매우 드물다는 점이다. 내 기억이 조작이 아니라면 나는 시골에 사는 동안 바퀴벌레 비슷한 것들도 본 적이 없다. 바퀴벌레를 제대로 만난 건 대학에 가서 자취를 하던 시절이다.


자취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함께 살던 친구가 갑자기 사색이 되더니 말했다.


“진심 엄지발가락만 한 바퀴벌레 봤어.”


나는 ‘아~ 오바하지마. 엄지발가락은 무슨’하면서 혹시 또 나오면 내가 잡아줄 테니 걱정 붙드러 매라며 친구를 달랬다.


그로부터 정확히 이틀 후...


밤늦게 집으로 돌아와 불을 켰을 때 방 한가운데 떡하니 놓여있는 엄지발가락만 한 친구와 조우했다. 거짓말 안 하고 정말 그 정도의 크기였다. 살면서 그렇게 큰 바퀴벌레는 처음이었고, 도시 벌레는 다 이렇게 큰지 잠시 패닉이 왔다.


일전에 바퀴벌레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혹시 또 나오면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검색도 해 두었는데 소용없었다. 나는 현관에 그대로 서서 엄지벌레, 아니 바퀴벌레와 잠시 대치했다. (진짜 엄지발가락만 해서 한동안 친구와 엄지벌레라고 불렀다.)


잠깐 사이 엄지벌레는 사사삭 냉장고 뒤편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대로 집을 나가 바퀴벌레 약을 꽤 여러 개 샀다. 그 후로는 자려고 누울 때마다 엄지벌레 소리가 나지는 않는지 귀를 기울여야 했다.  


웬만한 벌레에는 별로 놀라지도, 심지어 잡아서 처리하는 일에도 거리낌 없는 시골 출신이 바퀴벌레에 긴장했던 건 ‘낯섦’과 ‘크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바퀴벌레가 낯설 수밖에 없는 이유는 돈벌레가 익충인 이유와 일맥상통하는데, 바로 돈벌레가 바퀴벌레의 천적이기 때문이다.  돈벌레는 수많은 다리로 온갖 곳을 헤집고 다니면서 바퀴벌레, 모기 같은 해충의 알을 먹어 치운다. 그러니 하루 걸러 한 번씩 돈벌레를 보는 시골에서는 바퀴벌레가 생겨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이쯤 되면


‘돈벌레 vs 바퀴벌레, 당신의 선택은?’


이라는 질문을 던져야 할 것 같지만 나부터도 벌레는 이거나 저거나 다 싫다. 단지 익숙하게 봤던 벌레에는 놀라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어쨌든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집은 기본이고, 친구들과 여행을 가거나 회사에 있을 때에도 벌레가 나타나면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먼저 차출되는 사람이 바로 나다. 기대에 부응하듯 나는 호들갑 떠는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무심하게 휴지 몇 장을 뽑아 신속하게 벌레를 처리한다. 휴지를 겹쳐도 잡는 그 순간의 촉감은 여전히 조금 소름 돋지만 쳐다보지도 못하는 뭇사람들과 비교해 보면 벌레 앞에서 나는 확실히 강하다. (시골 파워!)


물론 시골 파워를 외치는 나도 맥을 못 추는 장르가 하나 있다. 뱀이다. 어려서 커다란 고무 들통이 마당에 놓여있었는데, 호기심을 못 이기고 뚜껑을 열었다. 들통 안에는 뱀이 꿈틀거리고 있었는데, 그때의 충격인지 그 후로 뱀 비슷한 것만 봐도 경기를 한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한가 하면, 실물은 물론 사진과 만화도 못 보고, 한동안은 개구리, 악어, 이구아나 같은 파충류와 지렁이, 장어 같은 긴 생물체도 쳐다보지 못했다. 어느 날인가는 뱀을 너무 미워하다 보니 뱀에게 조금 미안한 생각까지 들었다. 한 마디로 뱀 공포증인데, 안타깝게도 현재진행형이다.






나는 어쩌다 가끔 TV나 핸드폰에서 뱀이 등장하면 아주 난리 법석을 떤다. 그럴 때마다 도시 친구들은 


"아니 시골 살면 뱀 많이 보지 않나?"라고 의아해한다.


그때마다 난 묻고 싶다.

‘오늘부터 바퀴벌레를 매일 보여 줄게. 많이 보면 내년쯤엔 친근하게 느낄까?’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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